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처럼만 농사되었으면 벌써 부자되고도 남았지” 충북 단양에서 만난 이성복씨
2005-06-22  |   6,554 읽음
단양시내에서 남한강변을 따라 도담삼봉을 향하는 길.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뜬 덕인지 밭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쁘게 오가는 자동차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 사이에서 흙을 매만지는 사람들. 차머리를 돌려 강변으로 내려섰다. 저 만치에 꽤 오래됨직한 자전거가 서 있고 손잡이에는 하얀 잠바가 걸려 있다. 바로 옆, 열 평이나 될까말까 하는 밭에는 노부부가 밭일에 한창이다.

이순에 농사를 시작하다

“옥수수란 놈이 비료를 많이 먹어요.” 밭두둑을 덮은 검은 비닐 사이로 키 작은 순들이 나란히 나왔다. 옥수수다. 이성복(69세) 씨는 순과 순 사이에 구멍을 내고 요소 비료를 넣고 있다. 바로 옆 더 작은 밭에는 손가락 두어 마디만 한 것들이 자라고 있다. 얼마 전 뿌린 양대콩이다. 아내 김옥분(69세) 씨는 양대 주변에 파릇한 잡초들을 뽑고 있다. 비료를 넣고 김을 매는 이들의 손길이 마치 손주 녀석에게 밥을 떠 먹이고 잠자리를 봐주는 듯 하다.

이성복 씨가 나고 자란 곳은 구 단양, 지금의 단성면이다. 1985년 충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살던 마을이 수몰되어 지금의 단양으로 옮겨왔다. 비료를 주던 손을 잠시 쉬고 담배를 빼어 물었다. 집 하나하나와 골목골목까지 또렷하게 생각나는 마을이 그립다. 스스로 떠나온 것이 아닌 까닭에 더욱 그렇다. 고향이 멀면 날을 잡아 찾고 이북이라면 통일을 기다리겠건만, 물 속에 갇혀 버린 고향 마을은 찾아 갈래야 방법이 없다.

김옥분 씨가 이곳으로 시집온 것은 1957년,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여섯 살 때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에 징용 가는 아버지를 보며 함께 울었고 전쟁 때는 경북 상주로 피난 가서 아버지와 함께 곶감 장사를 하기도 했다. 매운 시집살이와 4남매를 키우면서 보낸 세월이 벌써 반 백 년이 되었다. 칠십 평생 가슴에 묻어 둔 것들이 많아 속은 까맣게 타버렸단다. 이 말을 하면서도 호미를 쥔 손은 여전히 바쁘고 얼굴은 무심하여 남의 얘기를 하는 듯하다.

이 부부가 농사일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20년 넘게 식당을 하다가 자식들 뒷바라지가 거의 끝나 손을 털었다. 하지만 늘 뒤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았던 탓인지, 놀리던 몸을 쉬자 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시작했다.

땅은 남한강변의 수자원공사 땅을 빌렸고, 돈 벌 욕심 없이 그저 먹고 자식들한테 인심 쓸 만큼만 짓기로 했다. 마늘이 유명한 단양인지라 마늘도 좀 심었고, 그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조금씩 심었다. 남는 것은 단양장(1, 6일장)에 나가 팔아 용돈에 보태기도 한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보고 싶지 않은지 물었더니 손주들은 군대 갔고, 자식들은 지난 어버이날에 왔다 갔다고 한다. 올해 오십이 된 큰 아들과 중학교 교사인 딸, 또 그 밑으로 아들 둘을 두었지만 모두 객지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자주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자식자랑은 아니하듯 계속된다. 다만 한 가지 남은 걱정은 내년에 마흔이 되는 막내 아들. 아직 미혼이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계집애들이 서로 전화질이더니, 나이 많으니까 주변에 여자가 없습디다.”

“성질이 지랄 같아서 가만있으면 병 납디다”

날마다 밭일을 나오는 것은 아니다. 힘이 들거나 다른 일이 있으면 하루 거르기도 하지만, 오래 쉬지는 않는다. 아니 쉬지 못한다. 몸이란 일을 하다가 쉬면 병이 나고 농사일이란 끝없는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날도 피곤해서 쉬다가 점심 들고 낮잠이 오질 않아 밭에 나와 풀을 뽑았다. 풀은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 김옥분 씨는 가벼운 타령조로 흥얼거린다. ‘풀 농사∼ 지었으면∼ 나는 진즉에 부자가 되었지∼.’

곧 칠순을 바라보는 이 부부의 손이 닿으면 흙은 고운 갈색 속살을 드러낸다. 도시에서처럼 시간을 정해 두고 하는 일이 아니라 손놀림과 표정에는 여유가 있다. 팔아 이문을 남겨야만 할 이유가 없으니 계산이나 조급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부부는 말이 없다. 늘 함께 일을 하기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따금씩 부는 상쾌한 강바람을 타고 대화가 독백처럼 이어질 뿐이다. 헌데 이 어색한 대화가 편안하기 그지없다. 옆으로 맑은 물과 푸른 산을 둘러 두고 접하니 사람도 닮는 모양이다.

“이 씨네는 그 아들래미 어떻게…, 결혼 시키기로 했대?”“… …” “… …”
“몇 시여? 밥 때 안되었어?” “… …” “… …”
“아이고, 배고파서 일 못하겠다. 밥 먹으러 갑시다.” “… …” “… …” “어, 그려….”

글│서승범 기자 사진│최진호(프리랜서 사진작가)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