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포커스 - 최인호
2013-11-30  |   14,213 읽음
문학적 감성과 가장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지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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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시험에 떨어질까봐 몇번이나 주저했던 보통 남자 최인호. 1 년 전 단번에 면허를 따고 4 개월 전부터는 손수 차를 몬다. 작은 덩치로 큰 덩치의 물건,자동차를 움직인다는 게 그는 대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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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이 바쁜 작가

작가의 하루는 조금은 특별한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글쓰는 사람 최인호’의 일상이다. 보통의 샐러리맨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시간 맞추어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는 밤새워 밀린 원고를 썼다든가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아침 일찍 일어난다. 그 이유 중에는 그가 끔찍이도 사랑하는 딸 다혜와 아들 도단이가 등교하기 전에 얼굴이라도 봐두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내고 그는 일단 하루의 스케줄을 점검해 본다. 오늘은 만나야 할 사람이 꽤 많다. 거의 하루종일 약속의 연속이다. 그는 참 많이 바쁜 사람이다. 2개의 일간지에 연재소설이 나가고 있고 시나리오 부탁도 여러 곳에서 받아 놓고 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원고 청탁도 몇개 밀려 있다. 각종 매스컴, 잡지사에서 그의 원고를 받으려고 숱하게 전화와 원고청탁서를 보내 오지만 그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 외에는 그것을 모두 거절해야만 한다.

 

마음이 약한 그는 매번 괜히 죄지은 기분이지만 결국 최인호는 한 사람뿐이므로 어쩌는 수가 없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특별히 즐기지는 않지만, 그날 만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내면에 열정이랄까하는 에너지를 충전해 두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그를 만나는 사람은 누구도 지루하다거나 재미없음을 느낄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천부적 매력이라기보다 상대를 위한 그의 마음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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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와 함께

 

경력 4개월의 오너 드라이버
10시 40분, 그는 집을 나선다. 4개월전부터 그는 손수 운전을 시작했는데 이젠 꽤 노련한 솜씨를 자랑한다. 최근에는 자신이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 난 게 아닌가 생각중이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그의 자동차는 오토매틱이므로.

 

오토매틱이 됐든 아니든 그 자신 직접 운전이란 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는 매우 만족스럽다. 왜냐하면 그 덩치 큰 자동차란 물건을 직접 움직일 만한 용기가 없어 그동안은 주욱 운전기사에게 맡겨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주 자신이 얼마나 영악한지에 관해 주위에 얘기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면허시험에 떨어질까봐 시험보기를 몇번 주저했다는 일면도 지니고 있다. 다행히 1년 전에 면허에 단번에 붙는 행운(?)을 잡은데다 오토매틱이란 차가 있어 주어서 그는 5년쯤 타던 자주색 레코드 로얄을 하얀색 로얄 살롱으로 바꾸고 오너 드라이버가 되었다.

 

11시 30분, KBS에서 방영돼 크게 호평을 받은, 그가 일본에 건너가 직접 취재하고 나레이터까지 겸했던 ‘백제 루트’의 연출가인 전정업 PD와 만난 그는 상대를 간지럼 태우는 것으로 반가움을 대신 표현한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번 프로의 비디오 테이프를 선물받았다. 그러나 이 테이프는 VHS 방식에 묶여서 그가 갖고 있는 베타 방식에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실망한다.

 

“유명한 작가 선생님이니까 이번 기회에 아예 비디오 하나 새로 들여놓으시지...” 어쩌구 하는 빈정거림을 들으며 그는 야무지게 아예 정말 비디오를 바꾸어 버릴 결심을 한다. 사실 그의 집 비디오는 워낙 오래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시, 배창호 감독, 영화배우 안성기(두 사람 다 그가 무지 아끼는 후배들이다)와 만난 그는 곧 그가 시나리오를 끝내는대로 시작할 영화 ‘깊고 푸른 밤’에 관해 몇 가지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는 참으로 화기애애해서 그는 줄곧 웃고 떠들고 장난도 쳐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 마실 때 형이 없으면 정말 재미 없어요. 김빠진 맥주 꼴이라니까.” 안성기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는 어느곳에서나 좌중을 휘어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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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단이와 골프장에서. 폼만은 수준급(?)이다.

 

3시, 그는 차를 몰아 서초동에 있는 골프장으로 향했다. 골프를 시작한 지는 얼마 안됐으나 상당한 매력을 느껴 1주일에 두서너 번은 1시간이라도 할애해 이곳을 찾는다. 일요일이면 아들 도단이도 함게 동행하지만 오늘은 혼자이다. 1시간 정도 운동을 한 그는 이번에는 하얏트 호텔로 차를 몰았다. 5시에 이곳 커피숍에서 영화감독 김호선과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대학별곡’의 신진작가 김신과 만나 서로의 문학세계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으로 오늘 하루의 약속은 끝이다. 그는 약간의 피로를 느낀다. 아침에 집을 나섰을 때 충전해 둔 에너지가 이제는 거의 바닥이 드러남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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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개 밤중에 원고를 쓰는 버릇이 있어서 낮에 너무 많은 약속을 하면 자신이 곧 지쳐 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밤에는 원고를 쓰기가 힘들 것 같다. 그는 일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두 아이보다도 쬐금 더 끔직이 사랑하는 아내와 모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밤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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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얼핏 살펴본 그의 일상의 세계는 상당히 자유분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내면에 가장 많은 절제의 힘을 지닌 작가이다. 그는 많은 작가들 중에서 좀 유별나게 유명한 쪽이다. 이는 아마도 그가 보여주는 자유분방함에서 연유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문학적으로 거두는 성공의 이면에는 놀라울 정도의 절제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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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과 만나 오랜만에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시대에서 가장 번뜩이는 문학적 감성과 가장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지닌 사람을 얘기할 때 늘 먼저 그 이름이 회자되는 작가인 최인호. 그러나 그는 운전 도중 교통법규 위반으로 딱지를 뗄 형편에 놓이면 온갖 말재간을 동원해 그 자리를 모면할 줄도 아는 그저 보통의 쬐그만 남자이기도 하다.

[게재 198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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