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Tomatina 스페인 뷰뇰에서 펼쳐지는 광란의 축제
2004-08-24  |   9,235 읽음
스페인 사람들만큼 축제를 즐기고 사랑하는 민족도 드물다. 거의 대부분의 도시가 매년 한 차례 정도는 퍼레이드와 카니발, 불꽃놀이, 춤 등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종교 페스티벌로 성주간에는 지역의 수호성인을 위한 미사와 화려한 행진 등이 나라 전역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이 나라의 축제 모두가 종교성을 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페인에는 즐거움과 재미를 위한 축제가 더욱 많다. 스페인 전역에서 매년 10만 가지에 이르는 크고 작은 축제가 펼쳐진다고 하니, 한 마디로 축제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축제 때가 되면 사람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거리와 광장을 점령하고 열기를 뿜어댄다. 이방인의 눈으로 봤을 때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잘 노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암묵적인 룰 안에서 토마토를 던져라
스페인의 수많은 축제 중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재미도 있는 축제가 바로 ‘토마토 전쟁’(la Tomatina)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이 축제는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인 부뇰(Bunol)에서 매년 8월 마지막 수요일에, 단 2시간 동안만 열린다. 부뇰은 인구가 채 1만 명도 되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지만 토마토 전쟁이 열리는 날이면 도시의 모든 기능이 마비된다.
동네 사람들과 전 세계 각 국에서 몰려든 수만 명의 관광객이 어우러져 서로에게 토마토를 던지며 광란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뒹굴며 마구 토마토를 던지다 보면 온몸은 어느새 토마토로 뒤범벅이지만 온갖 스트레스는 단박에 사라진다.
토마토 축제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친구들끼리 토마토를 던지며 장난을 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1944년 농민들이 토마토 값이 떨어진 것에 항의하기 위해 마을축제 때 시의회 의원들에게 토마토를 던진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1945년 마을축제에 참가하고 싶던 한 청년이 무작정 퍼레이드에 끼어 들자 이를 말리던 참가자들과 싸움이 일어났고 마침 인근 야채가게에서 토마토를 집어던진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 축제를 즐기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너나 없이 그저 트럭 가득히 실려온 토마토를 마구 던지고 맞으면 된다. 참가자 제한 또한 없다. 축제의 열정과 광기를 즐기려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해 보이는 축제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군중들을 열광시킨다. 토마토 전투에는 몇 가지 룰이 있다. 먼저 술병을 비롯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물건도 휴대하면 안 되고, 토마토는 상대에게 던지기 전에 으깨야만 한다. 이렇게 해야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을 토마토 범벅으로 만들 수 있다.
남자들은 가능하면 티셔츠를 입지 않는 것이 좋다. 입고 있으면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흥분한 참가자들이 옷을 찢는 경우가 있다. 간혹 일부 짓궂은 참가자들이 여자들의 옷은 물론 브레지어까지 찢는 경우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축제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즉시 던지는 것을 멈춰야 한다.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이런 룰이 잘 지켜져 내려와 토마토 축제에는 아직까지 커다란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평화로움, 광란, 그리고 다시 평화
축제가 열리는 당일의 부뇰은 평소의 평화로움을 상실한 채 분주하게 돌아간다. 발렌시아에서 기차를 이용해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부뇰 기차역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기차 안에서부터 들떠 있던 관광객들은 너나할것없이 마을광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모두들 토마토의 물결 속으로 아낌없이 뛰어들 심산인지 대부분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간단한 복장들 일색이다. 축제는 보통 아침 11시에 시작되지만 이미 한참 전부터 수만 명이 몰려들어 메인 무대가 되는 마을의 중앙광장과 주변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고 만다.
11시 정각.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면 8월의 뜨거운 태양열을 식히려는 듯 대형 살수차가 다가와 참가자들에게 물을 뿜어댄다. 이 뿐 아니라 지붕에서는 주민들까지 호수나 양동이로 물세례를 퍼붓는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참가자들은 거대한 함성소리와 함께 어떤 상대에게든 웃옷이나 수건, 신발을 벗어 던지기 시작한다. 토마토 던지기의 전초전인 셈이다.
이윽고 탑에서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사람들은 “토마테! 토마테!”를 외치며 열광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토마토를 가득 실은 트럭이 좁은 골목과 인파를 헤치고 나타나면 본격적인 토마토 전투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토마토를 주워 던져댄다. 내 편, 네 편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본능적으로 토마토가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던지는, 단순한 반사행위만이 존재할 뿐이다. 넘어지고, 소리치고, 웃으며 난장판을 벌이다보면 어느새 축제의 주인공이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토마토 전투에서 구경꾼이나 카메라를 든 사람은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눈에 띄었다 싶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사방에서 토마토가 날아든다. 이쯤 되면 구경꾼도 가만히 맞고만 있을 수는 없다. 토마토, 옷, 신발, 어떤 것이든 손에 잡히는 것이면 뭐든지 집어던지며 축제 속으로 뛰어든다. 토마토 축제가 해가 갈수록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그 자리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이 축제의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트럭이 몇 번이나 더 나타나 토마토를 뿌리면 어느새 영원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한 시간이 지나고 오후 1시 정각에 축제의 종료를 알리는 폭죽이 터지며 흥겨운 난장을 마감하게 된다. 거대한 함성과 토마토의 물결 속에서 모두들 웃고 떠들며 즐기던 짧은 순간의 축제는 이렇게 끝이 난다.
광란의 열기가 휩쓸고 지나간 도시는 완전히 붉은색 일색이다. 창문이고 벽이고, 사방이 토마토 빛으로 염색되어 있다. 거리에는 축제의 잔해들이 그대로 토마토 주스가 되어 흘러 넘친다. 여운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온몸에 토마토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누워 웃고 떠들며 잠시동안 광대가 되어버린다. 머리, 눈, 코, 입 할 것 없이 토마토를 온통 뒤집어쓰고 서로를 보며 히죽히죽 웃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세상의 번뇌와 모든 걱정을 잊은 듯한 그들의 표정은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이런 여운도 잠시, 이내 도시를 일상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청소가 시작된다. 살수차가 강력한 물줄기를 뿜어내면 수만 톤에 달하는 축제의 잔해는 순식간에 지하 배수관 속으로 빠져들며 모습을 감춘다. 피해를 막기 위해 건물들에 쳐놓았던 비닐과 천을 걷어내면 마을을 뒤덮고 있던 축제의 흔적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불과 10여 분 전까지만 해도 수만 명이 모여 흥겨운 축제를 즐긴 장소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1년을 책임지는 8월의 단 하루
주민들이 청소를 할 즈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마토 반죽이 된 참가자들은 주민들이 뿌려주는 물로 몸을 씻는다. 35℃가 넘는 스페인의 강렬한 여름 햇빛과 땀, 토마토로 범벅이 된 참가자들에게 이들이 뿌려주는 한줄기의 물보라는 시원한 청량음료와 같은 역할을 한다. 거리에서 잔해물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나면 참가자들은 골목 곳곳에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며 축제의 마지막 열기를 만끽한다. 모두들 낯선 얼굴이지만 금방 친구가 되어 마냥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적과 우군, 승자와 패자의 구분 없이, 단지 축제 그 자체를 만끽한 다음의 해방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삶은 언제나 고달픈 그림자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과 번잡한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1년에 한 번, 힘찬 생명의 숨소리를 불어넣는 토마토 축제는 다시 1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희망의 불꽃이다. 한바탕 신명나는 난장판을 벌이고 나면 무거운 세상의 짐도 갑자기 가벼워지고 새로운 힘이 솟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까짓 축제 하나에 야단법석을 떤다고? 토마토 축제의 광기를 단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페인 부뇰에서 보내는 8월의 마지막 수요일을 기다리게 된다.

스페인 토마토 축제 여행정보

● 항공 : 네덜란드항공(KLM)이나 타이항공(TG)이 암스테르담과 방콕을 경유해 스페인까지 운항한다. 스페인에서는 발렌시아에서 부뇰까지 수시로 기차가 운행된다(1시간 소요).
● 장소 및 방문시기 : 발렌시아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부뇰에서, 매년 8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열린다. 토마토 던지기는 12시부터 1시까지 벌어지지만, 실질적인 축제는 오전 11시부터 시작된다. 11시부터 이미 수만 명의 참가자가 모인 가운데 물을 뿌리고 옷과 신발을 던지는데, 이 또한 토마토 던지기 못지않게 재미있다.
● 날씨 : 8월의 스페인은 그야말로 찜통더위다. 한낮의 온도는 35℃를 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밤에도 30℃를 넘는 경우가 많다. 피부와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외선 차단크림과 선글라스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주의할 점 : 축제중에는 가능하면 카메라를 소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사방에서 정신 없이 토마토가 날아든다. 만약 카메라를 꼭 지녀야 한다면 비닐로 잘 싸서 보호하도록. 수만 명이 좁은 공간에 몰려 있기 때문에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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