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 남미대륙 속의 작은 네덜란드
2004-08-18  |   6,486 읽음
열대 우림에서흘러나오는 강은 바다처럼 넘실댄다. 흔히들 강은 땅과 땅 사이를 가르는 경계가 된다고 한다. 나라와 나라가 강을 두고 마주보면 강은 바로 국경이 되는 것이다. 강의 하류는 경계가 너무나 명확하다. 그러나 넓었던 강이 상류로 올라가면서 수많은 지류를 만나면 강폭은 좁아지다가 어디서부터가 본류이고 어디서부터가 지류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된다. 여기서부터 혼란의 불씨는 커져간다.
남미대륙 북단은 왼쪽으로부터 큰 나라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가 자리잡고 오른쪽 끝으로 조그마한 세 나라가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있다. 가이야나와 수리남, 기아나다. 도토리 세 개가 브라질이라는 코끼리 머리 위에 앉은 꼴이다. 가운데에 자리잡은 나라 수리남은 왼쪽의 가이야나와 오른쪽에 있는 프랑스령 기아나와 국경 분쟁에 시달린다. 양쪽의 국경이 되는 코란틴 강과 마로니 강이 상류에서 찢어지며 본류와 지류를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제각기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땅을 넓히려 목소리를 높인다.

유럽 열강의 침입으로 질곡의 세월 보내
수리남이 걸어온 길을 보면 ‘한 나라의 땅도 사람 사는 집처럼 주인이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메리 인디오들이 고기잡고 농사짓고 사냥하며 조상 대대로 평화롭게 살던 이 땅을 유럽인들이 처음 본 것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7년 후가 되는 1499년이다. 신대륙 어딘가에 황금으로 뒤덮인 땅, 엘도라도가 숨어있다는 소문이 유럽에 퍼지자 일확천금을 노리는 유럽의 건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1600년대 초 가장 먼저 이 땅에 정착한 유럽인은 더치(네덜란드인)들이었다. 이들은 정글을 뚫고 강을 건너며 엘도라도를 찾아 헤맸지만 헛수고라는 걸 깨닫고 이 땅에 사탕수수와 코코아, 열대과일 농장을 마련했다. 네덜란드 무뢰한들은 땅만 빼앗은 게 아니라 땅주인인 인디오들을 잡아 노예로 부리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인디오들은 거의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면역력이 전혀 없는 인디오들에게는 유럽인들이 옮긴 감기도 치명적이었다. 여기에 악랄한 유럽 농장주들의 혹사가 더해져 인디오들은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농장이 늘어나면서 노동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백인들은 서부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을 시작했다. 대서양을 건너온 건장한 흑인노예들이 농장에 투입되었다.
달콤한 설탕과 고소한 코코아 그리고 메이스 후추 같은 온갖 열대 향신료는 유럽인들의 미각을 미치게 했다. 농장은 더더욱 커지고 노동력의 수요는 계속 늘어만 갔다. 쇠사슬에 묶인 흑인노예들도 계속 들어왔다. 농장주들의 혹사에 견디다 못한 흑인노예들은 농장을 탈출해 몰래 마련해둔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 정글 속으로 들어갔다.
세월이 흐르며 유럽인들은 입맛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귀족들의 가구는 그때까지 오크(참나무)와 단풍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수리남 정글에서 베어낸 마호가니와 로즈로 만든 가구의 화려한 색깔과 나무 문양은 오크와 단풍의 목질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유럽인들의 벌목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카리브 인디오들이 모여 사는 갈리비 마을
처음엔 네덜란드가 수리남을 지배하다가 네덜란드의 군사력이 약해진 틈을 타 영국과 프랑스가 이 땅을 차지하고 협상에 의해 또다시 수리남은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었다. 19세기에 들어 아프리카 흑인노예를 들여오기 어렵게 되자 그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끌고 왔다.
1975년 마침내 수리남은 독립했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아메리 인디오들은 거의 사라지고 아프리카에서 잡혀왔던 흑인노예의 후손과 인도네시아인들 그리고 인도의 힌두교도들과 무슬림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되었다. 농장을 탈출했던 흑인노예 후손들은 부시네그로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정글 속에서 살고 있다. 이 나라 국어는 네덜란드어지만 부시네그로들은 아직도 서부 아프리카 가나어를 쓰고 있다.

독립 후 이 나라는 혼란에 빠진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데시는 잔인하게 민주 인사들을 처형하고 부시네그로들을 반정부적이라고 단정해 정글 속의 마을을 불태우며 무자비한 탄압을 계속했다. 온 나라가 내전에 휩싸였다.
나라를 피로 물들이는 소용돌이가 멈춘 것은 겨우 4년 전이다. 피를 뿌렸던 내전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이제야 찾아온 평화를 이 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한다. 수도 파라마리보는 이제 중남미에서 밤길을 혼자 걸어도 겁나지 않는 몇 안 되는 안전한 도시가 되었다. 도시 전체가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식민지시대 네덜란드풍 목조건물이 그 시절 그대로 남아있다. 파라마리보에서 북쪽 해안선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세 시간쯤 달리면 누런 마로니 강을 마주하며 도로가 끝난다.
강 건너 보이는 타운은 프랑스령 기아나땅 상로랑이다. 이 마로니 강가에서 인디오 청년 조지를 만났다. 유럽인들이 이 땅을 짓밟은 탓에 거의 사라졌던 아메리 인디오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지를 따라 모터보트를 타고 그의 마을 갈리비로 가는 길은 강 하류로 물살을 가르며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
카리브 인디오 1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갈리비 마을은 조용하게 숲속에 숨어있다. 그들은 모두가 어부들이다. 마로니 강이 대서양으로 빠지는 하구엔 고기떼가 우글거린다.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오들은 이제 이 나라에서 소수종족에 불과하다. 그들은 덤덤하게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함께 묻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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