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썰매 경주 ‘유콘 퀘스트’와 랑데부 축제 북극권에 갇혀 행복했던 두 달
2004-05-19  |   5,828 읽음
유콘 지방의 북쪽 엘도라도가 도슨시티. 우리는 북극권에 있는 이 도시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마침내 떠나기로 결심했다. 대평원과 퀘벡, 동해안으로 달려가자! 화이트호스에서 정남을 향해 떠났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겨우 100km를 갔을까. 엔진이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새 엔진 올 때까지 두 달 기다려
실은 알래스카의 북극해를 떠나 남쪽으로 갈 때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가 우리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페어뱅크스에는 르노를 아는 정비사가 없었다. 그래서 엔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달렸다.
규칙적으로 ‘딱딱’하는 소리가 났지만 엔진 출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몇 주일 혹한이 몰아닥쳤다. 한때 도슨시티는 5일 연속 영하 40℃를 밑돌았다. 추위 앞에 엔진이 풀이 죽은 듯 했다. 우리는 눈보라 속에 세닉을 세워 두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시동을 걸었다. 엔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제일 가까운 마을에서 정비사를 불러다 실린더를 검사했다. 압력이 아주 낮았다. 타이밍 벨트에 고장이 났을까?
손을 대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제발 어떤 밸브가 일그러지지 않았기를 빌었다. 너무 외딴 곳이어서 세닉을 가까운 도시 화이트호스로 끌어가기로 했다. 남쪽으로는 2천km가 넘는 에드먼튼에 이르기까지 도시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갔다. 아주 큰 골칫거리가 된 기계고장 때문이었다.
화이트호스에는 약 15개 서비스센터가 있었지만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북아메리카에서 르노가 판매를 중단한 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르노의 최신 모델을 손질할 사람도, 부품도 없었다. 지평선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제일 가까운 르노 딜러는 멕시코 국경 너머에 있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르노를 팔지 않는 땅에 와서 궁지에 몰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가령 인도와 네팔에서도 비슷한 곤경에 빠졌다. 그러나 이곳에는 사방에 차가 돌아다니지만 우리를 도우려는 사람이 없었다. 정비사가 겁을 먹고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문제가 일어나면 변호사가 끼어 드는 일이 잦다. 전문 직업인들은 점점 몸을 사리고, 곤경에 빠질 일은 아예 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를 도우려고 선뜻 나설 사람이 없었다. 10일간 수소문한 끝에 드디어 아일랜드계 정비사가 우리를 도우러 왔다. 엔진 상부를 뜯어내고 타이밍 벨트가 온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실린더 헤드가 망가져 있었다. 캠샤프트의 통로 주변이 심하게 닳았다. 르노 본사의 고객서비스 기술진은 우리에게 새 엔진을 보내겠다고 회답했다. 엔진이 올 때까지 2개월 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 묶이게 되었다.

좋은 음식 먹고 안마까지 받는 경주용 개들
이 무슨 불운일까. 우리는 북극권에서 한겨울의 추위에 갇히게 되었다. 평균기온 영하 25℃에 하루 낮은 4시간뿐이었다. 낙원과 같은 섬들과 청록색 석호가 있는 남부 태국에서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러나 두려움은 금방 사라졌다. 이 지방에서 벌어지는 한해 최대의 행사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유콘 퀘스트. 세계에서 가장 힘든 개썰매 경주였다. 화이트호스 거리와 신문에는 온통 개썰매 선수들의 무용담으로 가득 찼다. 올해 출전하는 팀은 30개.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서 화이트호스까지 1천600km를 지원도 받지 않고 달려야 한다. 개썰매 선수들은 눈보라를 뚫고 얼어붙은 호수, 빙판길과 눈 덮인 산마루를 달려간다. 썰매에는 개를 먹일 육류와 연어 자루, 난로와 비상장비를 싣는다. 하얀 눈과 빙판길을 달릴 최소한의 식량과 장비만을 실어야 한다.
중간에 체크포인트는 8개뿐이다. 길게는 300km에 이르는 스테이지를 통과하기 위해 개들의 체력을 가장 알맞게 안배해야 한다. 5∼6시간마다 개를 세우고 먹이를 주고 상처를 치료한다. 필요하면 마사지도 해주어야 한다. 특히 발과 발톱을 꼼꼼히 살핀다. 개들은 모두 헝겊으로 만든 작은 부츠를 신고 있다. 날카로운 얼음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경주 코스의 중간지점은 도슨시티. 모든 팀이 36시간의 의무 휴식을 지켜야 한다. 추운 날씨에도 작은 도시에 구경꾼이 북적댄다. 신문과 TV 보도진이 몰려든다. 선수들이 쉬는 동안 개를 돌볼 전문 사육사들도 대기하고 있다.
얼어붙은 강을 따라 천막이 늘어서 있었다. 탐광꾼들의 천막이 있는가 하면 장비를 모두 안에 두고 장작 난로를 피우고 있는 덫사냥꾼들의 천막도 있었다. 다른 쪽에는 길다란 천막에 개를 넣어 두었다. 몸값이 비싼 운동선수들처럼 개들도 좋은 음식을 먹고, 안마를 받았다.

시끌벅적한 각종 콘서트로 오두막 열병 씻어내
도슨시티에서 푹 쉰 뒤 개썰매들은 다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매서운 추위 속에 달려가야 할 거리가 800km 남짓 남아 있었다. 결승점인 화이트호스에 도착하면 엄청난 상이 기다리고 있다. 동시에 이 고장에서 겨울철에 두 번째 중요한 행사가 벌어진다. 바로 랑데부(RendezVous).
길고 긴 겨울철에 북극권 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른바 ‘오두막 열병’이라는 폐쇄공포증이다. 통나무집에 갇혀 있다가 꼭 필요할 때만 밖에 나가 빙글빙글 돌다가 미쳐 버린다. 이런 착란증을 겪은 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광부와 덫사냥꾼들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랑데부의 주요 목적은 오두막 열병을 털어내는 데 있다.
한 주일 내내 이 도시는 황금을 찾던 골드러시 시대로 되돌아갔다. 가게 주인들은 가게에 전통 장식을 걸어 놓았다. 날마다 저녁이면 프렌치 캉캉 무용수들이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돌아다니며 춤을 추었다. 각종 콘서트가 벌어졌다. 심지어 ‘미스 랑데부’ 선발대회도 열렸다. 차 대접이나 책읽기 등으로 경쟁을 시키고는 가장 뛰어난 아가씨를 골랐다.
축제 마지막 날 시내 중심가에서 경쟁이 벌어졌다. 전기톱 최고수를 뽑기도 하고, 밀가루 포대를 실은 썰매로 유콘에서 힘이 가장 센 개를 고르기도 했다. 어떤 행사를 하든 배경에는 컨트리 뮤직이 흘렀다.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에는 날마다 밤이 늦도록 컨트리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래서 유콘에서 마지못해 보내게 된 겨울은 우리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세계 일주여행을 떠난 지 벌써 4년. 그래도 여행을 하면 놀라운 일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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