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꼭대기에 서다 끈질긴 겨울의 땅에 봄은 찾아왔지만…
2004-06-18  |   6,558 읽음
정말 지루하게 기다렸다. 이따금 우리는 인내의 한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갔다. 그러나 다행히 르노 세닉 RX4는 되살아났다. 화이트호스에 살고 있는 아일랜드 정비사 마크 오브라이언과 르노의 대담한 지원 덕택이었다.
프랑스에서 갓 도착한 새 엔진이 처음 굉음을 울리 때 벅찬 감격을 억누를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 엔진의 감미로운 멜로디를 거의 잊고 있었다. 눈신을 신고 가루눈 속을 멀리 걸어다녔던 것도, 개썰매를 타고 달리던 기억도 사라진 뒤였다. 그러다가 다시 핸들을 잡고 충실한 우리 짐말을 몰고 나서게 되었다.
처음 몇 킬로미터를 달린 뒤 좋은 소식이 들렸다. 유콘강에 드디어 봄이 왔다는 것이다. 6개월 동안 이 땅을 휘어잡던 눈, 진눈깨비와 영하 20℃에서 40℃를 오르내리던 기온이 사라지고 포근한 봄이 찾아왔다니! 겨우내 강 위에 엉켰던 얼음판에서 큼직한 얼음조각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얼음은 녹아 내리고 깨어지며 봄을 알리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과 영롱한 색깔이 돌아오고 있었다.
유콘 지방 주민의 모습도 변해 갔다. 느긋하고 큼직한 미소가 차차 돌아오고, 오랜 겨울에 지친 얼굴도 되살아나고 있었다. 낮의 길이도 변했다. 4월 중순이지만 오후 9시 30분까지 해가 지지 않았다. 유럽에서 해가 가장 긴 여름철과 같았다. 날마다 낮이 6분씩 길어졌다. 그러니까 1주일에 45분이었다. 엄청난 변화였다.

또 다시 덮친 겨울
유콘 지방에 여름 같은 날씨가 찾아왔다. 되살아난 세닉을 시험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화이트호스에서 남쪽으로 처음 나타나는 큰 도시가 알래스카 하이웨이를 따라 1천500km 떨어져 있었다. 그처럼 멀리 내려가기에 앞서 우리는 그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유콘 지방 북동쪽에 케노 시티라는 작은 광산도시가 있다. 케노란 카지노에서 벌이는 게임 이름과 같다.
우리는 그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비포장도로를 30km쯤 달리자 영화에나 나옴직한 고장에 들어섰다. 가문비나무숲에 덫사냥꾼들의 오두막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술집과 식료품상의 목조건물이 중심가 양쪽에 늘어서 있다. 색깔이 휘황한 건물 전면에 간판이 자랑스럽게 나붙어 있다.
훨씬 아래로 내려가자 광산박물관의 우중충한 건물이 나타났다. 근처에서 땅을 파서 횡재를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기념물이었다. 말과 마차가 없는 것이 영화와는 다른 점이었다. 그러나 케노의 마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밤을 세우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새로 온 눈이 융단처럼 덮여 있었다. 온 도시가 10cm의 눈을 뒤집어썼다. 전날 반소매를 입었던 우리는 스노부츠, 파카와 겨울모자를 다시 끄집어냈다. 함박눈이 세차게 내렸다. 무겁고 축축한 눈이었다. 나이 지긋한 덫사냥꾼이 세닉을 녹이는 우리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소리쳤다. “유콘에 온 걸 환영하오!”

북극권으로 올라가다
갓 내린 눈구덩이를 간신히 피하면서 케노를 떠났다. 그런데 같은 날 도슨시에 갔더니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사이 몇 킬로미터를 달려왔는데 봄이 되돌아왔다. 쓰고 있던 비버모자가 너무 더웠다. 앞으로 3일간 날씨가 쾌청하다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유명한 뎀프스터 하이웨이를 달려볼 황금의 기회였다. 도슨과 이누비크를 연결하는 750km의 비포장도로. 이누비크는 북극해의 바닷가에 있는 이누이트족의 땅이다. 이때는 어디서나 운전하기 좋다는 말을 듣고 운을 시험하기로 했다. 2004년은 이 신비로운 도로를 건설한 지 꼭 25주년 되는 해다. 놓쳐서는 안될 뜻깊은 기회였다.
알래스카를 돌아본 뒤 우리는 이런 여행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고, 25X짜리 연료통을 준비한 뒤 정북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아침 햇살을 반사하는 눈 덮인 산봉우리에는 아직도 안개 너울이 걸려 있었다. 우람한 소나무숲의 초록은 흰산과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이기도 했다. 냇물은 김을 내뿜고, 쌓인 눈더미 한복판을 뚫고 흘렀다.

그러다가 차츰 고도가 높아지자 설경이 세상을 덮었다. 해발 1천330m의 툼스톤 산꼭대기에 오르자 다시 한겨울이 우리를 에워쌌다. 지평선까지 뻗어나간 광막한 산줄기가 바로 아래 펼쳐졌다. 광대무변한 자연경관이 우리를 압도했다. 마치 지구의 정상에 올라온 듯 어디를 둘러보아도 눈길을 멈출 수 없었다. 주위 1천km의 땅에는 단 한 사람도 살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크든 작든 마을은 없었고, 여기저기 덫사냥꾼의 오두막이 몇 채 있을 뿐이다. 북쪽 저 멀리 산줄기가 평평해지면서 광막한 북극 고원을 이룬다.
덫사냥꾼 피터와 실베인
260km를 달리자 주위 풍경이 달라졌다. 흰눈 속에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천막 하나. 이곳에서는 ‘탐광꾼’ 천막이라는 그런 천막이었다. 19세기 말 골드러시 시절에 개척자들이 쓰던 것과 같았다. 잘라 묶은 가느다란 나무줄기에 희고 큼직한 캔버스를 덮어씌웠다. 입구에는 마치 환영단을 떠올리는 눈신 몇 켤레가 놓여 있었다. 캔버스 꼭대기에서 연기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들어오시오!” 얇은 칸막이 너머로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머리를 쑥 디밀었더니 매트리스에 누워 있는 피터와 실베인이 눈에 띄었다. 그들 둘레에는 온갖 장비가 흩어져 있었다. 난로와 솥, 식료품이 널려 있고, 장작난로 위의 빨랫줄에는 옷가지가 걸려 있었다. 굴뚝이 캔버스를 뚫고 밖으로 솟아올랐다.
“들어와서 함께 커피나 한 잔 합시다. 낮잠을 자다가 방금 깨어났소.” 희끗한 수염이 덥수룩한 피터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럴 것 같지 않았지만 피터는 덫사냥꾼이었다. 겨울철에 그는 훨씬 남쪽에 있는 통나무 오두막에서 산다. 그곳에서 덫을 놓고 살았다. 그러나 두어 주 전부터 봄기운이 돌자 퀘벡에서 온 숲 속 사람과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함께 천막을 쓰며 숲 속 생활을 했다. 북극권의 고독 속에서 불편한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나 피터와 실베인은 이런 생활을 무척 좋아했다. 그들이 떠난 남쪽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들의 운명은 외로이 자연 속에 묻혀 사는 이곳에 있다고 굳게 믿었다. 고된 생존경쟁을 하면서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고 한다. 이처럼 하얀 사막 한복판에서 축복의 황홀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음이 녹아 앞길 막히고
덫사냥꾼 친구들과 헤어진 뒤 계속해서 정북을 향해 달렸다. 그들의 천막에서 200km 가량 달리자 북극권과의 상징적인 경계선이 나타났다. 우리는 잠시 꿈쩍도 않고 서 있었다. 프랑스를 떠난 뒤 이 경계선을 건너는 것이 이번으로 3번째였다. 처음에는 2000년 7월 노르웨이 북쪽, 2번째는 지난 여름 알래스카 북쪽끝 프루드호 베이에 가는 길이었다.
정북을 향해 계속 달렸다. 그러나 포트 맥퍼슨을 지난 뒤 곧 길이 막히고 말았다. 마지막 300km 저쪽에 있는 이누비크로 가는 길에는 얼음다리 3개를 건너야 매킨지강의 하류 삼각지를 가로지를 수 있다. 그래서 이 길은 겨울에만 제구실을 할 수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도로 관리소가 건너가지 못하게 길을 막기로 했다. 따라서 앞으로 한달 남짓 동안 이누이트시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곳으로 가는 페리는 얼음덩어리가 녹기 전에는 다니지 못한다. 결국 끈질긴 겨울의 땅에서 봄마저 우리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남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실한 징조였다. 광막한 북극권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떠나기로 결심했다. 우리 앞에는 대평원과 퀘벡이 가로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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