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인의 카라이프 - 이혜숙
2013-11-30  |   22,666 읽음
연기도,운전도,흐르는 시냇물처럼

 

1941063278_hLSgs5mI_1bfa9e2d72b185262fd2fd174fea81a37746ffa1.jpg

 

외유내강(外柔內剛) • 이혜숙, 그녀는 첫눈에 겉은 더없이 부드럽고 순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꿋꿋하고 곧은 그런 여자다. 그녀는 마치 계곡을 흐르는 물이 바위를 만나도 부딪쳐 대항하지 않고 부드럽게 어울려 감싸 나가듯
세상사를 순리대로 꾸려 나가려는 온유한 연기자이다.

 

그녀의 충실한 벗, 초록빛 로얄 살롱도 역시 그녀를 닮아 좀체 잔고장이나 거슬림 없이 스무드하게 달려 준다. 만 5년째 접어드는 운전술도 보통 솜씨가 아니지만, 차분한 마음가짐과 겸손한 태도, 여유 있는 자세는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로얄 살롱과 함께 오늘도 그녀는 바쁘게 달려간다. 후회 없는 젊은 날의 초상을 만들기 위해.

 

1941063278_5FqdDIK6_1301472f92bfc7d403272d36e056bf8b49756243.jpg

 

 

임진왜란’에서 새로운 면모 보여

흐르는 시냇물과 같은 여자
그녀는 밤마다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녀는 한줄기 물길이 되어 심청이 갔다던 용궁에도 다녀오고, 제주도 어
딘가에 있다는 이어도에도 다녀온다. 꿈속에서 그녀는 빨강, 노랑, 파랑, 온갖 휘황찬란한 물고기들과 얘기도 나누며 자유롭게 끝없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다. 이혜숙(李惠淑, 24세). 요즘 안방극장에서 한창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임진왜란’ 에 풍신수길의 애첩으로 분, 새로운 이미지로 평가받고 있는 그녀는 물과 같은 여자다. 물도 그냥 고여있는 물이 아니라 쉬지 않고 맴돌아 흘러가는, 겨울계곡의 얼음장 밑을 돌돌 흘러 봄의 기운을 대지에 촉촉히 적시는 시내 같은 물, 바로 그런 여자다. 이제까지 브라운관에서 ‘청순가련형’의 이미지로 익히 알려진 그녀를 막상 대하고 보니 전혀 그렇지 가 않았다. 우선 초록색 로얄 살롱(오토매틱. 83년형)을 능숙하게 모는 운전 솜씨부터가 단번에 보통내기가 아님을 입증했다.

 

그녀의 드라이버 경력은 나이에 비해 화려하다. 지난 81년 3월 어렵지 않게 단 한번에 운전면허를 땄고, 곧바로 포니I 을 1년쯤 몰다가 피아트 132를 거쳐 83년 로얄 살롱을 구입, 지금까지 몰고 있으니 올해로 만 5년째 접어드는 능숙한 여성 오너 드라이버인 셈이다. 운전하는 그녀를 보니 오히려 대담하고 활달한 성격을 지닌 듯했다. 

“운전 말인가요? 저에겐 연기와 하나 다를게 없죠. 연기가 내 삶 자체이듯 운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제 생활의 한부분이니까요." 운전에 임하는 그녀의 신중한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연기자로서 또 여성 오너로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옹골차게 되받는다.

 

“운전에 무슨 여자, 남자의 구별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운전대에 앉으면 그저 다 같은 기사일 뿐인데, 아직도 우리 사회 한편엔 자가용을 몰고 다니면, 더우기 여자가 차를 몰면 이상야릇하게 생각하는 편견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차를 모는 건 내 생활 수준이 유달리 높아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며 여러모로 이것저것 따져보아 보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이기 때문이죠. 특히 연기자로서 스케줄을 맞춰 기동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거의 필수적인 것 같아요."

 

여의도 전경련회관 옆 터널을 지나며 그녀는 오너 드라이버로서의 장점을 조리 있게 얘기했다.

 

1941063278_zUPC0Vgm_a27cbdea69e7b9d1a66fe4a5c83c2f72ea3d72d7.jpg

 

 

연기 생활 8년 못지 않게

오너 경력 5년의 능숙한 솜씨
그녀의 연기생활은 지난 79년 열일곱 앳된 나이에 MBC 10기생 탤런트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8년째에 접어든다. 그녀는 그 동안 미스 해태를 거쳐 CF 모델 등 주로 연기외적인 일들에 몰두하느라 같은 또래의 연기자들에 비해 일찍부터 연기생활을 했으면서도 뚜렷한 대표작 없이 그저 이름만 유명해진 것 같아 부끄럽다고 겸손해한다.  

 

사실 그녀는 지난 여름 6·25 특집극 ‘영웅시대’에서 주인공 동영의 처 정인역을 맡은 것을 빼놓고는 얼마 전까지 이렇다 할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하니 결혼에 뒤얽혔던 그 춥고도 길었던 방황의 시간들은 그녀를 내적으로 살찌우는 값진 순간들이었던 것 같단다.

 

1941063278_GxnW4mzR_085b30a8558796d6e119687402b399f4923cfa8a.jpg

 

병인년,올해는 범띠인 그녀에게 있어 무척 중요한 한해가 될 것 같단다. 지난 몇해 소문에 휩쓸렸던 우울했던 기억들을 떨쳐버리고 여자 나이 스물넷, 연기생활 8년에 걸맞는 성숙한 연기자로서 팬들 앞에 서야 한다는 집념을 불태울 한해이기 때문이다.

 

1941063278_ugqbA7ty_59598c2bd12cc968f2412019db494cd8acb05d6a.jpg

뚜렷한 대표작도 없이 이름만 유명하진 것 같아 부끄럽다며, 그러나 이제부턴 달라질 거라고 상큼하게 웃는 그녀

 

그녀가 성숙한 연기자로서 다시 팬들앞에 서기 위해 맞부딪친 작품이 바로 영화 ‘태’ 이다. 하명중 감독이 흥행성보다는 작품성을 높이 살려 베를린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만든 이 영화에 주연 여배우로 열연했다. 그녀는 40여일에 걸친 위도라는 외딴 섬에서의 야외 로케이션을 계기로 비로소 ‘진짜 연기’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나도 잘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한다.


“연기란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그렇지만 젊은 날의 내 청춘을 불태울 가치있는 창조적 일이라는 것을 이제사 조금씩 깨닫고 있어요.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너무 어설프게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자각을 해요. 지금부터라도 내 온 정열을 기울여 연기를 하면 먼 훗날 오늘처럼 후회하지는 않을 거예요.”

 

1941063278_DFAI1z3M_93af2a6838938036e6ae68d8761e0d2e0c58a1aa.jpg

 

 

곧 나올 영화 ‘태’에서 열연

음악 들으며 스피디하게 달려

외화 ‘아마데우스’의 뒤를 이어 곧 명보극장에서 개봉될 영화 ‘태’에서 팬들과 진정 새롭게 만날 수 있으리라 자신하는 그녀는 운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처음 차를 몰 때는 그저 호기심에 겁도 없이 마구잡이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운전 경력 5년이 된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연스레 차들의 흐름에 젖어들어 차선 변경이나 추월, 클렉슨 없이도 부드럽게 달려 나간다. 그동안 사고도 몇번 있었다. 그녀 차가 앞서 가는 차를 받은 적도, 뒤 차가 갑자기 들이받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번은 촬영 기사가 그녀 차를 뒤에서 받았다. 서로 잘 아는 처지에 수리 비용을 물어 달랠 수도 없어 그저 울며 겨자 먹기로 참아야만 했다고.

 

그녀의 차는 무척 수수하다. 인기인의 로얄 살롱 답지않게 내부엔 장식이 거의 없다. 다만 한가지, 바구니에 카세트 테이프가 수북하게 담겨있다. 음악을 더없이 좋아해 차를 몰 때는 언제나 음악을 듣는다. 팝송은 물론 클래식, 가곡 가요 등 음악이라면 모두 좋아한다.

 

“음악은 왠지 저를 평화롭고 자유스럽게 해 줘요. 부질없는 잡념에서 벗어나 멜로디에 따라 차를 몰고 나가는 거예요.”

 

3년 동안 고운정 미운정 들여가며 곱게 길들인 그녀의 차는 어느덧 국회의사당을 지나 순복음교회 앞에 다다랐다. 그녀는 우울하거나 좌절되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문득 하나님을 찾곤한다. 그녀는 평창동에 있는 연예인교회를 열심히 나가면서 인간과 신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신앙과 신념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지난 여름 영웅시대를 촬영하면서 이데올로기(이념)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극 중에서 제 남편 동영이 가는 길이 신념이라는 것은 이해되지만,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어쨌든 불행한 일인 것 같았어요.”

 

1941063278_4SfOXdYH_aa4c953daf64473b1f7cc7a563f6d831514cb513.jpg

차를 몰 때도 연기를 하듯 신중한 자세로 임한다. 물의 흐름처럼 그저 자연스럽게.

 

외모로 보기에는 조금 약할 것 같은 그녀지만 천만의 말씀. 그녀는 운동이라면 모두 좋아해 수영, 스키, 스케이팅은 틈만 나면 즐기는 편이고, 축구, 야구, 농구 등의 관람도 빼놓지 않는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차를 몰기 때문에 따로 드라이브를 즐기지는 않지만, 한적한 길에선 스피드를 즐기는 편이란다. 음악에 맞춰 스피디하게 달리다 보면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고 온갖 상념도 잿빛 포도 위에 휩쓸려 버린다는 것이다. 그녀의 차는 어느덧 MBC에 와 닿았다. 임진왜란 촬영을 위해 서둘러 차를 세우고 간단히 목례한 후 종종 걸음으로 내닫는 그녀의 뒷모습이 왠지 상큼하게 느껴진다.

[게재 1986년 02월호]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