인기인의 카라이프 - 조용필
2013-11-30  |   26,563 읽음
벤츠와 함께 뛰며 노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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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가수 조용필이 두 달 전 새로 바꾼 차, 벤츠 280SE. 그의 피로를 포근히 감싸주고, 그의 바쁜 스케줄을 따라 어디든지 달려준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노래에만 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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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와 그 앞에 선 벤츠
자정이 넘은 시간, 영동 골목의 한 포장마차 앞에 벤츠가 서있다. 연기 피어오르는, 엔진도 없는 포장마차와 매끈한 벤츠 280SE (80년 형)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차 주인은 잠깐 어디 간 모양이다.


“누군지 차암 좋겠다!” 차를 힐끔 쳐다보며 지나던 행인이 한마디 내뱉는다.
이토록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차를 버려둔 채, 차 주인은 벌써부터 또 다른 차 안에 태연히 들어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턱을 괴고 안방에서, 지직 거리는 버스의 스피커에서, 거리의 한 모퉁이 레코드 가게에서, 텔레비전 특집 쇼에서, 요란스런 일본의 공연무대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남자.

 

조그만 입으로, 그 작은 몸집 어디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열정을 토해내며 절규하듯 노래하는 남자, 오로지 노래만을 위해 살아가는 서른 다섯 먹은 남자. 후리후리하지도, 잘 생기지도 않은 흔히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런 형의 남자. 그러나 14살,15살, 고만고만한 여학생들의 눈에는 마냥 귀엽게만 보이는 예쁜 남자.

 

그는 화려하게 말할 줄도 모르고 크게 웃을 줄도 모른다. 슈퍼스타에게 쏟아지는 갈채와 환호에도 생긋, 그것도 잠시만 웃다가는 그만, 오로지 노래로만 말하고, 웃고, 운다.
그가 넓은 무대에서 노래할 때, 청중석은 소리없이 흐느끼다가는 착 가라앉고, 그러다가는 순식간에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그 순간 그는 현란한 조명 아래로 떠오르는 별 하나가 된다. 그러나 그것조차 모르는 그는 그저 노래에만 작은 몸을 바칠 뿐 이다.

 

카바이트 불빛이 총총하게 새어나오는 포장마차 속에서 그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소주를 건네고 있다. 무대에서, 텔레비전 에서 보던 얼굴과는 달리, 피로와 허기에 지쳐 있어 어딘가 낯설어 보인다. 무대에서 노래에 온 정열을 다 쏟아 부은 뒤의 허탈감을 달래려는 듯, 거침없이 독주를 들이키다가 반갑게 기자를 맞는다.
“벤츠요? 그저 차일 뿐이죠.” 찬 이슬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주인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벤츠 가 들어도 그만이라는 듯, 덤덤한 목소리다.

 

사실, 그에게는 겨우 두 달 전부터 사귀어온 벤츠 보다는 9년전, 면허를 따고 처음 탄 포니가 더욱 정답다.
그 후 피아트 124를 거쳐 레코드 2대, 일제 도요타 ‘셀리카’, 피아트 132,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그라나다를 탔다. 그 모든 차에 소중한 추억이 아로 새겨져 있다. 그의 절망과 희망, 그리고 영광을 싣고 함께 달려준 기특한 녀석들 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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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기를 함께 마시는 차
그의 술 실력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특히 요즈음은 곯아떨어질 만큼 마셔대도 정신이 말짱하니 탈이다. 그렇다고 새벽 2시라는 이 시간에 더 마실수도 없다. 서부개척시대의 차와 이별을 한다.

벤츠가 그를 반긴다.
“어서 저를 데리고 가세요.” 그러나 정신은 말짱해도 술을 마신 건 사실. 의자를 뒤로 제끼고 눈을 감는다. 술 기운이 떨어질 때까지 그와 차는 새벽 공기를 마신다.
카폰의 벨이 새벽 공기를 가르고 울린다. 받기 싫다. 오늘의 약속을 확인하는 전화일 테니까. 지금은 그냥 일을 잊고 새벽공기를 마시고 싶을 뿐이다.

[게재 198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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