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원을 가로지르며 끝없는 남행길을 달리다
2004-07-29  |   4,916 읽음
몇 달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앞길이 몇 번이나 뚝뚝 끊겼다. 세닉 RX4에 기계 고장이 일어나는가 하면 앞을 가로막는 폭풍설이 휘몰아쳤다. 유콘 지방에서 혹한에 갇혀 썰매개나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과 어울려 한겨울을 꼬박 보냈다.
이런 기다림 끝에 다시 길에 나서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길이었다. 1년 전 북쪽 알래스카로 가면서 따라간 오직 한 가닥의 도로였다. 그 유명한 ‘알래스카 하이웨이.’ 2천km의 꾸불꾸불한 도로는 북방의 숲 속으로 사라졌고, 로키산맥의 봉우리들 사이를 에돌아 골짜기에서 큰 강으로 흘러갔다.
익숙했지만 이 도로는 아득한 거리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유콘 지방의 수도 화이트호스 남쪽에서 이름을 들먹일 만한 첫 도시는 도슨 크리크였다. 남쪽으로 2천km를 넉넉히 뻗어나간 알래스카 하이웨이의 원점이었다. 파리-베를린의 2배나 되는 거리. 두 도시 사이에는 기름을 넣고 쉴 수 있는 역마차 정거장 노릇을 하는 곳밖에 없었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우리는 크루즈 컨트롤을 걸고 남쪽을 향해 일로매진했다.
다행히 이 신비로운 도로를 에워싼 화려한 광야가 눈을 즐겁게 했다. 봄이 활짝 피고 있었다. 밝고 상큼한 초록이 끝없는 숲 위로 나타나고 있었다. 곰들이 가까운 길가에서 풀을 뜯고 있었고, 우리가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강물을 덮고 있던 얼음장이 떠내려가기 시작했고, 녹아내리는 얼음장이 물결에 실려 갔다. 멀리 갈수록 날씨는 점점 따뜻해졌다.
왓슨 레이크 남쪽은 날씨가 얼마나 맑은지 한여름 같았다. 겨울옷과 비버모자를 벗을 때가 되었다. 1년 전 아시아를 떠날 때 벗어 두었던 샌들이 반가웠다. 몇 킬로미터를 더 가자 온천이 우리를 맞았다. 참을 수 없었다. 거대한 캐나다 삼림 한복판에서 유황천에 서둘러 몸을 담갔다. 마치 꿈 속이거나 신화를 체험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그림에 딱 한 가지 그늘이 있었다. 바깥 기온이 너무 따뜻해 온천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하 40℃를 내려가는 북극권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뜨거운 온천욕은 유달리 신기했다. 도로는 앞으로, 앞으로 뻗어 나갔고 끝이 없어 보였다. 몇 주일이나 수리센터에 갇혔던 세닉은 다시 태어나 힘차게 달렸다.

막막한 대평원의 품 속에서
도슨 크리크에 도착하자 풍경이 갑자기 바뀌었다. 로키의 산봉우리들은 물러나고 광대무변한 대평원이 펼쳐졌다. 크리 인디언의 땅. 겨우 며칠 전 눈이 사라졌다. 그러나 시골의 색깔은 늦여름을 연상시켰다. 지난해 가을걷이를 한 들판은 아직 8월 말처럼 누랬다. 8개월이나 되는 겨울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저기에 자리잡은 빨간 목조 곳간의 산뜻한 건물이 사람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아주 역사가 짧은 지방이 빚어낸 진짜 건축물이었다.
앨버타는 내년에 100주년 기념식을 치른다. 오랫동안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만 이 지방을 돌아다녔다. 모피를 찾아 서부로 온 대담한 소수의 덫사냥꾼이 있었을 뿐이었다. 1885년 유명한 캐나다 태평양 철도가 완성되어 대서양 연안과 태평양 연안을 이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유럽 이주민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이곳 땅값은 아주 싸다. 퀘벡이나 온태리오의 품팔이나 재간꾼이 와서 새 생활을 시작하기 좋은 고장이다. 모든 것을 다시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아직도 그들의 정신이 살아 있는 개척자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마을, 학교와 공동체를 건설한 자신의 노력을 자랑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이 땅에 자기들의 자취를 남겼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북극권보다는 훨씬 남쪽이지만 대평원의 겨울도 매섭다. 지난 1월 기온은 영하 60℃로 내려갔고 바람이 쉬지 않고 몰아쳤다. 때로는 가혹한 기후와 무서운 폭풍설이 이 지방을 황폐화시킨다. 악명 높은 1930년대의 대공황은 이 고장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2003년 5월 이후 광우병 소동으로 미국과 캐나다 국경이 막혔다. 수시로 교역을 하는 두 나라의 양축농민에게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막막한 대평원에서 많은 카우보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헤매는 실정이다.

가난한 백인 노동자의 용광로
자갈길이 수백 킬로미터씩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그런 곳에서 세닉이 방향을 잃을 일도 여정을 놓칠 리도 없었다. 5월 초인데도 수은주는 사정없이 올라가 영상 27℃를 가리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캐나다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미처 알지 못했다.
북부 앨버타에 무더위가 닥친 3일 뒤 에드먼튼 부근에서 눈이 오기 시작했다. 해질 녘에 눈을 의심할 광경이 벌어졌다. 얇은 싸락눈이 고운 핑크빛 솜처럼 땅을 덮었다. 이미 곡식을 심은 농민들을 탄식케 할 충분한 재앙이었다. 오랜 겨울을 보낸 모든 사람들이 조마조마했다. 빨리 여름이 오기를 비는 마음 간절했다.
우리는 광막한 대평원 한복판에서 정동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거대한 트랙터들이 새로 곡식을 심으려고 들판을 다듬고 있었다. 미국에 갈 밀 저장용 사일로가 끝없이 퍼져 있었다. 곡물의 사막 한복판에 놀라운 도로표지판이 나타났다. ‘지루빌’, ‘팔러’, ‘생 폴’ 등 영어 사용국 캐나다에 프랑스어를 쓰는 고장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생 앙드레에서 온 마르탱은 우리 차에 달린 프랑스 번호판을 보자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이곳 앨버타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어를 썼다. 그의 아버지는 1920년대 퀘벡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마르탱이 말했다.
“이 마을 주민 80%가 프랑스어를 쓰고 있어요. 학교와 행정기관에서도 프랑스어를 사용하지요. 오랫동안 싸워 이룩한 성과예요. 영어 사용자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답니다. 우리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니까요. 우크라이나인, 인디언이나 중국인도 이곳으로 많이 와 살고 있는데, 모두가 정답게 살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대평원 한복판에서 들려 오는 진정한 관용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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