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保寧) 서해 푸른 먼바다, 노을에 지다
2005-02-21  |   8,508 읽음
서해에 가면왠지 이별의 정서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정태춘의 노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해 뜨는 동해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해지는 풍경, 노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떠나는 것이기에 서운하고 또 아련한 것. 겨울 바다는 어디나 쓸쓸하겠지만 서해는 겨울에서야 차디찬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푸르다.
누가 이번 겨울이 춥지 않다고 했던가. 어디 두고보라는 듯 맹렬하게 지속되는 영하의 날씨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삼한사온은 이제 영 옛말이 되었다. 몹시 추운 날 겨울 바다에는 어쩌면 얼음 기둥이 서 있을지 모른다. 맑고 투명하고 푸른… …. 그 속에 물새는 박제가 되어 있을까. 매운 바람에 떠오르는 상념은 아주 오래 전의 기억으로 데려간다.

빈 절터에서 절집으로, 성주사터와 무량사
도시의 이름은 때로 작은 게 큰 것을 삼키기도 하는 법이다. 보령도 이와 같아서 지난 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을 합치면서 보령시로 이름을 바꾸었다. 표지판을 보면 보령이라는 지명 옆에 괄호 표시로 대천이라 써 놓은 연유다. 그래서 철도역 이름도 보령이 아닌 대천역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6년 보령군이 보령군과 대천시로 분리되었기에 어쩌면 원상회복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대천이란 이름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서해 최대의 해수욕장인 대천 해수욕장 때문이다.
바다를 길게 끼고 있는 보령은 부여, 청양, 홍성, 서천 등과 맞닿아 있는데, 차령산맥의 줄기 끝인 성주산에는 한때 충남지역에서 무연탄 산지로 첫손 꼽히는 성주광업소가 들어서 있었다. 지금은 그 터에 석탄박물관이 자리하고 있고, 휴양림 등이 있어 도시인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백제 때 지었다는 큰절 성주사가 있던 터가 이곳 언저리에 있다.
대천역에 내려 먼저 성주사터를 찾아가기로 한다. 역사를 빠져 나와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서 체이스컬트 매장 앞으로 가면 성주 가는 버스가 선다. 도회지를 벗어난 버스는 시골길로 들어서고, 이윽고 버스기사가 일러준 정거장에서 내린다. 미산농협이 있는 삼거리다. 주변 탄좌가 폐광이 된 뒤에 다시 물이 깨끗해졌다는 성주천을 끼고 걷는 길, 개천 아래 갈대숲이며 오래된 나무들이 늘어선 풍경이 좋다. 걷는 맛이 있는 길이다.
바람은 차지만 겨울다운 청명함이 하늘을 더욱 푸르게 한다. 얼마 걷지 않아 시야에 들어오는 탑으로 미루어 성주사터다. 빈 절터에 탑이 있다는 말은 어느 절터에 가나 첫 번째 감상으로 다가온다. 또한 저마다 다른 특색은 분명히 있는 법이어서 그 차이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된다.

탑도 자주 보면 감흥이 덜한 법인데 성주사터의 탑들은 첫눈에 반듯하게 잘 생겼다는 인상이다. 몸돌 위 처마 끝을 어찌나 날렵하고 우아하게 꺾어 올렸는지 나무를 다듬어도 저보다 잘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빈 절터의 중심을 잡고 있는 5층탑 뒤로 불상의 흔적인 금당터 석조연꽃대좌가 있고, 그 너머 세 기의 삼층탑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이채롭다. 그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위엄이 있다.
그 뒤 외따로 서 있는 석불입상이 보인다. ‘코를 긁어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 때문에 얼굴 주변이 마모되어 시멘트로 때웠는데 소박한 표정이 울먹이는 듯하다. 그냥 그대로 두고 보존하면 안되었을까. 예전의 절 규모는 무척 컸을 테지만 이제는 가까이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어느 집에선가 못질하는 소리가 청량한 바람을 타고 울려온다. 덩달아 개 짖는 소리 공허하게 들린다.

삼거리로 다시 나와 외산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마침 시간표가 맞아 버스는 금방 도착하고 15분 남짓 달려 외산 종점에 닿았다. 마을 어귀에서 무량사까지 2km 거리라는 표지가 붙어있다.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지나는 스타렉스가 절 아래 주차장까지 태워준다. 그이의 말로는 실제 3km거리는 될 것이라 한다. 여하튼 무량사에 온 것이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지은 ‘하여가’(何如歌)에 나오는 그 만수산 기슭에 자리잡은 무량사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부여군에 들어간다. 하지만 만수산이 보령시 미산면과 부여군 외산면에 걸쳐있기도 하거니와 주변 마을 사람들은 굳이 그 경계를 따지려 하지 않는다. 보령에서나 부여 어디서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빈 절터에서 갑자기 절집으로 바뀐 풍경이 어색하지 않다. 공간이 마음에 있다면 현재의 있고 없음은 역시 생각에 달린 문제일 터이다. 겨울 산사의 사람 없는 호젓함은 풍경소리의 쓸쓸함을 더해주는데 마당에 뛰노는 아이 하나의 움직임이 세상을 비추는 빛처럼 환하다.
무량사에서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2층 구조의 극락전이 인상적인데 건물이 주는 장중함과 더불어 고유하고 은근한 멋이 일품이다. 셀 수 없다는 뜻의 무량사는 극락정토를 지향하고 그 본전 이름이 극락전이다. 개인적으로 절집을 다니면서 하나의 버릇이 생겼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문살 모양을 살피는 것이다. 자칫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조그만 발견에서 얻는 기쁨이 크다. 이곳 극락전의 1층 가운데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가 보면 색채는 없어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소슬빗꽃살창을 볼 수 있다.

포구에서 다시 포구로, 대천항 그리고 오천항
대천항 가는 길에 용두해수욕장에 잠시 멈춰 서 바다를 본다. 썰물. 바다는 저 멀리 도망쳐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남포방조제와 죽도를 지나고 대천해수욕장을 지나 대천항으로 간다. 대천해수욕장 앞 번화한 거리는 텅 비었다. 모텔 등 숙박업소가 가득한 거리는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구광장은 대천해수욕장이 발전을 시작한 근거지로 그 규모를 넓혀 나간 곳.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항구가 나온다. 먼저 보이는 것은 연안여객터미널이 있는 신항이고 구항은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구항은 포구 특유의 어시장 난전이 정겨운 풍경을 드러낸다.
커다란 예인선 검은 굴뚝에 검은 연기가 매캐한 온기를 뿜어내고, 방파제 위로는 길다랗게 조개구이 따위를 파는 천막촌이 늘어서 있다. 천막촌 사이를 걸어 방파제 끝 붉은 등대로 향한다. 천막이 끝나는 곳에 바로 등대의 밑동이 드러난다. 여기가 끝이다.
등대 앞에 서자 비릿한 포구의 전경이며 또 하나의 하얀 등대가 보이고 그 너머로 나란히 선 6기의 거대한 굴뚝이 보인다. 이윽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인다. 어느새 구름이 몰려왔는지 해가 바다에 떨어지는 것을 가리고 만다. 밤이 내리고 포구의 밤도 얼어붙기 시작한다. 도시의 네온사인은 왠지 따스하지 않다. 어느 가게 앞에서 빈 드럼통에다 나무를 넣고 태운다. 그 불꽃에 손을 녹인다. 바람에 춤추는 불꽃은 한없이 따뜻했다.
뚝딱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니 창 밖 아래가 바로 조그만 선박들을 만들고 수리하는 조선소이다. 지난밤 대천항에서 이곳 오천항에 온 것이다. 포구의 정취를 찾아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니다. 오천항은 백제 때부터 배가 드나들던 유서 깊은 항구이기도 하지만 조선조 충청수군절도사영이 있던 곳으로 그 흔적인 오천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 경찰서가 보이는 골목으로 가면 오천성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지금 남아 있는 석문 홍예는 과거 서문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돌을 쌓은 모양이 정연하고, 나무와 집들과 잘 어울려 고풍스런 분위기를 낸다. 홍예를 지나면 진휼청 관아건물이 하나 보이고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공주 공산성을 떠올리는 성곽길이 나타난다. 발아래 오천항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도로가 난 때문에 길은 곧 끊어진다. 2차선 길을 건너 오르면 오천수영 관아건물이 보인다. 담장을 따라 송전탑 쪽으로 가면 끊어졌던 성곽길의 흔적이 이어지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언덕으로 성벽만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앞바다에 보이는 보령방조제 위로 성냥갑 만한 자동차가 달리고, 아래에는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오천항 주변의 바다는 내륙으로 감싸있어 호수처럼 잔잔하다.
오천항을 돌아 나가는 길, 어디쯤에선가 버스 차창으로 화력발전소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대천항에서 등대 너머로 보던 그 굴뚝들이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는 순간,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문득 초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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