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浦項) 구룡포에서의 아침, 일출보다 붉은 서정
2005-01-14  |   6,371 읽음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는 날, 따뜻한 남쪽 포항으로 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곳이란 수사는 하나의 상징일 뿐. 해는 볼 수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냥 해 뜨는 포구에서의 아침이면 족할 것이다. 길 떠나는 아침, 가슴속의 해는 이미 떠오른 것일 지 모른다. 서울에서 포항까지는 고속버스나 기차 어느 것을 이용해도 5시간은 잡아야 한다. 지루하게 먼 시간, 버스에서는 어지러워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게 흠이다. 그나마 며칠 전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바람에 20분 남짓 시간을 단축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경주로 해서 국도를 이용해야 했다. 고속터미널에 내리자 항구도시의 비릿함을 살짝만 담은 봄날처럼 훈훈한 바람이 쓱 지나간다. 시내 우체국을 지나 동빈내항 쪽으로 이정표를 따라가면 죽도시장이 나온다. 포항에서의 첫걸음은 죽도시장에서 시작하기로 한다.

포항의 어제 그리고 오늘을 담고 있는 동빈내항, 송도
사실 재래시장이란 게 어디나 비슷해 보이지만 지역마다의 특색이 있다. 우선 죽도시장은 그 규모에 놀라게 되는데, 여기에 와보면 재래시장의 위기라는 말이 난데없는 것처럼 들린다. 시장의 재미는 이곳저곳 걸어다니면서 구경하는 일일텐데 시장 골목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건어물 거리를 지나가면 양장점 골목, 모퉁이를 돌면 이불거리며 떡집골목이 나오는 식이다. 포항의 명물 과메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과메기 천지라고 할만큼 난전에 과메기를 내건 가게들이 이어지고 한쪽에는 아예 덕장을 차려 과메기를 직접 말리고 있다. 회센터골목도 엄청 큰 규모로, 새 도로가 나면서 대구 쪽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도무지 시장의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란 명성도 그렇거니와 불황의 그늘 없는 시장 고유의 활기찬 움직임이 기분 좋은 풍경이다.
“와 이리 사람이 많노, 대목장이네.”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시장 공판장 쪽 풍경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특별한 일도 없는 평일 오후의 시장은 정말 대목처럼 붐볐다. 주차장은 만원이라 차들이 줄지어 섰고,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을 만큼 통로가 비좁다. 잘 정비된 시장통과 달리 아무렇게나 자리를 깔고 “꽁치 열 마리에 4천 원씩”을 외쳐대는 직거래형 공판장은 갓 잡아온 고기보다 더 펄떡거리는 치열한 생의 현장으로 다가왔다.
어시장 앞길로 걸어가면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동빈큰다리’라 쓰여 있다. 이 일대가 바로 동빈내항이고, 다리를 건너면 송도다. 포항의 내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동빈내항과 송도. 형산강 하류지역으로 어부들만이 왕래했던 영빈동 지역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구한말에서 일제시대를 거치는 시기로 짐작하는데, 오늘날 죽도시장을 옆에 끼고 있을 뿐 아니라 포항-울릉도간의 여객터미널과 각종 화물선박의 기항지로서 포항의 관문이 되고 있다. 다리 주변은 멀리서보면 마치 강원도 속초같고, 가까이에서 보면 부산 영도처럼 보이면서도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송도, 송도의 송자는 소나무를 이름이다. 역시나 소나무가 울창하다. 해풍을 막기 위해 심었던 것이 이제는 여름철 피서객들의 쉼터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이윽고 송도해수욕장이다. 입구에 두 팔을 들고 서 있는 석고 여인상이 있으니 이름하여 ‘평화의 여상’이다. 촌스럽지만 어쩐지 정겨운, 70년대의 어느 때가 떠오를 법하다.

해변에 서자 오른쪽으로 ‘POSCO’ 글자가 선명한 탱크 주변으로 굴뚝이며 공장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할까, 어디선가 본듯한 풍경인데 바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푸른대문’의 배경이다. 주인공 두 남녀가 엉켜있던 다이빙대는 바닷물이 허리까지 차 물새들의 놀이터가 되어있다. 모래사장이 자꾸 유실되어 바닷물이 그만큼 들어찬 때문이다. 여느 해수욕장이 다 그렇듯 바다 가까이 축대를 쌓고 횟집이며 건물들을 지은 탓이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경승지였던 송도해수욕장은 해방 이후에도 그 명성을 이어갔으나 1968년 이후 이 지역에 철강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그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추억 속의 장소는 항상 그대로일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겨울바다 물은 푸르다. 해수욕장은 3개의 방파제가 놓여져 마치 삼등분 해놓은 듯 보인다. 물살을 줄여 모래유실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방파제 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게 따위를 잡고 있다. 모래사장에 텅 빈 노란색 철제타워는 여름철이면 안전요원이 올라와 호루라기를 불어제낄 것이다.
어물거리다 버스는 끊기고 구룡포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거대한 포스코 앞을 지나며 택시기사는 경제기여도는 크지만 공해 문제, 외지인들이 많이 와 인심이 나빠지고 술집이 많이 생긴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왠지 허탈하고 쓸쓸한 냄새가 났다.

오래된 뒷골목의 정경, 목선 만드는 현장을 보다
구룡포에서의 아침 해뜨는 시각은 7시 38분쯤. 겨울이라 해도 늦잠을 자는 모양이다. 가장 동쪽 끝인 호미곶으로 갈까도 했으나 너무 인공적인 분위기가 싫었고, ‘상생의 손’이라는 조각은 마치 물에 빠져 절규하는듯한 처절함이 마뜩치 않았다. 해뜨기 전 이미 사위는 밝아있었다. 붉은 등대가 보이는 방파제로 나가 해를 기다린다. 아직 집어등을 끄지 않은 통통배들, 끼득거리는 갈매기들 저편 지평선 위로 붉은 기운이 강렬해진다. 바다 끝에는 먹구름이 낀 모양으로 일출을 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순간 붉은 덩어리가 고개를 내밀더니 촛농을 떨어뜨리면서 바다 위로 솟구친다. 방파제에 선 발아래 삼발이들을 휘돌고 나가는 물소리가 처연하다. 해가 뜨는 장엄한 이 시각, 왠지 모르게 엄습하는 외로움은 왜일까. 그리운 이들이 너무 멀리 있다는 생각, 부질없는 일에 매달려왔다는 생각…….
구룡포가 너무 좋아 눌러 살게 되었다는 시인을 만나 구룡포에 대한 안내를 부탁했다. 강원도가 고향인 시인은 3년만 여기 살겠다고 왔는데 영영 떠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보는 풍경이 새롭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풍경을 매일 대하고 사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일까.

구룡포가 항구로 개발된 것은 일제 때였다. 그래서 골목 곳곳에는 적산가옥이 남아있는 등 일본풍 흔적이 엿보인다. 낡은 담장, 일본식 사철나무가 서 있는 2층집을 시인은 아는 체하며 들어갔다.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화분 가득 여러 꽃을 볕 좋은 창 아래 두고 있었다. 치자꽃 피면 향이 가득하니 그때 오면 더 좋다고 친절한 미소를 짓는다. 여관을 했던 집이라 조그만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2층방은 다다미가 깔린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옛날에 이 집에 살던 일본사람이 8살 때의 기억을 더듬어 낡은 사진 한 장 들고 얼마전에 찾아왔었노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구룡포 공원을 오르는 길, 그 앞의 2층 유곽처럼 화려한 흔적이 있는 집은 약방을 했던 곳이란다. 공원을 오르는 계단 가에는 이 지역에 공헌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돌기둥이 늘어서 있었다. 그 뒷면에는 당시의 일본인 또는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지금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다는 설명이다.
공원에서 보니 구룡포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관사 뒤로는 용왕당이 숨긴 듯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언덕으로 몇 걸음 옮기면 낡은 철제대문이 나온다. 반쯤 열린 문으로 들어서자 일본신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도 신사가 남아있다니 놀라울 따름인데, 마당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다. 일제가 물러간 이후 이곳을 성당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신사는 지붕 한쪽이 무너져 있는 등 태풍이라도 한번 불어닥치면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시인이 목선 만드는 곳이 있는데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반색하고 따라나선다. 차를 타고 건너편 언덕으로 올라가니 구룡포 일대가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푯말에는 구룡포조선소라 쓰여 있었다. 목선은 요즘 거의 수요가 없어 몇 년만에 만드는 중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옛말에 ‘군수한테 시집갈래, 배목수한테 시집갈래’ 물으면 배목수한테 가겠다고 할만큼 한창 벌이가 좋았고 인기도 높았다. 하지만 요즘 시절이 어디 그런가. 목선은 철선이나 FRP에 밀려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목선 만드는 모습이 신기해 이것저것 물어보려 하자 목수 한 분이 대뜸 말한다. “대충 알려고 해도 1년은 걸리고, 제대로 배우려면 10년은 목수일 배워야 해.” 그 말에 그냥 잠자코 보기만 할 따름이다.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목선은 물을 먹으므로 태풍이 와도 가볍게 날아가는 철선이나 FRP 배와 달리 잘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것. 바다와 진정 친밀한 것이 바로 목선인 것처럼 이 생과 좀더 친밀해지려면 그 대상에 스며들어야 할 일이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금세 왔고, 구룡포는 차창에 반사되는 햇살처럼 아련하게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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