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헤치며 알래스카를 달리다 ‘2004 로키-안데스 아메리카 대탐험’ 첫 번째 이야기
2004-05-19  |   6,266 읽음
국내 탐험여행 전문가 8명이 2003년 11월 27일∼2004년 3월, 120여 일간 쌍용 무쏘 스포츠를 타고 ‘로키-안데스 아메리카 대탐험’에 나섰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서 시작해 캐나다∼미국∼멕시코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에 이르기까지 판아메리칸 하이웨이 7만8천800km를 달리는 대장정이다. 탐험대(팀장 함길수)는 쌍용이 협찬한 무쏘 스포츠 2대를 타고 15개국 100여 개의 도시를 누볐다. 그 여정을 6회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지난 10여 년간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했던 탐험여행 동지 8명이 다시 뭉쳤다. 아메리카 대륙의 등뼈 구실을 하는 로키와 안데스 탐험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2004, Rocky-Andes America’ 대탐험은 15년간 탐험여행을 해온 필자에게도 녹록치 않은 도전의 대상이었다. 2003년 11월 27일 SBS 방송팀과 함께 알래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앵커리지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항공화물로 미리 보낸 무쏘 스포츠 두 대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통관수속을 마치고 엔진 시동을 걸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북극권에서 한국 젊은이 만나 밤새 이야기 나눠
11월 말 알래스카의 주도 앵커리지는 며칠 전 내린 폭설로 눈꽃 세상이었다. 수은주는 영하 15℃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게다가 첫날부터 대원들의 팀워크와 화합이 최상이었다.
눈 덮인 도로를 차들은 스노 체인도 없이 잘 달리고 있었다. 타이어에 스파이크가 달려 있어 시속 80km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쏘 스포츠는 서울서 준비해 온 스노 체인을 걸고 시속 80km로 달렸다. 도중에 체인에 이상이 생겨 도로 한 켠에 정차하고 있는데 뒤차가 우리의 정치신호를 못 보고, 뒤늦게 피하다 눈에 처박히고 말았다.
대원들은 무척 놀랐으나 현지인들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체인을 정비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하지만 조금 전 사고로 인해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알래스카 중부 도시 페어뱅크스로 방향을 잡고, 개썰매의 고장인 와실라를 향해 출발했다. 도로는 생각보다 잘 포장되어 이었다.
앵커리지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북미 최고봉 매킨리. 대원들은 앵커리지에서 승용차로 2시간 30분 가량 달려 북쪽의 토킷나(Tolkeetna)시에 도착, 8인승 경비행기에 올라 매킨리의 만년설을 향해 쌍발기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해발 6천194m의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는 인간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비행기의 고공비행이 시작되었다. 빙하 지역을 지나자 이내 깎아지른 암벽과 깊이 1천260m의 빙하로 채워진 계곡, 디날리 국립공원을 감상하며 신비의 세계로 돌진한다.
대원들은 6천m 상공에서의 쾌감과 아찔함을 동시에 느끼며, 두통에 구토를 하기도 했지만 필자는 북미 최고봉의 짜릿한 감동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매킨리를 출발하여 알래스카 제2의 도시로 향하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눈보라 치는 빙판길의 앵커리지 페어뱅크스 구간은 처음 찾은 대원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페어뱅크스의 도착과 동시에 다음날 진입할 북극권(Arctic Circle)으로의 비행 일정을 체크하고 체나 핫 스프링스로 떠났다. 이곳은 알래스카 최고의 온천과 오로라 캠프, 개썰매 및 경비행기 투어로 유명하다.
쌍발기 프로펠러의 둔탁한 엔진 소리와 함께 탐험대는 새하얀 천지를 박차고 올라 북극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었다. 신이 빚어 놓은 동토의 대지를 한 마리 새가 되어 날고 있었다.
알래스칸 오일 파이프라인이 동토 위를 지나고 있다.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 날아간 지 1시간 반 만에 드디어 북극권 라인에 자리한 원주민 마을 비버크릭 빌리지의 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랜딩했다. 강한 바람과 한기가 살을 애는 듯 했다.
대원들은 원주민 클리포드 애덤스의 뜨거운 환대를 받으며 마을로 향했다. 7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우체국, 학교, 마을회관, 공동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빠짐없이 들어서 있다. 최초로 이 마을에 이주한 일본인 프랭크 야스다가 살던 통나무집을 지나 클리포드의 아담한 집에 도착한 탐험대는 작은 오두막집에 들어서서 영하 40℃의 추위에 언 몸을 녹였다. 야스다는 1년에 30여 마리의 곰을 잡고, 연어와 무스 사냥으로 겨울 식량을 준비한다고 한다.
다음날 야외 온천과 얼음 동굴을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하려는데 한국의 젊은이들이 서빙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놀라움과 반가움이 앞섰다. 그 날 밤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의 젊은 이상은 패기에 넘쳐 있었다. 우리는 김치찌개를 앞에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델타 정션에서의 밤샘은 탐험대의 일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추위는 더욱 심해졌다. 어둠이 내리는 오후 4시를 기점으로 영하 30℃를 오르내리는 혹한 때문에 자동차 동파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무쏘는 튼튼한 벤츠 엔진을 얹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짐짓 위로하며 잠을 청했다.
걱정했던 대로 이른 새벽 엔진이 멈추어 있었다. 여러 차례 시동을 걸어 보았지만 심장은 살아나지 않았다. 엔진에 따스한 이불을 덥고, 오래 예열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은 일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마의 삼각지대인 알래스카-캐나다 국경지대와 캐나디언 로키의 전초기진인 밴프, 제스퍼 구간의 결빙도로 탈출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도로는 얼어 있고, 포장도로의 아스팔트 구간이 나타나면 블리자드가 몰아치곤 했다. 4WD로 전환해 시속 80km 정도로 달려야 했다. 이따금 오가는 거대한 유류 수송트럭들과 화물트럭이 눈보라를 일으켜 시야를 가렸다.
눈보라 속에서 촬영을 마치고 방송팀이 탄 2호차 안데스가 시속 100km 이상의 속력을 내면서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2호차가 시야에서 벗어났지만 빙판과 겹겹이 쌓인 눈 탓에 추격이 만만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2호차가 눈밭으로 굴러 버렸다.
도로 밖으로 굴러 떨어진 차를 보자 숨이 막혔다. 우선 대원들을 안심시키고 스노 체인을 걸어 견인을 시도했다. 수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차를 끌어 올리기에는 힘이 부쳤다. 포기하려는 순간 하이웨이 제설차가 우리의 차 앞에 멈추어 섰다. 체인을 건 채로 무리한 탈출을 시도한 탓에 브레이크 장치에 고장이 났다. 결국 토잉카(래커)를 불러 왔던 길을 되돌아가 차를 정비해야 했다.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방송대원과 탐험대원간의 업무협조와 무전교신 체제를 전면 수정해야 했다.

캐나다 최북단 유콘 테리토리를 향해
전날 2호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난데다 밤새 기온이 영하 40℃로 내려가 무쏘 스포츠의 심장은 또 다시 멎어 있었다. 인근 정비소로 두 차를 견인해 녹인 후 시동을 걸기로 했다. 불을 뿜는 송풍기를 돌린 지 40여 분, 무쏘는 잠에서 깨어난 듯 힘찬 엔진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차 부속이 없어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로키 B팀과 합류할 때 수리하기로 하고 브레이크 오일만 점검한 채 캐나다의 유콘으로 부지런히 출발했다.
알래스카 미국 국경을 통과해 캐나다 국경 지대인 비버크릭을 지나 화이트호스로 향하고 있었다. 앨버타주의 캐나디언 로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최소한 2박 3일간 논스톱 주행을 해야 한다. 오전에 차 정비로 시간을 허비한 탓에 오후 4시경 캐나다 국경을 통과했고, 화이트호스는 밤 10시는 되어야 도착할 듯 하다. 거리는 800km.
해가 너무 짧아 하이네스 정션(Haines Junction)에서 밤을 맞게 되었다. 클루아니 국립공원은 해발 790m의 마운틴 로간이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는 유콘의 장엄한 산악풍경을 만나게 되리라.
대자연의 가없는 원시성에 감탄하며 유콘을 떠나 브리티시 컬럼비아로, 다시 미국의 해안지대인 스케그웨이로 기수를 돌렸다. 예상에 없던 또 한 번의 미국 국경을 통과해 목적지 스케그웨이(Skagway)에 당도했다. 작은 항구 도시에서 이튿날 페리에 차를 싣고 이동하게 된다. 제넬른 헤이거의 호스텔에서 팀원들은 오랜만에 와인 잔을 기울였다. 제넬른의 도움으로 몬티라는 어부를 소개받고, 다음날 10시경 출항을 하기로 했다. 그의 배를 타고 알래스카의 빙하와 바다표범, 고래를 구경할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2시간 30분간 거친 바다를 달려 하인스에 도착했다. 북구의 그린란드와 같은 이국적인 풍경에 감탄하며, 대원들은 코스트 마운틴의 장엄한 노을빛 하늘과 가없는 바다, 하늘을 찌를 듯 한 장대한 산맥에 몰입되었다.
어부들의 밝은 웃음, 동토의 대양 위에 봄을 기다리며 희망을 노래하는 범선들…. 알래스카 남단 협곡에 자리한 이 작은 마을은 자유와 희망을 찾는 알래스카의 프론티어이자 대륙을 향한 염원이며, 바다를 향한 타오르는 눈빛이다.

바닷길 달려 캐나다 내륙 로키로
태평양과 바다 위 군도가 모여 또 하나의 알래스카를 탄생시켰다. 이름하여 알렉산더 아키펠라고.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와 태평양에 둘러싸인 알렉산더 군도는 신비의 섬 제국이다. 알래스카에서 미 내륙 본토 혹은 캐나다 내륙으로 진입할 때 고단하고 지리한 육로 대신 알래스카 마린 하이웨이(Alaska marine Highway)를 선택한다. 알칸(Alaskan highway)이 내륙의 동맥이라면 알래스칸 마린 하이웨이는 해양 하이웨이다.
사실 캐나다 유콘의 화이트호스를 출발해 와슨 레이크, 포트 넬슨, 도슨 크릭을 지나 캐나디언 로키의 심장 밴프로 향하는 길은 로키의 시작을 알리는 3천m급 산맥의 융기와 함께 한다. 고단한 여정과 험로, 그리고 지루한 환경은 로키를 만나기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한다.
우리 탐험대는 바다를 선택했다. 험준한 산맥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알래스카 대양의 찬 공기와 거친 바다가 그리웠다. 페리의 갑판에 무쏘 스포츠 두 대를 올렸다. 스케그웨이를 지나 주도 주노, 피터스버그, 렌젤에서 한고비 쉬고 나면 마린 하이웨이의 동맥 케치칸이다. 그리고는 내륙의 시작점인 프린스 루퍼트에 이르게 된다.
페리가 대양을 가르고 있다. 오전 8시 대원들과 페리의 갑판에 섰다. 캐나다 서부해안을 끼고 내려오는 해안도시는 포근한 풍취를 풍기고 있었다. 이른 아침 고기잡이 어선들의 분주함이 삶의 희열과 희망을 느끼게 한다.
또다시 대륙으로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해발 4천m급 로키가 기다리는 밴프로의 장도가 시작된 것이다. 알래스칸 마린 하이웨이를 오가는 페리 ‘타쿠’와 이별이다. 대양을 뒤로 하고 로키산맥을 향해 탐험대는 전진하기 시작했다.
프린스 루터트에서 프린스 조지를 향하여 힘차게 액셀을 밟는다. 장장 8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 했다. 하지만 탐험대의 목표는 로키의 심장 제스퍼와 애드먼턴이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프린스 조지에 닿았다. 건강을 염려해 쉬어 가자고 했지만 대원들은 제스퍼까지 내처 달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로키의 심장부를 향해 주유소도 모텔도 없는 무인지경의 옐로 헤드 하이웨이를 4시간 동안 달려 장쾌한 롭슨 마운틴을 넘자, 우리의 안식처이며 로키의 중심부인 제스퍼가 탐험대를 맞이했다. 이때가 새벽 3시. 무스와 여우, 산양 등 다양한 산짐승들의 밤 외출 장면이 눈 앞에서 연출되었다.
드디어 2004 로키 안데스 아메리카 대탐험의 핵심 줄기인 로키의 허리에 온 것이다. 영하 30∼40℃의 혹한으로 매섭던 알래스카를 출발한 지 12일 만이다. 로키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 대원들의 투지와 노고에 새삼 감사를 했다. 장거리를 달려온 대원들은 낙원 같은 에드먼턴의 도시에서 그동안의 여독을 풀기로 했다. 휴식은 보다 나은 도약을 예고한다.
로키를 배경으로 한 에드먼턴 사람들의 삶은 어떠할까? 시도 때도 없이 눈이 오는 엄동설한에도 쾌적한 삶과 쇼핑이 가능하도록 상점과 호텔, 유원지, 인공호수까지 유리 돔으로 덮인 세계 최대의 몰을 탄생시켰다. 바로 ‘웨스트 에드먼턴 몰’(WEM)이다.
빙점 아래의 한겨울에도 WEM에서는 수영복을 입고 파도풀을 즐기고, 모형 잠수함과 돌고래쇼를 구경한다. 스케이트장에서 얼음을 지치다가도 해변이 그리워지면 비치의 파라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남국의 정취를 즐기기도 한다. 영하의 도시 에드먼턴에 이상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침내 파란 하늘이 열렸다. 로키에 입성하는 탐험대를 축복하는 듯 눈부신 태양이 로키의 산중턱에서 내리비치고 있었다. 촬영팀과 대원들은 춤추듯이 로키산자락의 신비의 계곡, 말린 캐년을 향해 달려갔다.
북미대륙을 서쪽 연안 지대와 중부 대평원으로 가르는 거대한 산맥 로키의 심장부를 향한 진군이 시작되었다. 캐나디언 로키의 거점이 되는 제스퍼와 밴프 구간의 아이스 필드 파크웨이가 이번 로키 대장정의 하이라이트다.
유구한 시간의 흐름과 지속적인 빙하 활동이 환상적인 자연을 완성해냈고, 그 빙하시대의 자취가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다.
숨겨진 비경, 애서배스카 폭포를 만나기 위해 아이스 필드 파크웨이에 올랐다. 눈을 의심케 하는 로키의 장쾌한 산줄기들이 인간을 위협이라도 하듯 그 웅대함과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며,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영하 20℃의 겨울임에도 멀리서 폭포소리가 들려온다. 과연 어떤 형체의 폭포일까 생각하며 다가간다. 선웹터 강과 애서배스카 강이 합류하여 수량이 증가한 물줄기가 단단한 암반 사이의 좁은 수로를 뚫고 빙하가 녹아서 흘러 내리듯 거친 물줄기를 쏟아낸다. 폭포 주변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다양한 각도에서 폭포와 로키산맥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폭포와 빙하 그리고 거대한 호수에 이르기까지 로키의 신비한 베일을 벗겨내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유구한 대자연의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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