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티칼(Tikal) 화려했던 마야문명의 꽃
2004-07-15  |   8,321 읽음
국경을넘어갈 때 항상 느끼는 것은 두 나라의 경제력 격차가 입국심사에 미치는 미묘한 차이점이다. 경제력의 격차는 노동시장에서 임금의 차이로 이어진다. 부자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들어갈 땐 비자 받기도 쉽고 입국심사도 간단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들어갈 땐 까다롭기 짝이 없다.
가난한 나라 국민은 부자나라로 기를 쓰고 들어가려 하고 부자나라는 한사코 못 들어오게 하는 이유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나라의 노동시장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나라 국민이 가난한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그 나라에 가서 돈을 쓰자는 것이기 때문에 환영이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그렇고 우리나라와 중국이 그렇다.
한 지역에서 여러 나라를 여행할 땐 부자나라에서 가난한 나라 순으로 가는 것이 편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번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역순이 되었다. 중미의 과테말라와 벨리즈(Belize)는 도토리 키 재기지만 그래도 과테말라가 비교 우위에 있어 벨리즈에서 과테말라로 들어가는 국경검문소는 장사진을 이뤘다.

울창한 정글 숲에 색색의 열대동물 노닐어
카리브 연안의 흑인소국, 벨리즈의 수도 벨모판에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한 시간 반쯤 가면 국경마을 카르멘에 닿는다. 간단한 출국신고 후 과테말라의 멘코스를 밟으면 긴 입국심사 행렬이 줄을 잇는다. 지겨운 시간 죽이기 끝에 내 차례가 되자 카키색 제복을 입은 콧수염 사내가 여권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어본다.
“여행 목적은?”
“티칼을 찾아서.”
쾅, 두말없이 스탬프를 찍고는 고개를 들어 빙긋이 웃으며 “피라미드엔 올라가지마”라며 손가락 짓을 한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땡큐”를 연발하고 마침내 과테말라로 들어갔다.
과테말라 국경마을 멘코스에서 탄 콤비는 지겨운 기다림 끝에 만원이 되자 마침내 출발이다. 멘코스를 벗어나자마자 흙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산 넘고 물 건너 서쪽으로 달린다. 푹푹 찌는 날씨와 냉방이 안 되는 고물차에 땀 냄새로 범벅이 된 정원초과 승객들……. 차라도 옆으로 지나가면 노란 흙먼지를 꼼짝없이 뒤집어 써야한다. 한 시간 반쯤 달려 엘 크루세에 도착, 거기서 다시 차를 갈아타고 북쪽으로 한 시간쯤 달려가면 울울창창한 열대 정글에서 원숭이 울음소리 요란하게 들리고 앵무새가 날아오르는 티칼(Tikal)에 닿는다.
태양이 떠오르는 뚜껑처럼 정글 위에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올랐다. 울울창창한 정글이 하늘을 덮어 티칼의 오솔길은 한낮에도 어둑어둑하다. 이름 모를 온갖 새들이 제각각으로 울다 때로는 오색찬란한 모습을 살짝 보이며 후두둑 날고, 원숭이들은 겁 없이 길 앞에 어슬렁거리고, 나무 개구리들은 새소리에 질 새라 합창을 한다. 싱그러운 정글의 산소는 모세혈관까지 스며든다.

화려했던 마야(Maya)문명의 꽃, 티칼. 티칼은 도대체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사라졌을까? 치첸이차, 욱스말, 코판 같은 마야유적이 멕시코와 중미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티칼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티칼은 울창한 정글 속에 파묻혀 있다.
과테말라는 적도에 가깝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고원지대라 사시사철 시원하다. 그러나 티칼이 자리잡은 북동쪽은 저지대로 전형적인 열대우림 지역이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자랑하던 마야왕국 티칼은 왜 시원하고 기름진 땅인 고원지대를 외면하고 푹푹 찌는 더위와 맹수, 모기, 독충이 우글거리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해답은 단 하나, 이곳엔 납유리의 일종인 플린트가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린트는 철의 제련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티칼이 마야 최강의 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철이다. 이들은 온갖 철제 연장을 만들어 이웃나라에 팔아 부를 축적했다.

거대한 피라미드와 4천여 개의 유적 간직
티칼의 역사는 기원전 7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러나 세계 최대 마야유적인 현재의 티칼이 축조된 것은 예수가 태어난 기원과 동시대를 이룬다. 기원 250년 경, 재규어의 발톱이라 불리던 약스왕은 현재의 멕시코 중부까지 광대한 영역을 정복하고 다스렸다.
그 당시 전쟁 무기는 몽둥이와 돌멩이가 전부였지만 티칼 왕국의 군대는 날렵한 창과 칼로 무장해 적을 완파했다. 하지만 6세기 중반엔 티칼의 철 제련법을 익혀 칼과 창을 만든 동쪽의 이웃나라 카라콜이 티칼의 전쟁법을 전수 받아 티칼 왕국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티칼은 7세기 말엽까지 카라콜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8세기초 다시 나라를 찾은 티칼의 문더블콤왕이 티칼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현재 남아 있는 티칼 왕국의 유적 규모는 엄청나다. 575m2에 50m를 육박하는 피라미드 옆으로 4천여 개의 유적이 산재해 있어 그 옛날 화려했던 티칼 왕국의 위세를 말해준다. 대광장의 쌍둥이사원은 위대했던 티칼왕 문더블콤의 묘지다. 44m 높이의 석조물 속에 180여 조각의 옥과 90여 개의 뼈 조각 상형문자, 그리고 진주와 가오리 척추에 사람의 피로 그린 그림…….
남서쪽 엘문도 페르디도엔 하늘을 찌르는 피라미드가 정글을 뚫고 우뚝 솟아 있다. 이 피라미드엔 가파른 돌계단이 천국으로 오르는 길처럼 상층부로 이어진다. 계단 앞엔 경고판이 붙어 있다.
“계단을 오르지 마십시오! 경고를 무시한 미국인 두 명이 추락사했음!”
그제야 벨리즈에서 국경을 넘어올 때 콧수염 입국관리관이 했던 계단을 오리지 말라는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티칼 입구 광장에서 소형버스를 타면 티칼로 들어갈 때 거쳤던 엘크루세를 지나 한시간 반만에 플로레스(Flores)에 닿는다. 플로레스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동서로 길게 누워있는 ‘라고데 페텐이차’ 라는 거대한 호수의 서남쪽 끝엔 ‘산타 엘레나’ 라는 도시가 호숫가에 앉았다. 이곳에서 호수 안으로 500m의 가느다란 제방 길을 따라가면 인구 2천 명의 섬, 플로레스가 나타난다.
그 옛날, 정복자 스페니시들이 휴양지로 만들어 놓은 이 섬은 스페인 별장 같은 예쁜 집들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엔 그림처럼 예쁜 수공예점 기념품가게, 술집, 식당, 작은 호텔들이 늘어서 있다. 그루타스 동굴, 공예촌 그리고 산타 엘레나 동쪽 10km에 있는 아르카스 정글에 가면 콩고잉꼬 앵무새와 거미원숭이, 킨카주곰, 큰 소리를 지르는 하울러원숭이, 그리고 운이 좋으면 재규어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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