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金堤) 들녘의 불길, 그리고 지평선을 보다
2005-04-18  |   7,231 읽음
이른 봄의들녘은 무한정 쓸쓸했다. 아직 푸른 싹을 피어내지 못한 땅은 황량하기만 했고 존재는 이유를 드러내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길은 어디선가로 와서 또 어딘 가로 이어지는데, 문득 어디로 가야하나 흔한 산도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은…….
고개를 돌리면 어느 방향에서나 산이 보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바로 김제에 온 것이다. 이곳 김제에 온 날, 전국은 먹구름에 휩싸였다. 라디오에서는 서울의 낮이 칠흑처럼 어둡다고 했다. 그런 날의 분위기는 몇 번 경험한 적이 있다. 대낮이지만 자동차들이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켜는, 왠지 술 한잔 하고싶어지는 그런 분위기에 대해 DJ는 자꾸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먼 나라에서 고국의 방송을 듣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만 들렸다. 군산까지 올 때만 해도 어두웠던 하늘은 김제에 닿자 푸른 하늘로 변했다. 마치 차트를 넘기듯 하늘의 색과 풍경은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다. 다행한 일이지만 왠지 이상한 예감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징게맹게 외배미들 지나 금산사 가는 길
인구 11만 명을 조금 웃도는 김제는 도시보다는 농촌의 이미지가 더 많다. 89년 김제군의 일부가 시로 승격되었고, 95년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되어 지금에 이른다. 도시의 골격을 갖춘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익산, 군산, 옥구, 전주와 이웃한 김제는 이쪽 전북지방이 대개 그렇듯 백제의 유적과 미륵신앙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서쪽으로 바다와 면해 있는 한편으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는가 하면 동쪽으로 노령산맥의 줄기인 높이 794m의 모악산(母岳山)이 솟아 있어 금산사, 귀신사 등 여러 절을 거느리고 있다. 말하자면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만경강과 동진강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들 하천연안에 김제평야, 만경평야 등의 넓은 평야가 발달해 호남평야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둘을 합쳐 김만평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징게맹게 외배미들’이란 바로 김제, 만경평야의 너른 들을 뜻한다.
들에는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뭉게구름으로 피어나는 하얀 연기와 더불어 춤을 추는 불꽃이 이제 긴 겨울을 보내고 들에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해마다 풍요를 기원하는 이 너른 들은 한때 수탈의 대상지였다. 1899년 군산항이 개항한 것도 벚꽃터널로 유명한 전군가도가 열린 것도 모두 김제들녘의 곡식을 수탈해가기 위해 일제가 만든 것이었다.
금산사는 호남고속도로 김제IC 아래 금산사 IC가 따로 있을 만큼 이름난 절이다. 금산사는 스스로 미륵을 자처했던 후백제의 왕 견훤이 말년에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아들들에게 유폐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유명한 절집이 대개 그렇듯 금산사 초입에는 식당가가 꽤 큰 규모로 자리하고 눈썰매장까지 들어서 어지럽기만 하다. 그래도 절에 오르면 보이지 않겠지 하고 내처 올라간다. 관리소에서 입장료를 내고 몇 발자국 오르자 떨어져 나간 석성의 일부가 나타난다. 다른 흔적은 모두 없어졌으나 홍예문의 형태는 온전히 남아 있는데, 견훤이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까닭에 견훤석성이라 불린다. 이어서 나타나는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의 일주문은 요사이 새로 만든 듯하다. 어디서 저렇게 큰 나무를 구해왔을까.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앞에 보이는 건물이 보제루인데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다. 내용인즉 KBS 등 방송국 중개소의 모악산 정상 불법점유를 규탄한다는 것으로 빨리 철거하라는 것이다.
약간 고개를 숙이는 자세로 보제루 아래로 난 계단을 오르면 탁 트인 마당이 나타나며 오른쪽으로 금산사의 상징인 3층 미륵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낯익은 풍경인데 만수산 무량사와 비슷한 모양의 가람 때문이다. 백제계 건물의 공통점과 주변 분위기도 비슷한데 차이라면 무량사는 2층이라는 점. 아무튼 겉에서 보면 3층이지만 안에는 하나로 탁 트여 있고 미륵삼존입불이 모셔져 있다.
경내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보리수나무 옆으로 육각다층석탑이 보인다. 화강암이 아닌 점판암으로 만들어 특이하고, 언뜻 보기에 기와를 쌓아놓은 듯 질박한 모습이지만 몸돌마다 새긴 불상 등 장식적인 요소가 많다. 미륵전 옆으로 높은 대가 있는데 이 일대를 방등계단이라 부른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부도와 오층석탑, 사천왕상을 비롯한 돌로 만든 인물상들이 늘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여기서 보는 미륵전이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장 좋다. 다시 마당 왼쪽 대장전 쪽으로 천천히 걷다가 그 뒤로 대숲 가까이 다가서니 바람에 서걱대는 대숲소리가 풍경소리와 어울려 파도처럼 몰려온다.
귀신사는 그 이름이 주는 어감이 별로 좋지 않지만 돌아올 귀(歸), 믿을 신(信) 자를 쓴다. 금산사에서 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가볍게 둘러볼 수 있다. 청도 마을회관 옆 골목으로 따라 여러 채의 집들을 지나가면 귀신사를 알리는 나무표지가 나타난다. 그런데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만 보일 뿐 절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대적광전의 보수공사가 그 컨테이너 안에서 진행중인데 쓸만한 것만 남기고 완전히 새로 해체, 복원하는 대공사다. 새로 만들고 나면 옛 모습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괜한 걸음을 했나 돌아서다 아쉬움에 다시 발길을 돌려 돌층계를 오른다. 삼층석탑과 석수가 보인다. 풍경은 적막했다.

오래된 거리, 부용역에 나가 지평선을 보라
너른 평야를 가진 만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가 이곳 김제에 있다는 것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니다. 김제 시내에는 많은 저수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부량면 월승리(月昇里)에는 330년 처음 축조된 벽골제가 있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김제인 까닭에 벽골제 기념관의 휑한 주차장 한쪽에 아리랑 문학비가 서 있고 한쪽에는 문학관도 들어서 있다. 옛 수문을 제외하면 스산하기만 한데, 지평선축제가 열리는 가을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모여든다고 한다. 지평선을 조망하는 포인트가 되는 지점인데 황금들녘이 펼쳐지는 가을에 오면 모를까 영 감흥이 없다. 지평선을 보기에는 전봇대가 너무 많고 멀리 낮은 구릉이며 집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망해사에서 일몰을 보려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사방은 안개에 포섭되어버렸다. 안개 속에서 가로등은 더 위력적이었다. 안개는 때로 지저분한 풍경을 근사하게 바꿔놓기도 한다. 말 그대로 바다를 볼 수 있는 망해사에 닿았을 때 바다는커녕 요사채도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인적도 고양이도 한 마리 없는 분위기가 기묘하게 다가왔다. 안개는 발가락 깊숙이 스며들었다.
만경강은 완주군에서 시작되어 이리시 남쪽을 지나 김제와 익산, 군산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서해로 들어간다. 만경강 물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 심포항이 있는데 바로 망해사 부근이다. 망해사를 나와 심포항에 간다. 안개에 휩싸인 포구는 횟집들의 불빛만이 반짝거렸다. 여기서 바다는 좀 더 잘 보였다. 이런 날씨에도 배를 띄우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밝은 날이면 이곳에서 수평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갯벌도 그 속살을 드러낼 것이다. 진봉반도 끄트머리께 이곳 거전마을의 거전갯벌은 군산에서 김제, 부안에 걸친 새만금 갯벌의 일부이다.
다음날 아침 안개는 개었다. 김제는 시가지나 마을 풍경이 그리 변화가 없는 편이다. 그래서 골목 어귀는 정감 있는 표정을 보여준다. 호남선이 지나는 부용역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1914년 호남선 개통 당시부터 문을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부용역 일대에선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주택이나 김만평야의 쌀이 부려졌던 도정공장이며 창고 등이 많이 남아있다. 벽골제보다 이곳에서 보는 평야며 지평선이 한층 아스라하게 다가온다.
만경강 유역으로 나가본다. 지난 세월 전북 지역 주민들의 삶의 원천이자 생활 공간이었던 만경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물길을 따라 흐르며 평야지대의 젖줄이 되어주고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두 개의 다리. 1933년에 지어진 만경대교는 노후화로 인한 붕괴위험 때문에 1988년 바로 옆에 새로 건설한 신 만경대교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었다. 옛 만경대교 위에 드리워진 난간의 그림자 너머로 강에 내려 비치는 빛살과 배들이 보인다. 그리고 갈대숲, 구름 사이로 융단처럼 쏟아지는 햇살이 마치 성화 속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만경강 가의 저물 무렵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은 시간 탓으로 돌려야 한다. 어제 저녁에서 밤사이 지독한 안개에 홀렸기 때문일까. 푸른 낮의 기억보다 머릿속에는 자꾸만 안개가 가물거렸다. 무언가 실체가 없는 허상을 본 느낌은 김제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을 남기고 꼭 다시 와야한다는 어떤 의무감으로 남았다. 누군가 던져 발 앞에 풀어진 넥타이처럼 길은 그렇게 발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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