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인의 카라이프-정애리
2013-11-30  |   14,871 읽음

82년 형 로얄 살롱에 ‘사랑과 진실’ 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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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를 오히려 침착함으로 돋보이게 만다는 여자. 그래서 정애리 에게서는 세상사가 여과된 듯한 담담한 눈매와 견고한 고독을 나부끼는 머리결에서 찾을 수 있다.
다소 시건방지고 도도해 보여도 사려깊은 분위기와 ‘무언가’ 사연이 있음직해 보이는 열띤 연기력. 그것을 보는 사람 모두를 ‘효선’의 편으로 서게 만드는 매력이 정애리에게는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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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웃지도 않고 수도꼭지 처럼 줄줄 눈물도 흘려내지 않지만 언제나 가지런한 톤으로 우러나오듯 말을 아끼는 ‘사랑와 진실’ 에서의 효선이 처럼 정애리에게는 많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붙어 다닌다.
또랑또랑하고 새침한 그녀가 굴비로 유명한 전라남도 영광 출신의 촌가시내였다는 것부터 의문부호인데다가 그토록 말 많고 탈도 많은 방송국에서 오로지 수수한 차림새와 침묵에 가까울 정도의 언어로만 정상에 섰다는 것도 물음표 투성이기 때문.

 

그러나 저마다가 꽃인양 드러내놓고 뽐내기를 좋아하는 연예가에서 틈만 나면 구석배기에서 턱을 괸 채 흐릿한 눈동자로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의 남다른 모습과 알고 보면 놀랄 수 밖에 없는 그녀의 많은 독서량. 바로 그것이 물리학 박사 역할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나라의 단 하나뿐인 여자 탤런트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효선과 정애리는 밥 먹는 습관부터 책 들여다볼 때 안경을 끼는 버릇까지 꼭 빼다 박았을 것 이라는 상상을 시청자들에게 불러 일으킬정도로.

 

사실 흰색 로얄 살롱에 그저 망연히 앉아 있는 정애리의 오똑한 콧 날을 보고 있노라면 나이에 비해 성숙할대로 성숙해 도무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재미가 없는 듯한 허탈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세상사가 이럴진대 ‘인기’ 라든가 ‘스타’ 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부질없어 더욱 혹독한 자기와의 싸움이 계속될 떄면 그녀는 핸들을 잡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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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스럽고 차진 구석이 있어 하고싶은 일은 꼭 해내고야 마는, 일에는 철저한 그녀의 기질이 3년 전 금세 운전 면허증을 따게 했는지도 모른다.
끙끙대던 자신과의 싸움이 끝날 때 쯤이면 그녀는 안하던 화장을 차 안에서 한다. 평소에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언제봐도 헐렁한 옷차림 탓으로 언뜻 보면 그저 예쁘장한 여대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녀가 꼭 달리는 차안에서 화장을 하는 이유는 바로 남들이 보면 창피하기 때문. 그래서 심지어 그녀는 터널을 달릴 때 화장을 ‘해치우는 것’이 제일 성미에 맞는다고 했다.

 

이쯤되면 82년형 로얄 살롱이야말로 그녀의 늘 숨겨져 있는 듯한 분위기와 어울리길 싫어하는 대신 사색적인 느낌을 키우는 달리는 일기장이지 않을까?
늘 늦가을의 여윈 나뭇가지 사이를 걷는 여인처럼 무채색이었던 그녀가 모처럼 화사한 옷을 차려 입고 정성들여 화장을 한 봄처녀의 모습으로 로얄 살롱에서 내린다.

 

“오늘, 화장품 CF 모델 촬영이 있어서요, 그래서…”
정장을 차려 입고 화장을 한 것이 부끄럽다는듯 그녀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흔치 않은 그녀의 풋풋한 웃음을 백미러에 비춘다. 어느새 정애리의 흰색 로얄살롱도 이제 막 연두빛 물이 오르는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청신한 이슬방울처럼 진실하게 빛나고 있었다.

[게재 198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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