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公州) 넉넉한 산이 품은 잔잔한 강물처럼
2004-11-16  |   3,885 읽음
갑사로 가는 길, 교과서에 실렸던 이상보의 여행수필은 애틋한 남매탑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했다. 또 하나 학원지였던가, 현상공모 당선작 ‘갑사 가는 길’은 출가한 동생을 찾아 나선 누이의 여정을 그린 단편소설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실 기억의 정확성은 없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도록 남아 한번은 가봐야지 하는 미뤄둔 숙제 같은 것이었다. 스무 해는 더 지났을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그 갑사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 기억이란 청소년기에 겪었던 인연에 대한 또는 실존에 대한 고민의 한 편린이었으리라.

공산성 성곽 따라 가을햇살을 밟으며 걷다
백제의 옛 왕도였던 공주는 실제 수도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부여로 천도하기까지 64년 동안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 시기 동성왕과 무령왕대에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다시 세웠으니 그 의미 또한 적은 것은 아닐 것이다. 또 하나 갑오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에 아픈 역사가 스며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과 더불어 공주를 빛내는 것은 계룡산이다. 능선이 닭벼슬을 쓴 용을 닮았다고 해서 계룡이라 불리었고, 근대 이후에는 신흥종교의 본산이 되기도 했다. 한때 계룡산에서 수도했다는 말이 유행이 되곤 했는데, 민간 예언서 <정감록>에서 도읍지로 거론되었듯이 풍수가 뛰어난 것이 원인일 터이다.
공주터미널에 내려 강 건너편 공산성으로 간다. 걷기에는 다리를 건너야하므로 멀고 기본요금 코스라 택시를 탄다. 멀리서 보기에 현수막이 걸리고 천막이 쳐진 것이 무슨 행사를 여는 듯하다. 가까이 가보니 ‘고마나루(곰나루) 전통축제─전국향토연극제’가 열리는 중이다.
공산성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강 유역을 함락당하고 쫓겨 내려와 공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세운 궁성이다. 바로 웅진성이 이곳이다. 원래 흙으로 만든 토성이었으나 조선조에 석축을 새로 쌓았다고 한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성곽을 걷는다. 도시에 남은 옛 성곽으로 수원 화성과 흡사한 분위기다. 다만 시가지로 열려 있는 화성과 달리 주변 숲이 짙어 산속에 들어선 듯한 느낌은 사뭇 다르다. 산책하기 좋은 길을 따라 가을햇살이 흙길 위에 반짝인다.
어디선가 소란한 아이들 소리를 쫓아가 보니 소풍나온 아이들이 쌍수정에 모여있다. 조선조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고 평정 소식을 듣고 나무 두 그루에 벼슬을 내렸던 장소이다. 안내판에는 인절미의 고장이라는 유래가 적혀 있다. 바로 인조가 이곳에 머물 때 떡을 진상받았는데 맛이 너무 좋아 절미(絶味)라 칭찬했고, 그후에 임씨가 만들었다 해서 인절미라 불렀다는 내용이다. 한쪽 공터엔 연극무대를 설치하느라 부산하다.
진남루에서 영은사쪽 길로 접어든다. 성곽은 여기서부터 오르막길. 진남루 누각 아래로는 길이 열려 있어 통행이 가능한 성 누각의 특징을 보여준다. 아름드리 고목이 옆에 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누각은 뒤에 복원한 것이라 옛 정취는 없지만…….
쌍수교 지나 공산성 연지에 닿는다. 원래 연못은 3개 있었다 전해지는데 이곳과 쌍수정 남쪽의 것만 확인되고 있다. 연못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층단을 쌓았고 수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계단시설을 한 것이 이채롭다. 다가서 보니 꽤 깊다. 동성왕 때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연못 중의 하나이다. 연지 옆의 정자는 만하루인데 군사시설과 경승을 전망하는 누각이다.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노을지는 금강을 바라보기에 좋겠다.

갑사 너머 남매탑 가는 길은 멀기만 하고
시내 시장통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갑사 가는 버스를 탄다. 시내와 시외의 구분은 모호하지만 요즘 보기 드문 정류장 풍경이 정겹다. 따뜻한 햇살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갑사에 닿는다. 교과서에 실린 수필 영향일까 초입 아치형 간판에 ‘갑사로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식당가는 다른 지역보다 정돈이 잘 되어있는 느낌이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있듯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의 경치가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절 이름에 으뜸 갑(甲)자를 쓴 내력도 예사롭지 않은데 백제 때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단풍이 들어야 가을의 절경을 볼텐데, 찾았을 10월 초순 무렵에는 아직 푸른잎이 그대로이고 조금씩 갈색을 띠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주황색 색채를 띤 감나무며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들국화 따위가 가을 분위기를 내주었다.
갑사 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있고 거리도 가까워 금세 절에 닿는다. 수필에서의 여정은 산너머 동학사에서 거꾸로 갑사를 찾아올 때이다. 따라서 공주시내쪽에서 들어가는 갑사 가는 길은 싱거울 정도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는데 사천왕들이 안 보인다. 어디 출타하러 나가셨는가. 알고보니 불사중이다. 대웅전앞 마당 새로 만든 탑이 생뚱맞다. 고찰이면 그에 맞는 탑이 서 있어야 하는데 새로 만든 탑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절 뒤로 돌아 숲길로 조금 오르면 약사여래입상이 있다. 바위 틈새에 서있는 약사여래는 소박하고 천진한 모습이다. 옆으로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서늘하고 물이 무척 깨끗하다.
전통찻집 옆으로 공우탑을 지나 대적전 앞 부도 옆으로 대숲 터널이 보기 좋다. 공우탑은 절에서 짐을 져 주면 혼자서 암자로 짐을 나르던 영리한 소가 있었는데, 그 소가 늙어 죽으니 승려들이 은공을 기려 세운 것이라 한다. 대웅전 앞의 신식 탑보다 이 탑을 옮겨다놓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날 절 아래 민박집에서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보러간다. 시간대중을 잘못해 가자마자 예불이 끝난다. 예불을 마친 스님들은 제각각의 방에 들어가 참선하는 모양이다. 사위는 칠흑같이 어둡고 불켜진 스님들의 선방에서 ‘탁탁’ 어둠을 깨는 죽비소리가 흐트러진 정신을 깨운다. 이리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정진하는 모습에서 도시에서의 일상을 돌아보고 반성이 없을 수 없다.
새벽 별 쏟아진다. 북극성, 반달이 빛난다. 어린 시절 외웠던 별자리는 까마득히 잊어버려 생각나지 않는다. 동틀 무렵이 되면서 더 추워지는 느낌이다. 절에서 아침공양을 하고 산을 오르기로 한다. 아무래도 남매탑을 봐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에서다. 그런데 아침공양으로 깨죽이 나왔다. 맛은 일품인데 이른 새벽 죽 먹고 산행이라니…….
그야말로 팍팍한 허벅다리 두드리며 오르고 또 오른다. 용문폭포 지나 천진보탑 가는 길, 남매탑은 정상 너머에 있다. 멀다. 과연 갈 수 있을까. 신흥암 0.3km → 표지가 나오기까지 가파른 돌계단의 연속이다. 돌아보니 갑사에서 온 길은 고작 1.1km. 산에서의 1km는 정말이지 멀다. 안내문에는 어렵지 않은 등산코스라고 쓰여 있었는데, 평소 운동부족 탓이다.
해발 375m 표지를 지나자 신흥암이 나온다. 비로전 공사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산신각을 에둘러 천진보탑을 보러간다. 약숫터를 받치고 있는 나무등걸과 지붕이 오래되었고 산신각 건물이 고풍스럽다. 천진보탑은 자연 석탑인데, 아도화상이 여기서 부처님의 사리를 발견하고 갑사를 창건한 배경이 된다.
여기서 돌아갈까 생각하니 아쉽다. 굴참나무 숲길을 지나 다시 오르막. 길은 더 가파르다. 어디 한번 가보자 하는 오기가 발동한다. 금잔디 고개 0.5km → 표지를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이 생긴다. 드디어 정상. 눈부신 햇살이 어지럽다. 남매탑 0.7km, 동학사 2.4km 남았다는 표지가 보인다.
내처 동학사까지 가면 오히려 나으려만 너무 일찍 나서서 짐을 두고 온 탓에 갑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게 실수였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오랜 기억에서부터 나를 이끌어준 남매탑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가슴에 간직한다. 갑사와 계룡산에서의 가을은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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