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움 - 86, 선비들의 길을 걷다
2015-09-08  |   15,189 읽음

새가 날아서 넘기 힘든 높고 험한 고개, 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리재 사이, 새로 된 고개……. 모두 새재를 가리켜 이르는 말들이다. 위치는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 사이, 높이는 1,026m에 이른다. 이곳은 명승 제32호이자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인기만큼이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수없이 많은데,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당시의 문화를 누리며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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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지어진 3개의 관문
문경새재는 제1관문인 주흘관, 2관문인 조곡관, 3관문인 조령관까지 총 6.5km로 이뤄진다. 성인 걸음으로 편도 2시간 정도가 걸리며, 구간마다 구경거리가 많아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거닐기에 좋다.

 

86이 먼저 포즈를 취한 장소는 제1관문인 주흘관 앞이다. 새재의 3개 관문 중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규모도 으뜸이다.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해 숙종 34년(1708년)에 지어졌고, 문의 높이는 3.6m, 폭은 3.4m, 길이 5.4m이다. 좌우를 둘러싼 높이 4.5m의 석성 길이는 무려 188m다. 그 옆의 성벽도 동측 길이가 500m, 서측 길이가 400m로 무척이나 웅장하다. 원래는 차가 다닐 수 없지만 문경새재도립공원의 <카라이프>를 향한 배려와 협조로 새벽녘에 방문, 역사적이고 멋진 사진을 찰칵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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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관에서 3.1km 거리에 위치한 제2관문 조곡관은 선조 27년(1594년)에 지어졌다. 문의 높이 3.6m, 길이 5.8m이고, 좌우 석성 높이는 4.5m로 길이가 73m에 이른다. 그 옆 성벽의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로 이뤄져 있다. 거의 원형 그대로인 주흘관과 달리 1907년에 훼손되어 현재는 1975년에 복원된 모습이다.

 

제3관문인 조령관은 새재 정상에 위치한다.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선조 초에 쌓았고, 숙종 34년(1708년)에 주흘관과 함께 다시 지어졌다. 조곡관처럼 1907년에 불에 타 훼손되어 1976년에 복원되었다. 문의 높이는 3.5m, 길이가 185m이고 성벽의 길이는 동서 각각 400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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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관문인 조곡관은 1594년에 지어졌지만 현재의 모습은 1975년에 복원된 것이다

 

이 세 관문이 지어진 계기는 다름 아닌 임진왜란(1592년)이다. 전략적 요충지인 새재에 성벽 하나 없어서 왜군이 한양까지 쉽게 이르렀고, 결국 나라 전체가 왜에 넘어가게 된 것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치른 후 숙종 때에 이르러서야 주흘관이 지어졌으니, 소 잃은 지 100년 넘게 지나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친 셈이다. 게을러도 이렇게 게으를 데가!


문경새재는 경사가 심하지 않고 흙길이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산책을 즐기듯 걷기에 최고다. 아울러 문경시의 옛길 걷기 체험이나 과거길 재현과 같은 다양한 행사가 수시로 열려 조선시대 옛길 및 선비문화를 즐기며 누릴 수 있는 좋은 자원으로 꼽힌다. 특히 조선 후기의 한글 비석인 ‘산불됴심비’나 7선녀가 구름을 타고와 목욕을 했다는 여궁폭포를 지날 때는 반드시 발길을 멈추도록 하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국영여관인 조령원 터를 둘러보는 재미도 놓치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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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신양명의 꿈을 이루려는 선비들의 발자취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과거시험을 보러 가기 위한 길목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죽령과 추풍령, 그리고 문경새재가 있었는데 선비들은 세 가지 경로 중 문경새재를 주로 지났다고 한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고, 죽령을 넘으면 시험에서 죽죽 미끄러진다는 재미난 설 때문이었다. 반면 문경새재는 가장 먼저 듣는(聞, 들을 문) 경사(慶, 경사 경)를 의미했고, 또 문경의 옛 지명인 문희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하여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려는 과거 길로 인기가 으뜸이었다. ‘택리지’에서 ‘조선 관리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는 구절로 미루어 보아 실제로도 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지났음을 짐작케 된다. 흙길을 향해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한 발자국씩 내딛다 보면 마치 조선시대의 선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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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쌓아올려진 소원성취탑. 간절한 소원이 하나하나 모여 그 어떤 탑보다 견고해졌다

 

제1관문과 2관문 사이의 주막은 과거시험 길에 오른 지친 몸을 한 잔 술로 달래기 위한 쉼터였다. 현재는 원래의 것이 아니라 복원되어 있는 상태. 또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인 소원성취탑도 눈길을 끈다.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이 돌을 쌓아 소원을 빌면 선비는 급제하고, 몸이 허약한 사람은 쾌차하며, 상인은 부를 얻고, 아들을 낳지 못한 부녀자는 옥동자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만큼 시로 많이 다뤄진 길도 없다. 정약용의 ‘겨울날 서울 가는 길에 새재를 넘으며’, 김시습의 ‘새재를 넘어 시골집에 묵다’, 이이의 ‘새재에서 묵다’, 이황의 ‘새재로 가는 길’등 문경새재가 품고 있는 시는 수백 편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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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차로 넘는 백두대간 이화령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과 설악산을 지나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고는 지리산에서 마무리되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이다. 이화령은 백두대간에 속하는 소백산과 속리산 사이의 고개로 높이 548m다. 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이화령로는 1925년에 개통, 문경새재를 대신하는 도로로 쓰였지만, 1998년에 이화령 터널이 개통되면서 그 역할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평일 낮 시간에는 시간당 차량통행량이 5대를 넘지 않을 정도로 차가 없어 민폐 끼치지 않고 와인딩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다만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으니 블라인드 코너에서는 최대한 감속한 후 코너에 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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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령로는 차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데다 총 길이가 20km라서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다만 곳곳에 깔린 모래는 주의해야 한다

 

업힐은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부터 약 3km 거리에 있는 각서1리 마을회관 앞에서 시작한다. 스타트 지점을 찾기 힘들다면 내비게이션에 ‘각서1리 마을회관’이라고 입력해 와인딩 초입을 마주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이화령로를 타고 86의 스티어링을 이리저리 휘저을 계획이었다. 2월 초였기에 노면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다행히 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문제는 모래였다. 통행량이 없어도 너무 없기 때문인지 모래가 융단처럼 깔려 있어 액셀 페달을 깊게 밟으면 뒤가 꿈틀거렸고, 조금만 오버스피드로 진입하면 차가 주욱 미끄러졌다. 장맛비가 쉼 없이 내려야만 씻겨 내려갈 판이다. 결국 86은 제 성능을 뽐내지 못한 채 눈길 달리듯 서행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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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이화령휴게소에서는 괴산군과 문경시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각서1리 마을회관을 출발해 4.8km의 업힐을 달리면 정상에서 이화령휴게소가 우리를 반긴다. 전망대에서 북서쪽의 괴산군, 동서쪽의 문경시를 내려다보니 노면 상황 탓에 짜증이 가득했던 기분이 확 풀린다. 이화령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했다면 지나왔던 길로 돌아내려가지 말고 가던 방향으로 약 4.9km를 더 내려가자. 그러면 형촌로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이화령 와인딩의 피니시 라인이다. 이렇게 달려온 거리는 약 10km. 결국 왕복 20km의 와인딩 코스가 완성됐다. 차가 거의 없는 백두대간 이화령 와인딩,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달려보기를 추천한다. 단, 노면을 뒤덮은 모래들이 씻겨 내려간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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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령은 백두대간에 속하는, 소백산과 속리산 사이의 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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