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선 간이역, 쓸쓸한 이별의 노래 별어곡에서 구절리까지
2005-05-16  |   8,943 읽음
이역 하면 왠지 정겨운 느낌이 밀려온다. 간이역은 역장이 없는 역을 말한다. 역무원이 있으면 배치 간이역, 역무원이 없으면 무배치 간이역이라 부른다.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고속철도가 다니는 경부선에도 곳곳에 간이역은 있다. 대부분이 간이역으로 이루어진 가은선, 북평선, 옥구선, 정선선 등은 가보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낯설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비둘기호 열차가 다녔다는 정선선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끌렸다.
태백선 증산역에서 갈라지는 정선선은 이제 흔적만 남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역할이 미미하기 이를 데 없다. 광산이 붐을 이루던 1960년대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생긴 정선선. 별어곡역에서 구절리역에 이르는 6개의 역은 언제 그런 일이 있어냐는 듯 황량함만이 감돌고 있었다.

철길도 폐광과 함께 스러져 가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부에서 빠져 59번 국도를 타고 계속 내려가면 강변 따라 길 따라 나란히 놓여 있는 철길과 마주치게 된다. 그 철길이 바로 정선선이다. 강원도 정선. 한 때 탄광촌으로 활기 가득했던 이 일대는 폐광이 되어 한풀 꺾이다 못해 축 가라앉아 보인다. 손에 쥐어든 정선 관광지도를 보면 구경할 곳이 많은데 제철이 아닌 탓인지 가는 곳마다 한가롭다. 증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처음으로 들르는 곳은 이름도 독특한 별어곡(鱉魚谷)역. 한자표기는 분명 아닌데 이별노래를 떠오르게 한다. 역무원 아저씨라도 만나 볼 요량으로 역을 찾았지만 이미 폐쇄되어 사람의 온기를 찾을 수 없다. 3월 무배치 간이역으로 바뀌었다는 안내문만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정선선은 하루 세 차례 객차 1량짜리 꼬마열차(정식명칭은 정선아리랑 유람열차라고 써 있다)가 다니고 있다. 차표 회수함에 차표 한두 장이 뒹군 것으로 봐서 사람들이 타기는 하나 보다. 텅 빈 역사는 붙잡는 사람이 없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역무원이 없어도 관리는 하는지 방치되어 있지는 않다. 베이지색의 건물과 기와지붕이 부조화스럽지만 정겨움이 배어 있다. 뒤에는 높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마저 돈다. 아주머니 한 분이 해질녘 막차를 기다리는 듯 플랫폼에 서 있다. 기차가 도착하니 기관사 에게 물건을 맡기더니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버린다.
선평역은 둔덕에 자리 잡고 있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선평역 또한 별어곡역과 함께 무배치역으로 바뀌었다. 선평(仙坪)은 맑은 샘물이 마을 가운데서 솟아나고 경치가 좋아 신선들이 모여 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저 멀리 높은 산과 그 밑으로 말려 들어가듯 휘어지는 철길을 넘어가면 신선이 사는 곳이 나올 것만 같다. 텅 빈 역사에는 여객 운임표와 배차 시간표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일하게 역무원이 있는 정선역을 지나면 역시 아무도 없는 나전역이 나온다. 어느 여자대학 미술과 학생들이 그렸다는 도깨비 그림은 화암동굴의 캐릭터란다. 역사 입구 양옆에 달려 있는 자율방범대와 청년회 현판은 기차역으로의 역할을 다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알록달록한 도깨비 그림과 나무 현판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유람열차의 종점인 아우라지역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우라지는 오대산에서 발원해 흐르는 성천과 임계 중봉산에서 발원하는 골지천이 합류해 어우러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아우라지역부터 정선선의 종점인 구절리역까지는 관광지화 작업을 거쳐 기차 대신 레일바이크가 다닐 예정이다. 역 공사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젠 들을 수 없는 구절리역의 기적 소리
아우라지에서 415번 도로로 갈아타고 쪽 올라가면 정선선의 마지막 역인 구절리역이 나온다. 유람열차도 아우라지역이 종점이어서 아우라지-구절리 구간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교차로의 차단기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다시금 차단기가 내려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임무에서 해방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인지 그저 부는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구절리역은 폐역이 된 지 오래다. 구절리역도 아우라지역과 마찬가지로 관광지화 공사가 한창이다. 무궁화 열차 두 칸은 카페로 만들려는 듯 개조작업이 진행 중이다. 역에 다다르면 철길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외롭게 서 있는 선로 변경기는 세 갈래 인생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역사를 지나면 철길은 다시금 합쳐진다. 마치 인생을 어떻게 살든 막판에는 한 길밖에 없다는 인생무상의 외침 같다. 합쳐진 후 종착점까지 쓸쓸한 풍경이 계속된다. 누군가 종착점에 올려놓은 돌탑만이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아직도 저 멀리 갈 곳은 남아 있는 것만 같은데……. 글 | 임유신 사진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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