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족석각(大足石刻) 중국 불교예술의 결정체
2004-06-15  |   7,197 읽음
중국의 불교 석각예술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불교가 흥한 남북조 시대에 그 유명한 운강과 용문석굴이 만들어지고 당과 송나라를 거치면서 그 제작기법은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져갔다. 송나라 때의 석각예술은 중국 특유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성격이 특징. 대족의 석각들은 대부분 당나라 말기에서 5대10국, 송나라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송 미인풍의 불상조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족(大足)은 중경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로 아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곳의 불교석각만큼은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는 용문이나 운강, 돈황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대족이라는 이름은 부처의 족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을 주변 산에는 약 5만여 점의 크고 작은 조각들이 남아 있다. 이 중에는 유교나 도교와 관련된 석각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교에 뿌리를 둔 것들로 불만(佛灣)이라고 하는 얕은 마애석굴에 조각되어 있다.

송대 석각의 전형 보여주는 북산

대족석각은 지난 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한 곳에 몰리지 않고 사방에 퍼져 있어 돌아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석각 분포를 보면 대족 북서쪽의 북산(北山), 남서쪽의 남산(南山)과 석적산(石篆山), 묘고산(妙高山), 동쪽의 탑이산(塔耳山), 동북쪽의 보정산(寶頂山) 등 곳곳에 널려 있다. 이처럼 산재한 대족석각을 짧은 시간에 모두 돌아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불교예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북산과 보정산 석각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 대족 시내에서 2km 거리에 있는 북산에는 약 500m에 걸쳐 290여 가지에 이르는 불교 석각군이 남단과 북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북산이 나온다. 완만한 계단이 놓인 산을 따라 다시 15분 정도 걷다보면 거대한 석각군이 몰려 있는 것이 보인다.
북산 석각은 대부분 송나라 때 작품이지만 3, 5, 9, 10, 51호 등 몇몇 석각은 당 말기의 것들이고, 이 중 51호 석각인 삼세불(三世佛)은 당나라 때 작품들 가운데서 최고의 수작으로 꼽힌다. 당나라는 중국역사상 영토나 문화적인 면에서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인 만큼 이 때의 석각들에는 장중하고 단단한 느낌이 감돌고, 송대에 만들어진 조각들은 세밀하고 우아한 면모가 돋보인다.
52호 석굴은 감실의 삼존상―아미타, 관음, 그리고 지장보살―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편성과 당대 특유의 중후함, 송대의 온화함과 현실감을 한데 품고 있어 당에서 송으로 넘어가는 중국 조각예술의 흐름을 잘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북산 석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136호와 155, 245호 석굴을 들 수 있고 그 중에서도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상을 그린 136호는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걸작으로 꼽힌다.
136호 석굴은 높이 4m, 내부 깊이만 6m에 이르는 큰 규모로 정면 벽에는 보리수 아래에 있는 석가모니가 새겨져 있고 주위 벽에는 문수, 보현, 관음보살과 역사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이런 조각들은 대부분 크기만 2m가 넘는 것들로 하나같이 여인의 요염함이 깃들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저속한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매끈하게 처리된 피부와 조각상 전체에서 느껴지는 시원시원함은 송대 조각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들. 원래 북산에는 1만여 개가 넘는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었다고 하나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수가 파손되었고 그나마 보존 상태가 괜찮은 것들은 철창으로 막아놓아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대족석각의 백미로 꼽히는 보정산

북산과 더불어 가장 많은 석각이 남아 있는 보정산은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보정산 석각은 당 말기부터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조각들은 모두 남송 시대인 1179~1245년에 완성된 것이다. 보정산은 크게 대불만(大佛灣)과 소불만(小佛灣)으로 나뉘는데 중요한 석각은 대부분 대불만에 자리하고 있다.
말발굽 모양을 한 15~30m 높이의 절벽에 크고 작은 31개의 조각군이 형성되어 있고 2개는 석굴, 나머지는 얕은 마애굴이다. 보정산 석각은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대형 석굴 중에서 거의 마지막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무계획적인 북산과 달리 세밀하고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고 화려하며 웅장한 규모도 매력적이다.
보정산 석각은 그 소재가 다양하고 느낌도 강렬해 대족석각의 백미로 불린다. 석각의 내용은 주로 불교경전에 나오는 것으로 조상(彫像)들은 매우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씩 살펴보면 육도윤회, 열반전(涅槃傳), 보은경변(報恩經變), 부모은중경변, 지옥변상, 천수관음(千手觀音) 등의 경변석화로 벽면에는 본존을 크게 드러내고 좌우의 여러 단에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군상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각 조상들은 남송 특유의 섬세함과 사실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보정산 석각 입구에서 관광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분노한 표정을 담고 있는 호법신상군. 절벽에 나란히 조각된 호법신상들은 밀교(密敎)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일반적인 선종의 호법신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밀교에서는 관음상을 주로 관능적이고 여성적으로 표현하고 호법신상은 남성적이며 분노에 찬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밀교의 호법신상이 석각 입구에 있기는 하지만 수문신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호법신상 다음에는 육도윤회(六道輪回)를 표현한 석상이 등장한다. 이 석상은 무상대귀(無常大鬼)가 커다란 바퀴를 입으로 물고 두 팔로 받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바퀴는 고해(苦海)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퀴 한가운데에는 사람이 앉아 있고 그의 가슴에서 나온 빛에 의해 바퀴는 다시 여섯 갈래로 나뉘어진다. 각 갈래마다 작은 동그라미가 있고 그 안에는 부처나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는 ‘만물의 시작은 심장에 있고 심장이 일체를 말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작은 동그라미는 모든 사람이 부처나 보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육도윤회도 옆에 있는 3개의 커다란 불상조각은 화엄삼성상(華嚴三聖像)으로 보정산 석각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불상의 표정은 부드러우면서도 진지하고, 드리워진 가사는 섬세하고 힘차다. 3개의 불상 중 문수보살의 손에는 탑이 놓여 있다. 책을 들고 있는 다른 지역의 문수보살상과 달리 대족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단순한 진리 일깨우는 부모은중경변

화엄삼성도 옆에는 기념품이나 책자를 파는 상점이 마련되어 있고 그 안쪽에는 1천 개의 손이 조각된 황금빛 천수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조금 어지럽게 느껴지는 이 불상은 송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역시 보정산 석각을 대표하는 조각 중 하나다.
보정산에서 가장 유명한 석각 중 하나가 석가열반상(釋迦涅槃像)이다. 높이 5m, 길이 31m에 이르는 와불로 보정산 석각에서 가장 규모가 커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이 석상은 석가모니가 인도의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든 것을 묘사한 것으로 와불 주변에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도열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열반상 바로 앞에는 꾸불꾸불한 도랑이 파여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많은 제자들이 그의 뒤를 따르려하자 부처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길에 금을 그어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를 표현한 것이다.
석가열반상을 지나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한없이 큰 은공을 묘사한 부모은중경변(父母恩重經變)이 눈길을 끈다. 태어날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입까지 비뚤어질 만큼 큰 출산의 고통을 참고 있는 임산부나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 자식을 품에 안고 누워 있는 여인상 등 주로 어머니의 은덕을 묘사하고 있다. 부모에 대한 효가 땅에 떨어져 버린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석각들이 의미하는 바는 종교적 가치나 예술적 상징성 그 이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정산 석각의 마지막 즈음에 자리한 지옥변상(地獄變像)에는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많이 묘사되어 있다. 나쁜 일을 저질러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창에 찔리는 모습이나 두 다리가 잘린 사람,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지는 사람들, 혀가 뽑히는 장면 등이 무척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어 소름이 끼칠 정도. 석각에 새겨진 ‘나쁜 일을 하거나 부모에게 불효하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글귀나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죄짓고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져 있는 남산 석각은 북산이나 보정산에 비해 규모가 작고 볼품도 없지만 두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도교 석각을 찾아볼 수 있다. 대족의 석각들은 단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교훈과 깨우침을 주어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대족석각은 세월이 지나면서 과거의 아름다움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조차 망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깨우침을 주기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족석각 여행정보

● 항공: 대족과 가장 가까운 공항은 중경과 성도에 있다. 중경은 아시아나 항공이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운항하고 성도는 화, 목, 일요일에 연결된다. 중경에서 대족까지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있고 약 2시간 걸린다. 성도와 대족 사이에는 매일 6번씩 직행버스(4시간 소요)가 오간다.
● 숙소: 대족에서 외국인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은 두 곳밖에 없다.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대족빈관(大足賓館, ☎ 023-4372-1888)으로 2인실을 298~498위엔(元)이나 할인 받을 수 있다. 대족빈관보다 싼 곳에 머물고 싶다면 우정대주점(郵政大酒店, ☎ 023-4372-4200)을 이용하면 된다. 버스터미널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있고 시설도 깨끗한 편이다. 2인실이 100~128위엔, 3인실은 158위엔이다.
● 먹거리: 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꺾어지면 바로 앞에 조형물이 서 있는 사거리가 보인다. 조형물 오른쪽에 있는 도로(중경 방향)에 저녁때면 많은 식당들이 문을 연다. 아주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어 식사하기는 무척 편하다. 이밖에 대족빈관 앞 보행자거리에도 밤이면 골목골목마다 노천식당이 많이 들어선다.
● 인터넷: 대족빈관 비즈니스센터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사용료는 1분에 0.6위엔(약 90원)으로 조금 비싼 편. 대족빈관 앞 보행자거리에도 싼값에 쓸 수 있는 PC방이 여럿 있다. PC방은 1시간에 2위엔으로 값은 싸지만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아 다운로드받아 써야 한다.
● 여행요령: 대족석각은 한 곳에 몰려 있지 않고 사방에 퍼져 있어 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볼 만한 것들은 모두 북산과 보정산에 몰려 있으니 두 곳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다. 보정산 석각이 가장 아름다우므로 아침 일찍 북산 석각을 들른 뒤 오후에 보정산 석각을 차분히 살펴볼 것을 권한다.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