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영계곡 지나 울진 가는 길 여백 넉넉한 드라이브 코스
2004-12-16  |   17,933 읽음
지나온한해처럼 꼬불꼬불하고 높낮이가 심한 산길을 간다. 모퉁이를 돌면 산 그림자가 나서고, 고개 하나 넘으면 다른 산이 가로막는다. 속도를 낮추어도 몸이 휘청거리는 경북 울진 가는 산길에는 하룻밤 숨을 곳과 눈길을 빼앗는 계곡, 2억5천만 년 된 동굴이 있고 마침내 바다가 기다린다. 달리는 내내 곤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지만 그만큼 여백이 넓은 여행도 감사할 일이다. 늦가을 낙엽을 남김없이 떨어내고 빈 몸으로 겨울을 맞는 나무처럼 훌훌 울진으로 간다.

하룻밤 숨어들기 좋은 통고산자연휴양림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을 빠져 나오면 국도 여행의 시작이다. 5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영주에서 36번을 붙잡고 놓치지 않으면 울진에 이르게 된다. 백두대간의 밑동을 훑는 경북의 산은 낮지만 가파르다. 이 산 저 산 사이 놓인 국도는 ‘시속 60km 제한’을 알리는 표지를 태연스레 내걸고 있다. 일부 구간은 제한속도가 시속 40km. 말 잘 듣는 어린이처럼 꼬박꼬박 속도를 줄이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본다. 단풍이 물러간 산 빛은 염색한 지 오래된 노모의 머리칼 같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지나쳤건만 봉화역의 새 역사도 처음 눈에 들어온다.
봉화를 지나 노루재 터널을 통과하면서부터 시야가 트일 기색이 없다. 울진을 55km 남겨두고 오른쪽에 물줄기가 따라나선다. 또다시 한 고개, 회고개재를 넘는데 공기가 멈춰선 듯한 산 속에 ‘소천파출소 분천분소’가 서 있다. 밤이면 산적이 출몰할까? 난데없이 나타난 ‘공권력’이 듬직하다.
답운재를 넘고 얼마 안가 통고산자연휴양림 입구가 보인다. 전국의 휴양림이 대개 그렇듯 통고산자연휴양림도 깨끗한 계곡을 끼고 서 있다. 키 큰 나무를 거느리고 완만하게 이어진 산책길이 아름답고 통나무집 주변도 예쁘게 꾸며 놓았다. 겨울이 가까워서인지 눈 내리는 광경을 그려보면 더욱 근사하다.
이렇게 싸늘한 계절, 휴양림을 찾는 마음은 숨바꼭질과 비슷하다. 아무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에 숨어 심호흡을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엿보는 그때, 술래가 사라진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면 기쁠까. 통고산자연휴양림은 하룻밤쯤 꼭꼭 숨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거나, 아이들에게 자연의 풍부한 표정을 보여주고 싶을 때 찾기 좋은 곳이다. ☎(054)782-9007

들를 만한 곳
울진읍 노음리에 2억5천만 년 세월의 작품, 성류굴이 있다. 천연석회암동굴로서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화려하고 12개의 광장과 5개의 못이 장관을 이룬다. 성류굴의 원래 이름은 선유굴로, 신선이 노닐 만큼 아름답다고 붙은 이름이다. 연무동석실, 은하천오작교, 용신리선녀교 등으로 이어지는 광장은 하나 같이 신비경이다. 지질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대게로 유명한 죽변항 가까이 TV 드라마 ‘폭풍속으로’ 세트장이 들어서 있다. 언덕 위에 선 흰 등대와 옛스럽고 이국적인 한 채의 집, 배경으로 펼쳐진 바다가 그럴싸하다.
겨울여행에 온천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덕구온천을 여정에 넣을 것. 덕구온천은 자연용출 약알칼리성 온천으로, 데우거나 식히지 않아도 항상 41.8도를 유지한다. 목욕을 마치고 나면 피부가 매끈매끈해지고 근육통도 한결 덜하다는 이용객들의 입소문이 자자하다. 덕구온천 스파월드는 기포욕, 맛사지 시설, 노천온천, 액션스파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덕구온천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다. ☎(054)782-0677

목적지는 울진이지만 36번 국도는 몇 번이나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지난 여름 관광객으로 들끓었을 불영사와 불영계곡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표지판을 보고 찾아 들어간 불영사는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찬비 속에 수채화처럼 맑게 서 있다.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고, 보물 1201호인 대웅보전은 안에 있는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원년(1725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영루 앞에는 제법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산 위의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이 연못에 비쳐 구룡사에서 불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대웅보전, 응진전을 비롯해 귀한 문화재가 여럿 남아 있는 명찰이지만, 사실 불영사에서 마음에 담은 것은 낙엽이 곱게 깔린 흙길과 미련처럼 남은 단풍, 하늘 높이 솟은 은행나무, 제멋대로 가지를 뻗은 고목들이다. 늦가을 불영사 들머리의 아름다운 풍경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불영사를 나와 울진까지 낭떠러지에 가까운 협곡이 따라붙는다. 1985년 36번 국도가 놓이기 전에는 교통편이 없어 찾는 이가 드물었다는 불영계곡이다. 길이 15km에 흰빛의 화강암이 계곡 곳곳에 여울을 만들고 광대코바위, 주절이바위, 창옥벽, 명경대, 의상대, 산태극, 수태극 등 이름이 붙은 명소만 30여 군데. 두어 군데 세워진 팔각 전망대에 오르면 불영계곡의 장쾌한 스케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불영계곡 덕에 36번 국도는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의 하나가 되었다.
수산에 이르러 36번 국도와 작별을 하고 불영계곡의 맑은 물이 흘러드는 울진 앞바다 ‘망양해수욕장’으로 간다. 이 산 저 산을 어지럽게 넘어 마주한 망양의 바다는 파란색인지 회색인지 분간할 수 없는 낯빛이다.
무심한 바다를 한동안 무심한 척 바라본다. 36번 국도의 보석들을 줍기 위해 울진을 생각해낸 것이었는지, 겨울바다가 보고 싶어 그 꼬불꼬불한 길을 누빈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심히 대하는 바다도 그저 바다여서 좋을 뿐. 술래에게 발각된 순간 터진 웃음처럼, 정체 모를 기쁨이 비릿한 공기 속에 퍼진다.
취재 협조: 한불모터스(푸조 206cc) ☎(02)545-0606

드라이브 메모
중앙고속도로 풍기나 영주 나들목으로 나와 영주시내에서 36번 국도로 갈아타고 봉화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통고산자연휴양림, 불영사, 불영계곡을 차례로 만나다 울진에 이르게 된다. 36번 국도와 7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해 3km쯤 올라가면 울진읍내이고 계속해서 10km쯤 더 달리면 폭풍속으로 드라마 세트장이 있는 죽변항이 나온다. 죽변항을 지나 7.6km쯤 가면 왼쪽으로 덕구온천으로 이어진 917번 지방도가 갈라진다.
36번과 7번 국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회전하면 수산교를 지나 사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해 2km 가면 망양해수욕장, 우회전해 2.9km 가면 성류굴이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빠지지 않고 강릉까지 가서 7번 국도를 따라 남하해도 울진에 닿는다. 바닷가와 나란히 달리는 기분에 드라이브의 재미는 더 하지만 주말이라면 영동고속도로에서 정체를 만나기 십상이다.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