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포커스 - 허정무
2013-11-30  |   15,63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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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와의 네덜란드에서의 카라이프

“누구야? 이게 누구지 ? .. " 계란색 스텔라에서 내리 는 화란이의 나풀나풀 나비같은모습을 보는 허정무선수의 목소리에는 반가움과 장난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핸들을 놓는 손끝이 가느다랗게 떨리는 부인 최미나의 얼굴에도 그녀의 진흥빛 매니큐어처럼 정갈한 홍조가 번져왔다. 곧 봄볕햇살이 따사로운 가운데 마치 아련한 흑백영화 속의 한 가정처럼 5살박이 화란이는 아빠의 탄탄한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부인 최미나는 특유의 살풋한 웃음을 머 금은 채 “화란아,이제 그만 내려. 아빠 힘들어” 하면 셔 그욱한 눈빛으로 허정무 선수를 올려다본다.

 

생각해 보면 얼마 만에 본 남편인가. 말레이지아 와 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생각도 못했던 패배를 당하고 돌아온 후에 그동안 쌓였던 피로도 풀 새 없이 아빠는 소속팀인 현대 프로축구팀 의 합숙훈련, 그리고 내일부터는 다시 월드컵 축구팀 합숙훈련에 들어간다.


부인 최미나는 오늘 합숙소로 허선수 를 찾아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좋아하는 유부초밥과 불고기를 재온 도시락을 꺼내는 동안 벌써 저만치서 아빠랑 띔박질 연습하는 화란이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들려온다
바깥에서 본 아빠 허정무 선수의 모습은 훨씬 더 가슴 저려오는 느낌으로 만져진다. 막 오전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했는지 다소 물기가 촉촉한 머릿결이 봄빛에 찰랑거린다 그리고 군살 없이 곧게 성큼성큼 걷는 폼하며 언젠가 ‘뽀드득’ 하는CF에도 등장했던 고른 치아가 만들어 내는 해사한 웃음,아니 무엇보다도 끔찍이도 사랑하는 딸 화란이와 장난치는 아빠의 천진스러운 모습이 가슴이 모자랄 정도의 행복으로 벅차 오르는 것이다.


“아니, 당신 이제 서울 시내에서도 운전 잘하네, 당신이 운전하면서 오는 것을 문 앞에서부터 봤지.‘’
정감넘치는 허정무의 목소리가 최미나의 귓가에 부어진다. 사실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뒤‘ 그토록 운전이라면 둘 째 가라면 서러워 할만큼 능숙한 아내가 서울에서의 운전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화란이의 ‘아빠, 엄마 운전 짜알해’ 하는 말대로 아내는 교통지옥도 뚫고 나오는 배짱 좋은 드라이버로 변신할수 있었다. 이제 다시 시작한방송 ( KBS - IT V 의 즐거운가족게임, KBS - 2TV의 연예가 중계) 녹화를 위해 아내 혼자를 차에 실려보내도 안심할 수있다. 그러나 아내인 최미나의 생각은 다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편 허정무 선수와 나이는 동갑 이지만 운전면허에 있어서 만큼은 1년 선배임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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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자동차의 센터포워드 아우디 100,화란이가 좋아했던 꼬마 벤츠” ‘가요올럼픽‘, ‘쇼는즐거워’ 등에서 톱 여자 MC로 한창 날리던 1978년,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고 이미 포니1 으로 스피드의 리듬까지 즐겼으니까. 그렇지만 허정무는 네덜란드로 떠나가 얼마전인 1979년 면허를 땄으니까 엄연히 아내 최미나보다는 한 해 후배인 셈.


“하지만 화란에 있을 때 는 아빠가 차를 몰았어요 2만 5천길더 (한화 빽 90 만원) 주고 산 아우디 ( Audi ) 80이었는데 ‘후열풍’ 이 한창이었을 때 이 차로 네덜란드의 열기를 누였지요.” 잠시 최미나의 얼굴에는 네덜란드 에서 누리던 신혼 초의 애뜻함, 그리고 허정무선수가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필립스팀의 유니폼을 입고 폭발적인 스피드로 볼을 몰고 갈 때 거의 무아지경의 관중들이 외치던 ‘후,후 .. .. ’ 열풍이 발 그스름하게 스쳐간다. 허정무의 허( Huh)를 ‘후’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불렀다.


 “그런데 아우디 80 보다 제가 제 일 좋아했던 차는 그 다음에 단 아우디 100 이었읍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FF차가 나왔지만 이 아우디 100이야 말로 앞 바퀴굴림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아우디 차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차였지요. 최고시속이 200km냐 되어, 타보연 진짜 작은 벤츠같았어요” “운전도 축구처럼 스피드와 유연한 리듬 있어야”  허정무는 아우디 100으로 아내와 화란이를 태우고 물의 도시 베니스를 여행했을 때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며 지 그시 눈을 감는다 아마 83년도 유럽의 최우수차로 뽑혔던 매끈한 아우디100을 달려, 물에썩고 푸른 이끼 낀 원시의 곤돌라를 갈아탄 색다른 기분의 맛 때문이리라.


이제 막연두빛 물이 오르는 현대합숙소 앞 잔디밭에서 자동차 얘기가 모락모락 피어날때, 네덜란드에서 태어 났다고해 이름도 ‘화란’ 이라고 지은 딸 아이가 눈망울을 달랑달랑 굴리며 ‘벤쓰, 벤쓰 .. ’하면서 어른들 얘기에 끼어 든다. “귀국하기 전에 화란이를태우고 아는사람의 벤츠 280SEL을 몬 적 이 있었거 든요. 그 때 역시 벤츠가좋다는 어 른들의얘기 를 기억하나봐요. 그다음부터는 차만 보면 무조건 벤츠라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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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밖에 서면 소년처럼 해밝은그… 브라운관 밖에 서면 축구광 처럼 뜨거운그녀…’ ‘아들이 귀엽거던 벤츠에 태워라’ 하는 말대 로 예 쁜 딸도 한번쯤은 벤츠에 태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국에서보낸 어린시 절 의꿈을 자동차벤츠라는추상에 가득 싣고 왔으니까.


“네덜란드에서 뛸 때, 아빠 별명이 뭐였는지 아세요? 글쎄… 악바리였어요.(웃음) 그런데 아빠는 운전에서 만큼은 실키 드라이버에요.” 불같은 슈팅과 악착같이 따라붙는 경기장에서의 허정우 선수와는 달리 드라이브솜씨는 그의 외모대로 유순하고 부드러운가 보다.


“외국에서는 길을 물어오는 사람을 위해 차에서 내려서 길을 가르쳐줍니다. 당연히 뒤차들도 일렬로 여유있게 기다려줍니다. 그런 데 여기서 이렇게 했다가는... 말 안해도 아시죠?”
아마 이런 클랙슨의 공포와 욕지거리의 범람으로 아내 최미나는 귀국하고서도 1년 넘게 핸들을 잡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동차 운전도 축구의 테크닉과 비슷해서 스피드와 함께 유연한 리듬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점심시간을 끝내는 벨 소리가 최미나의 차 시동 거는 소리와 동시에 봄햇살을 간지르고 있었다.
 “아빠, 안녕 해야지?” 하는 엄마의 말에 금세 헤죽헤죽하던 화란이가 차창 밖에 입을 내밀고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삐죽삐죽거린다.


“화란아! 벤츠타고 가면서 울면 바보다. 화란이, 유치원 가서 노래 많이 배우고 엄마 말 잘들어. 당신도 조심해서 운전해요 다음에는 막내 은이도 데려오고" 어느새 모녀가 탄 스텔라는 봄먼지를 흩날리며 합숙소를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진도개로 밖에 별반 알려진 일이 없는 진도에서 태어나 꽉 찬 서른 세월을 한국축구의 기린아로 달려온 허정무.


지난 말레이지아와의 경기 같은 실수는 두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한국 월드컵 출전 팀의 주장으로서의 든든한 각오도 한마디 던진 채 천천히 뒤돌아선다. 그리고는 막 레이스에 나서는 자동차처럼 볼을 향해 때로는 강건하게 때로는 실팍하게 질주하기 시작한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게재 198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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