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라틴문화의 중심지를 찾아서 2004 로키-안데스 아메리카 대탐험 세 번째 이야기
2004-07-29  |   6,820 읽음
칠흙 같은 어두움을 뚫고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넘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미국 출국 스탬프를 찍고 멕시코 입국에 성공하지 못하면 국제미아가 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중남미 첫 국경 통과는 이렇게 불안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식민시대의 중심도시, 사카테까스와 당나귀 할아버지
미국 국경 검시관에게 탐험의 목적을 설명하고 마침내 그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미국 국경을 통과했다. 하지만 멕시코 국경은 어두운 밤을 이용해 불법입국을 하고 말았다.
멕시코 최북단의 국경 도시 시우닷 후아레스의 첫인상은 혼돈의 지옥과 같았다. 치안부재와 자동차 도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다음날 자수하는 심정으로 국경으로 향했다. 멕시코에 긴급 투입된 장화민 대원의 능숙한 통역 덕분에 세관신고와 입국신고를 마치고 마침내 라틴 장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엔진을 걸자 무쏘 SUT는 춤추듯이 달린다. 멕시코 북부도시는 숨막힐 정도로 거칠고 황량했다. 그리고 뜨거웠다. 멕시코 전통음식 타코와의 만남, 그리고 그 음식과의 오랜 사랑이 시작되었다. 대원들은 또르띠아에 소스와 고기를 넣어 출출한 배를 채웠다.
붉은 황야를 가르며 멕시코 최초의 도시 치와와를 지나 멕시코 식민시대의 중심도시 사카테까스로 행했다. 미국 국경을 넘은 지 3일 만에 당도한 중부 최대의 도시는 멕시코의 신비를 유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수도원과 교회, 궁전, 광장 등 화려했던 스페인 스타일의 도시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19세기 초반 스페인 통치가 끝나면서 이 지역에서 무장봉기와 반란이 일어남으로써 사카테까스는 식민시대의 중심지에서 ‘독립의 요람’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사카테까스로의 진입은 그 자체가 경이로움이었다. 언덕에 올라가 보면 산만한 듯한 구성과 색채가 독특한 느낌을 주고, 강인한 매력을 뿜고 있다.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부파(Bufa) 언덕에 오르기 위해 대원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향한다. 멕시코의 혁명 영웅 판초 빌라(Pancho Villa)의 동상이 우뚝 선 부파 언덕은 파란의 역사와 혁명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이 도시에서 탐험대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대를 이어 50여 년 동안 골목 어귀를 지키고 있는 당나귀 할아버지와의 만남이다. 할아버지는 마게이(용설란이라 불리는 선인장)라는 거대한 선인장에서 매일 꿀물 원액을 채취해 3시간 거리의 산길을 걸어와 이른 새벽 사람들을 만난다고 한다.
당나귀 할아버지라 불리는 노인 댁을 방문하기 위해 전대원은 머나먼 산골 마을의 용설란밭을 찾아갔다. 산길로 당나귀를 끌고 돌아온 노인이 우리보다 먼저 집에 와 있었다. 오전 11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노인은 부인과 며느리, 개 두 마리, 당나귀 그리고 닭 몇 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순박한 인상의 당나귀 노인은 용설란밭에 나가 즙을 채취해 탐험대에게 내밀었다.
떠나올 때도 당나귀를 이끌고 배웅해 주었다. 누추한 집을 찾아온 첫 외국이이라며, 부인과 함께 즐거워하던 노인과 작별하며 적은 사례금을 쥐어 주자 마지못해 사양치 않고 받던 그 손길, 어린 소년 같은 미소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탐험대는 남쪽으로 핸들을 돌려 구아나후아또로 향했다.

디에고 리베라의 고향, 구아노후아또
탐험대는 멕시코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광활한 중부 산악지역은 식민시대의 중심으로 스페인 문화와 멕시코 스타일을 간직하고 있었다. 도시 심장부를 향해 전진한다. 그러나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미로 속을 헤매다가 코너를 돌자 파스텔톤의 화려한 색상의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광의 도시 구아노후아또가 다가온다.
도시의 구성이 재미있다. 처음에는 화려한 색채로 다가서더니 이내 미로가 당황케 하고, 그것은 곧바로 재미로 변한다. 강 바닥을 개조한 지하차도가 굽이진 도시를 관통하는 진입로였던 것이다. 어두운 갱도를 지나듯 일방통행의 지하차도를 달려 환한 세상에 당도했다.
더 이상 차를 타고 다닐 수 없어 주차장에 무쏘 SUT를 세워 두고 나선다. 돈키호테 박물관을 지나 만남의 공원으로 향했다. 월계수가 푸르른 그늘을 드리운 광장 카페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즐기고, 개를 데리고 한가롭게 산책을 한다.
오랜만에 즐기는 휴식이다. 대원들은 모두 도시의 역사와 낭만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지하도로의 매력과 독특한 건축물, 수준 높은 벽화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디에고 리베라의 생가가 이곳에 있었다. 사회 비판과 인간발전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현한 그의 난해한 그림들은 초기 이태리 프레스코화와 콜롬버스 신대륙 발견 이전의 시각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우화와 상징성을 담고 있다. 1886년 리베라가 태어난 집에는 1층에 생전에 쓰던 가구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고, 2층과 3층은 그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키스의 계단으로 향했다. 청춘 남녀가 1m도 안되는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사랑에 빠졌다. 연인들은 키스를 나누고 사랑을 이어오다 아버지에게 들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슬픈 사랑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키스의 골목을 추억하며 몰려든다.
대원들도 인산인해를 이루는 골목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 드디어 키스를 나눈다. 남자 대원들끼리…. 이 모습을 보고 관광객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밤이 되자 잠자리가 걱정이었다. 취재와 탐험만큼이나 대원들을 힘들게 한 것은 저렴한 숙소를 찾는 일이었다. 숙소 찾기를 탐험의 일과로 인정한 뒤로는 직관으로 숙소를 찾아내고 어디서든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대원들은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로의 입성(?)했다. 라틴문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스페인도 방문한 적이 있지만 멕시코 여행은 스페인보다 더욱 기대되고 긴장감 또한 크다.

마리아치와 데낄라로 유명한 과달라하라
데낄라와 마리아치는 과달라하라의 모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마리아치(Mariachi)의 서민적이면서도 슬픈 멜로디가 과달라하라의 으뜸가는 매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리아치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인근 도시 틀라께빠께(Tlaquepaque)의 공연은 더욱 낭만적이다.
거리의 악사인 마리아치라는 직업은 아이들에게도 흥미와 도전의 대상이다. 마리아치의 세계에 푹 빠진 어린 소년들도 눈에 띈다. 이처럼 마리아치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과달라하라의 전통예술이자 문화의 한 장르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4∼7명으로 구성된 마리아치가 한 곡을 부르고 받는 돈이 만 원도 안된다. 이것을 나누어 갖기 때문에 생활이 빈곤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하다.
하루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술 데낄라를 찾아 나섰다. 데낄라 생산지인 데낄라 마을로 무쏘 SUT가 들어서자 이상한 차가 나타났다며 사람들이 웅성댄다. 데낄라 공장을 향해 차를 몰고 힘차게 달려간다.
데낄라 제조는 마게이 원료 채취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용설란의 줄기를 치고, 덩어리를 둥그렇게 다듬는 작업. 그리고 정리된 덩어리를 트럭에 옮겨 싣는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다.
원료는 거대한 찜통에 담아서 찐다. 일주일 정도 익히면 잘 익은 고구마 같은 달콤한 향기가 나고 단내가 혀끝을 감돈다. 이것을 잘게 다듬어 채즙과 발효, 증류를 거쳐 멕시코의 대표적인 술이면서 세계인이 즐기는 주류로 탄생한다.
마을 어디에나 데낄라 판매점이 있고, 오크통에 담긴 데낄라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술 이름을 이 마을에서 따온 것처럼 온통 마게이(용설란) 천지고, 마게이를 채집하여 운송하는 트럭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마게이 농장의 광활함에 놀라고 거대한 마게이를 채취하는 일꾼들의 노련한 칼 놀림에 또 한번 감탄한다.
마게이 채취와 떼낄라 제조공정의 흥미로움, 마리아치들의 소박하면서도 열정적인 연주는 과달라하라의 강인함과 정통성에 더욱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는 멕시코 중부도시 중 가장 강인하고 색채가 농후한 문화도시다.
이어서 일행은 아메리카 대탐험 제2의 출발지인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중남미 종단 대기행을 위한 팀스위치가 멕시코시티에서 이루어진다. 2진 안데스 대원이 유럽을 거쳐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알래스카를 출발해 이곳까지 동고동락한 로키 대원들과 아쉬운 작별도 해야 한다. 모처럼 안데스팀과 로키팀이 만난 멕시코시티에서 우리는 자동차 정비와 함께 이후 중남미 탐험을 위한 준비의 시간을 가졌다.
중심가 소나로사와 혁명광장 소칼로를 오가며 적응훈련과 함께 운전요령, 무전교신법, 위급상황 대처요령 등을 익히며 만반의 준비를 해나갔다.

인디오 마을 오악사까에서의 잊지 못할 경험
탐험대원과 함께 10년 만에 콜로니얼 도시인 오악사까(Oaxaca)를 방문하니 설레임이 크다. 10년 전에는 밤차를 타고, 눈을 감고 오악사까를 찾았지만 지금은 한국산 무쏘 SUT를 타고 대원들과 함께 가는 길이다. 세계 최장의 대륙을 종단한다는 감동과 함께 멕시코 남부 중심고도(古都) 오악사까를 방문한다는 설레임에 만감이 교차한다.
이른 아침 오악사까 최대의 유적 몬테 알반 산 정상에 올랐다. 겨울이어서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멕시코시티의 유적 테오티와칸을 본 탓인지 장중함은 없지만 오랜 세월의 흐름과 추억의 더듬는 기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현지 가이드의 도움으로 몬테 알반 유적의 역사와 흔적을 더듬으며, 중심광장으로 향했다. 몬테 알반은 수 천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 온 사포떼까 인들의 비밀세계였다. 스페인의 16세기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이 지역을 정복한 이후에도 스페인군들은 매력적인 유물과 지형을 그대로 보존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심한 박해를 피할 수 있었던 원주민들은 오악사까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100만 명이 넘는, 멕시코에서 가장 큰 원주민 거주지로 남게 되었다. 덕분에 원주민의 문화가 잘 보존되었고, 오늘날 민예품의 보고로 남게 되었다. 오악사까에서 남동쪽으로 30여km 지점에 자리한 인디오 노천시장 틀라꼴룰라(Tlacolula)가 바로 그것이다.
일요일마다 장이 서서 인근 촌락에서 모여든 주민들이 식료품과 생필품을 교환한다. 특히 화려한 민예품은 세계인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인디오의 세계관을 표현한 자수의 현란함을 떠나서 전통을 중요시하는 원주민들의 강한 자존심에서 우러나는 색상이기 때문이다.
오악사까를 떠나며 과달라하라와 마찬가지로 광대한 마게이밭을 지나게 되었다. 재배단지 주변에는 데낄라가 아닌 메스깔(Mescal)이라는, 벌레와 함께 마시는 독특한 토속주를 휴게소에서 팔고 있었다. 휴게소에 들른 일행은 메스칼에 취해 주인집 아들과 친해졌고 내친 김에 그 집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그 집에서는 마게이 재배뿐만 아니라 오악사까의 토속주 메스깔을 직접 주조하고 있었다. 말을 이용해 마게이 재배와 주조를 하는 것을 보고 전대원들이 나서서 마게이 채취와 운반, 그리고 메스깔 주조 공정을 도우며 한나절을 일했다.
사포떼까의 웅장한 유적 몬떼 알반과 원주민들의 강한 자존심이 배어 있는 음식, 화려한 옷을 우리는 잊을 수 없었다. 더불어 벌레와 함께 마시는 토속주 메스깔의 독특한 향과 주조기법이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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