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연육교 3 미지의 섬을 현실로 끌어들인
2005-03-23  |   8,014 읽음
앞 가까이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갈 수 없는 곳, 섬. 발을 디디기 전까지 섬은 여전히 환상의 세계로 남아 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혼자 있고 싶을 때, 여생을 한적한 곳에서 보내고 싶을 때 문득 무인도를 떠올리는 것은 환상 속에 자신을 가둬두고 싶은 생각에서가 아닐까. 그 이면에는 누구도 다가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 또한 숨어 있을 것이다.
섬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대교’라는 이름 아래 뭍과 연결되어 섬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한 곳이 한둘 아니다. 남해안 일대의 연육교에서는 더 이상의 환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절의 소통이라는 현실만이 남아 있었을 뿐.

서로 다른 모양의 5개 다리가 한데 모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진주 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순천방향으로 갈아타면 바로 사천 IC가 나온다. 이곳을 빠져나가 3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남해 북동쪽의 단항과 사천의 삼천포항을 잇는 창선·삼천포대교를 만난다.
모개섬과 초양도, 늑도, 창선도 등 네 개의 섬은 징검다리처럼 다섯 개의 다리로 연결되었고 이를 통칭해 창선·삼천포대교로 부른다. 특이한 것은 마치 다리 전시장 마냥 다섯 개의 다리를 모두 다른 공법으로 지었다는 것. 금문교를 떠올리게 하는 삼천포대교는 두 개의 주탑이 우뚝 솟은 사장교다. 모개섬과 초양섬을 잇는 초양대교는 아치를 다리 밑까지 내린 것이 특징. 아무런 치장을 하지 않아 단아한 멋을 풍기는 늑도대교는 초양섬과 늑도를 연결한다. 창선도와 늑도를 잇는 창선대교는 세 개의 아치를 상판에 얹어 마치 피어나는 뭉게구름처럼 보인다. 창선도 안의 단항교는 가장 짧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살포시 숨어 있는 것이 꽤 매력적이다.
바닷가 시골마을에 이렇게 멋들어진 다리가 눈앞에 펼쳐지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 왕국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랄까. 관광지 분위기지만 계절 탓인지 찾는 사람이 없어 고즈넉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한려해상의 수려한 풍광은 가슴속을 푸른 바닷빛으로 물들인다. 삼천포대교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어 해돋이 장소로도 유명하다. 새해 첫날에 사람들로 바글거렸을 다리 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어 주는 아저씨만이 차가 서지 않나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알고 보니 우리나라 9대 일몰 풍경의 하나로 꼽힌다는 그 유명한 ‘실안 낙조’다.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한 섬 뒤로 넘어가는 붉은 해는 운해 속의 산봉우리 뒤로 넘어가는 그것을 보는 듯하다.
해가 지고 나면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 창선대교는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며 천의 얼굴로 변신한다. 적막한 어둠 속에 유일하게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는 존재감은 나 자신의 존재마저 잊게 만드는 마력을 뿜어낸다. 내가 이곳에 서 있음을 일깨워 주는 잔잔한 파도소리마저 없다면 아로마향과도 같은 은은한 불빛에 취해 언제까지고 다리를 바라보며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번잡한 통영대교, 소박한 저도교
통영대교는 통영운하 위에 당동과 보디섬, 미수동을 잇는 총연장 591m, 너비 20m의 다리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이제 막 관광지가 된 삼천포대교와 달리 통영대교는 찾아가는 길부터 시작해 곳곳에 도시의 번잡함이 배어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멋을 달리하는 것이 특징. 아파트단지를 배경으로 하는 생활 속의 다리가 되는가 하면 바다가 보이는 한 폭의 자연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운하와 어우러져 관광지다운 운치를 뽐내기도 한다.
통영대교는 다리 자체도 볼만하지만 통영운하와 같이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 통영대교 아래를 지나는 통영운하는 너비가 약 55m로, 원래 육지였던 것을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운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에 패해 도망가던 왜군이 육로를 파 물길을 낸 것이 시초. 이후 1931년 길이 1천420m, 수심 3m의 운하로 정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밤이 되니 통영대교 상판 아치구간 140m에는 반딧불이 모여 있는 것처럼 푸른빛을 낸다. 여기에 운하 주변의 건물과 가로등이 쏟아내는 불빛들이 수면에 투영되면서 아름다움은 극에 달한다. 형형색색의 촛불들이 물속에서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 손으로 보다듬어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 정도로 그 오묘함이 기막히다.
저도교는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다. 마산시 구복리와 저도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영화 속 ‘콰이강의 다리’와 비슷하게 생겨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 불린다. 1987년 만들어진 철제 다리로 길이 170m, 너비 3m, 높이 13.5m에 이른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다의 풍광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바로 옆에 새로 생긴 웅장한 다리 때문에 소박한 정취는 묻혀 버려 아쉬움이 남는다. 특색 있는 모양 때문에 ‘인디언 섬머’ 등의 영화도 찍었다지만, 지금은 텅 빈 횟집까지 어울려 황량함이 감돈다.
옛 정취가 더 정겨울 법도 한데 도보여행을 온 듯한 한 무리의 젊은 여행객들은 새로 지은 다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슬쩍 쳐다보고 지나치는 그들에게 20년이 채 못된 허름한 다리는 그저 오래된 다리였나 보다.
글 | 임유신 사진 | 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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