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南原) 춘향 그리고 지리산의 마음
2004-12-16  |   4,738 읽음
안녕히 계세요/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도솔천(兜率天)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불 때/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서정주 시, 춘향유문(春香遺文) -춘향의 말·3 전문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이 시가 생각난 것은 이번 행선지가 바로 춘향전의 고장인 전북 남원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영화나 뮤지컬 등으로 자주 오르내려 스토리가 너무 잘 알려져 있고 한편으로는 진부하다는 관념이 있다. 그럼에도 또 그것이 되풀이되는 것은 어떤 불멸의 가치가 있음일 게다. 서정주의 춘향유문을 다시 읽으며 생각한 것은 춘향의 그 절대적인 사랑의 깊이였다.

광한루 맑은 연못, 햇살에 투영되는 사랑의 전설
버스는 전주 시내를 관통해 남원으로 들어간다. 터미널에 닿기 전 차창으로 혼불문학관, 만인의총 등의 표지가 지나간다. 박경리 ‘토지’의 무대가 경남 하동이라면 최명희 ‘혼불’의 무대는 이곳 남원인 것이다. 작가의 고향이며 소설의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은 ‘혼불마을’로 지정되어있고, 문학관도 들어서 있다.
광한루원으로 가는 길, 추어탕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남원을 상징하는 먹거리가 바로 추어탕인데,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 뼈 등이 씹히지 않게 내놓는 것이 남원식이다. 마침 점심때라 택시기사의 소개를 받아 찾아간 곳은 번듯하고 큰 식당들을 지나 시장 골목통의 허름한 집. 간판도 그냥 현식당으로 추어탕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먹고 나서야 가장 맛있는 집이라고 알려준 이유를 알겠다.
기와지붕 담벼락을 따라 광한루원 정문으로 들어선다. 탁 트인 마당 왼쪽으로 맨 앞에 보이는 것이 완월정이라는 정자인데 주변 연못물이 너무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인다. 비단잉어가 붉은 단풍과 어울려 화려한 늦가을 색채를 뽐내고 있다.
완월정 마루에 올라 앞 전경을 본다. 아래 연못에는 돌기둥 주춧돌이 물에 잠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옛 신전의 흔적인양 신비롭게 보인다. 햇살은 마치 어둠 속을 비추는 랜턴처럼 물 속을 투영한다. 그 물 속 깊이 사랑의 전설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오작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즐거운 표정들이다. 그런데 다리 건너편 쪽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는 모양이 뭔가 큰일이라도 난 것 같다. 허벅지 만하다고 해야할까 엄청나게 큰 잉어가 떼로 몰려 진풍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람들의 감탄이 끊이질 않는다.
오작교를 건너면 오른편에 광한루가 서 있다. 누각에는 올라가지 못하게 해 놓았으니 짐짓 실망이다. 그 앞 연못가에 자라 모양으로 만든 자라돌이 이채롭다. 그 내력은 이렇다. 조선 선조 15년, 마을에 재난이 일어나자 이 자라돌을 만들어 삼신산(三神山)을 마주보게 하였더니 재난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신산이 어디에 있나? 알고 보니 연못 가운데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바로 삼신산이다. 왼쪽 영주산, 가운데 봉래산, 오른쪽 섬(오작교 옆)을 방장산이라 하고 구름다리를 만들어 왕래하게 하였다. 돌다리를 건너 삼신산으로 들어가면 현판이 없는 정자(영주각) 하나 고즈넉하게 앉아 있고 가운데 공간에 대숲이 보기 좋다. 방장산에는 6각의 방장정이 있는데 처마를 받치고 있는 6마리의 용머리 공포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활기찬 문양이다.
연못가에 첨벙대는 물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노 젓는 나룻배가 지나간다. 연못을 청소하는 관리인이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으로 청소하는데도 운치가 있어, 물이 맑고 깨끗한 이유를 알겠다. 광한루 앞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 찍는 여학생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새처럼 파드득 하늘로 날아간다.
광한루원을 나와 건너편 춘향테마파크로 가는 대신 남원의 명동이라는 시가지 하정동으로 나가본다. 택시기사는 남원이 물위의 도시라고 말했다. 바닥에는 몽돌이 깔려있다고……. 이어지는 얘기는 아래쪽에 조산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산에 묶어놓은 배(도시)가 바로 남원이라는 것이다.
일제가 남원의 정기를 끊기 위해 철길을 놓아 세웠다는 남원역사는 얼마 전 새 역사로 옮겨가고 이제 폐사가 되어있다. 인적이 끊긴 곳이 그러하듯 기차가 다니지 않는 레일은 금세 녹이 슬었다. 끊어진 레일 조각들, 콘크리트 조각들이 쌓여있고 텅 빈 수하물 창고, 순천이며 여수 방면의 이정표들, 빈 벤치 위의 자욱한 먼지에는 한때 이 역을 지나쳤을 또 타고 내렸을 수많은 기억들이 묻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녹슨 레일 아래 나무 침목이며 자갈들도 같이 녹슬어가고, 주생 방면 철길에는 노란색 선로작업차량이 멈춰 서 더 이상 달릴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리산 자락 들녘에 선 실상사에서 아침을 맞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뱀사골 가는 버스를 타고 운봉, 인월을 지나 주산에 내려 15분 남짓 걸어가면 실상사다. 해질 무렵 운봉을 지나며 몇 해 전 바래봉 철쭉을 보러왔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이곳 지리산 자락 모두가 행정구역상 남원에 드는 셈이다.
다음날 아침 6시 무렵 실상사에 간다. 마을 길가에 바로 절 매표소가 있는 것도 특이한데 입구에서 절까지의 거리가 200m에 불과할 만큼 매우 가깝다. 어느 절이나 그렇지만 이른 시각 관리인이 나오기 전에 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문득 보니 사방이 모두 산으로 에워싸여 있다.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은 바닥을 드러낼 만큼 얕은데 그 물소리가 크기도 하다. 주변에는 물안개가 자욱히 피어오른다.

내의 이름은 황강천이고, 다리 이름은 해탈교다. 다리를 건너기 전 입구에 돌장승 하나 서 있고, 건너면 두 개의 돌장승이 반겨준다. 절을 등지고 선 상등성이 위로 붉은 기운이 내비치기 시작한다. 이윽고 사방 모든 산 위로 붉은 기운이 퍼지고 옅은 하늘색 빛깔로 채색된다. 능선은 완만하게 이어져 포근히 감싸고 있다. 머리 위에는 반달이 아직도 밝다.
금세 실상사 입구에 닿는다. 처음에는 지리산 실상사라 해서 어느 정도 산행을 각오했으나 싱거울 만큼 마을 가까이 있는 평지 가람이다. 일주문은 보이지 않고 천왕문이 먼저 나온다. 정면으로 보이는 보광전(대웅전) 앞마당으로 2개의 삼층석탑과 석등이 은근한 모습으로 서 있다. 동·서로 나란히 선 탑은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1972년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이 탑을 본보기로 했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다. 반송이라는 소나무는 부채처럼 여러 가지를 활짝 펼치고 서 있다.
석등은 등을 켤 때 올라가기 쉽도록 사다리 모양의 돌 받침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 이채롭다. 그런데 탑 주변에 울타리가 없다. 대신 국화를 심은 화분으로 빙 둘러 철책을 대신하고 있다. 대개의 절이나 문화재라고 하는 것에서 눈에 가장 거슬리는 것이 미적 감각 없이 아무렇게나 해놓은 울타리 철책인 데 비추어보면 이 절의 안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그 흔한 불사 하나 없이 소박한 분위기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절집 중에서 보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을 만큼 속으로 빛난다.
단청을 하지 않은 오래된 나뭇결의 보광전 건물에서도 소박하고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종의 가운데에 일본열도를 그려놓았다는 동종은 법당 안에 있었다. 종을 한번 칠 때마다 일본열도가 진동했을테니 얼마나 통쾌한가. 실상사를 호국사찰이라 부르는 이유다.
어느새 해가 능선에 걸치며 산기슭의 안개가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능선을 벗어난 해는 실상사에 온전히 퍼져 따뜻한 기운을 준다. 보광전 옆으로 약사전에는 철조여래좌상이 있는데 경주 석굴암 불상과 비슷한 모양이다. 불상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천왕봉이 있다. 약사전에는 또한 화려한 색깔의 꽃문살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아침 햇살이 비친 하얀 창호지의 은근한 멋에 더 마음을 뺏긴 것은 실상사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있는 풍경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산 자락 들녘에 선 실상사에서의 아침은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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