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모든 것을 판다, 이우시장(义乌市场) 2
2013-10-18  |   13,058 읽음

급성장한 중국 자동차, 그러나…
이우 시의 번영은 도시 미관과 거리의 차부터 바꿔 놓았다. 높은 빌딩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한창 건설 중인 금융빌딩들이 모두 완공되면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이우의 차량등록대수는 12만 대로 인구 100만 명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이다. 그래서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차들이 넘쳐나 하루 종일 교통체증에 시달리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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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시장 한쪽에서 한창 건설 중인 금융빌딩들

 

주차시설 또한 턱없이 부족해서 아무 곳에나 차를 세워두는 일이 다반사고, 새롭게 도로를 건설하고 기존 도로를 확장하고 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차들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주차할 공간이 없어 저녁때만 되면 주차전쟁이 벌어지고 바깥 도로에까지 주차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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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한가운데에서 다른 차들의 진로를 막고 주차된 승용차. 이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차가 늘어나는 만큼 교통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차량사고만 늘어날 뿐이다. 이우에서 하루에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200건 정도. 사고가 나면 교통경찰이 와서 잘잘못을 따져 확인서를 발급해준다. 이것이 있어야만 보험처리가 가능하다. 항상 차가 막히니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접촉사고 수준이다. 오토바이와의 접촉사고가 가장 빈번한데, 하루에 500건이 넘는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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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

 

중국 전체로 보면 교통사고 역시 세계 최고다. 2012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6만2,000명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10년 전인 2002년의 10만9,000명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다. 한때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통사고 사망자를 낸다는 오명을 쓴 적이 있다. 최고조에 달했을 때가 1만3,000명이었는데 이를 감안하면 중국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나라가 30여 년 동안 엄청난 노력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를 절반 이하로 줄인 것에 비추어볼 때 중국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통문화가 생각만큼 금방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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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막히면 인도로 달리는 차들이 많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은 것은 그만큼 사고가 많다는 뜻인데, 그것은 중국의 난폭운전에서 기인한다. 한마디로 중국 운전자들의 운전 매너는 빵점이다. 양쪽 차선을 걸치고 운전하는가 하면 끼어들 상황이 아닌데도 거리낌 없이 들어오고 빨리 가라고 수시로 경적을 울려댄다.

 

중앙선은 있으나마나다. 길이 막히면 중앙선을 넘어서 가거나 인도를 통해 가기도 한다. 밤에는 마주오는 차가 있든 없든 상향등을 켜는 것이 기본이다. 상대방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대단히 관용적인 면도 있다. 도로를 거꾸로 역주행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비켜 가거나 기다려준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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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창살로 막아놓은 중앙분리대. 이렇게 해놓지 않으면 중앙선을 그냥 넘어 달린다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할리우드 여배우가 베이징을 방문해서 택시를 탔다가 혼이 난 장면이 유튜브에 방영이 된 적이 있다. 길이 막히자 택시 기사가 고속도로를 거꾸로 달렸다. 이를 보고 경악한 여배우가 소리를 지르자 이에 신이 난 택시 기사가 차를 더욱 난폭하게 운전하는 모습이었다. 필자도 고속도로를 운전하면서 역주행하는 차와 세 번 정도 마주친 적이 있다.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고속도로에서 갓길로 달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가다가 길이 막히면 자연스럽게 갓길로 가는 운전자가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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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여전히 중국의 인기 있는 교통수단이다

 

주차 매너는 한마디로 '마이너스’다. 주차시설이 턱없이 부족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2열 주차는 물론이고 막무가내식 주차도 다반사다. 아예 다른 차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운전자의 연락처를 남기지 않은 차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면서도 또 신기한 것은 이런 식으로 주차해놓았다고 해서 한국처럼 강력하게 항의를 하거나 주차된 차에 화풀이를 하는 경우 또한 거의 없다.

 

한편 중국 운전자들은 카메라가 있는 지역에서는 교통신호를 잘 지키는 편이다. 그러나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거의 지키지 않는다. 중국의 벌점제도는 대단히 엄격하다. 신호위반에 벌점 6점을 부여하는데 벌점이 12점이면 면허취소다. 즉, 운전자가 두 번만 법규를 위반하면 면허가 취소되고 1년 후에 다시 신청을 해야 하니 대단히 강력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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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와 중국의 다양한 교통수단들
이우가 급격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운송에 있었다. 이우는 저장성 내륙에 위치하고 있지만 다행히 예전부터 기차가 통과했다(당시의 유일한 교통수단). 만약 철로가 없었다면 이우는 그저 인근 도시의 물량을 소화하는 조그만 시장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나가는 물류를 철도 외에도 트럭을 많이 이용하는데 그 물량이 어마어마하다. 몇 해 전에는 이우에서 이런 물류사업을 쟁취하기 위한 이권다툼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하여 공항도 생겼다. 물론 국내선만 운항하지만 홍콩을 연결하는 국제선도 있다. 이곳에서 베이징, 난통, 광저우, 청두, 창사, 정저우로 연결되는 항공편을 매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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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의 택시로 쓰이는 현대 쏘나타

 

버스터미널은 세 곳이 있다. 먼저 빙왕터미널에서는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버스가 매일 출발한다. 이우에서 광시성 난닝까지 가는 데에는 20시간이 걸린다. 운전기사 2명이 교대로 운전을 하는데, 우리에겐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항상 해오던 일상이다. 장거리여행은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승객들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다. 좌석이 이층 구조의 침대여서 하염없이 누워서 가야 하는데, 하루를 누워서 가면 머리가 핑핑 돈다. 게다가 허리까지 아프다.


필자도 광저우를 갈 때 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비자 연기신청 때문에 여권을 공안국에 맡겨 놓았는데 급히 광저우에 출장을 갈 일이 생긴 것. 여권이 없으니 비행기를 탈 수 없어 할 수 없이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우에서 광저우까지 16시간이 걸리는데 처음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는 나에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색다른 경험이라 일변 재미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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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올라 탈 때에는 신발을 벗고 비닐봉지에 담아 승객이 보관해야 한다. 식사 시간이 될 즈음에 버스가 고속도로를 빠져 나가 허름한 휴게소에 승객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정말 최악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식은 그나마 먹을 만했는데 이곳 음식은 입에 대기가 불안할 정도로 불결하고 역겨웠다. 다른 것을 먹을 길이 없으니 억지로 먹어야 했는데 가는 내내 찜찜했다.

 

도중에 세 번의 검문이 있었다. 장시성에서는 신분증 검사만 했는데 광동성에 진입할 때에는 승객이 모두 버스에서 내려 검색대를 지나야 했다. 새벽 3시경이라 너무 피곤하고 졸렸는데 누구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장거리 버스라 차 안에 화장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정신없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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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火车, 중국에서는 훠처라 부른다)는 전국으로 연결된다. 요즘은 고속기차가 많이 생겨서 상하이나 인근 지역을 다니는 데 상당히 편리해졌다. 고속열차가 생기기 이전에는 상하이까지 4시간 이상 걸렸으나 고속철 개통 이후 2시간 반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이우에서 쓰촨성의 청두까지 가는 데 무려 40시간이나 걸리는데, 이 먼 길을 입석으로 가는 이도 많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넘게 걸린다고 고속철을 만든 우리로서는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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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의 중심 도로

 

중국은 우리보다 더한 자본주의 국가
모순(矛盾)이라는 말은 행동이나 말의 앞과 뒤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무기를 파는 상인이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다는 방패’를 함께 팔면서 유래한 말이다. 이런 '모순’이 지금의 중국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닐까 싶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체제는 이에 반하는 '자본주의’를 택하고 있다. 원래 장사를 잘하고 돈에 대한 애착이 강한 중국인들에게 사실 공산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다가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해서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인민들의 바탕에는 배금주의가 깔려 있다. 그러니까 이우는 중국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다. 결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옳은 선택이었고 많은 중국인들이 이를 기회로 부와 명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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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시 정부가 운영하는 공설운동장

 

필자의 생각에 중국은 우리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초자본주의 국가이다. 예를 들어 이우 공설운동장에 '88’이라는 서양식 바가 있다. 소위 잘 나간다는 아가씨들이 있는 술집이다.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술꾼들을 유혹한다. 체육시설에 술집이 있다는 게 우리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체육시설을 유지, 보수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우 시정부는 이런 공간을 빌려주고 그 임대료를 체육시설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충당한다. 만약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어떨까? 아마도 연일 언론의 톱 뉴스를 장식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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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공시설이 밤에는 거대한 유흥음식점으로 변한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이우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가 땀과 모험으로 얻은 부를 맘껏 즐기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고 해외 유학을 다녀왔다. 기성 세대들이 롤스로이스나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를 타는 대신 이들은 페라리나 포르쉐, 람보르기니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어떤 고행을 겪었는지 이야기를 통해 들었지만 실감을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한 사업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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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에서 꽤 유명한 식당인 '지모환탕’. 과거 어렵게 살았던 이우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닭털과 사탕을 바꾼다’는 뜻을 지닌 지모환탕(鸡毛换糖)이라는 이름의 이우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 있다. 과거 어렵게 살았던 이우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오래전에 이우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품팔이를 갔다. 돈을 버는 것은 고사하고 먹여 주고 재워만 주면 어떤 일이든 감지덕지하던 때였다. 그 시기에 부지런한 이우 사람들이 장사에 나섰다. 중국식 사탕을 만들어 광주리에 담아 그것을 어깨에 메고 다른 지방으로 팔러 다녔다.

 

걸어서 장시성까지 가려면 열흘 이상이 걸렸다. 혼자 다니는 것이 위험해 열 명 정도씩 무리지어 다니고 잠은 길에서 잤다. 다른 지역에 도착한 이들은 그곳에서 사탕을 팔고 닭털을 샀다. 그 닭털로 다시 부채를 만들어 팔러 다녔다. 오늘날의 발전된 이우는 바로 이런 이우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뼈를 깎는 노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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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환 중국통신원은 1957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91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동차와 함께 하는 인생을 시작했다. 91년 국산 차동차로 미국 48개 주를 일주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92년 아시아 록스타로 호주를 일주하기도 했다. 93년 호주 웨스턴 랠리스쿨을 이수한 뒤 94년까지 호주 웨스턴 랠리 침피언십에 참가한 데 이어 홍콩-북경 랠리(94년), 태국 랠리(94년) 등 다양한 랠리에서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그의 랠리 참전기는 <카라이프>에도 연재되었다. 93년부터 96년까지는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를 소개하는 기사와 시승기를 썼다. 저서로는 '대머리 돈키호테’, '차를 알고 문화를 세우는 여유로운 운전’이 있다.


지금은 11년 넘게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사업상 중국을 비롯해 미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영국,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를 오가고 있다. 머지않아 미국과 호주를 일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을 자동차로 일주하는 한편 남미대륙 일주 계획도 갖고 있다. 앞으로 본지 중국통신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중국 자동차 이야기와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의 재미있는 여행기를 실을 계획이다. 

 


글·사진 양인환 중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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