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계곡과 점봉산 곰배령 백두대간 품속에서 만나는 가을
2004-11-16  |   7,366 읽음
가을 산행,단풍과 억새밭 구경, 산골 마을에서 보내는 하룻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는 그리 많은 시간과 힘을 들이지 않아도 때묻지 않은 자연에 푹 파묻힐 수 있는 곳이다. 2∼3년 전 나온 지도에는 아예 길이 그려져 있지 않을 만큼 오지 중의 오지지만, 지금은 아스팔트길이 놓여 승용차로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현리에서 진동리까지 이어진 진동계곡과 점봉산 곰배령 가는 등산로, 차로 오를 수 있는 조침령, 쇠나드리의 억새밭은 산 속에서 맞이하는 가을이 얼마나 넉넉하고 아름다운지 나지막하게 속살거린다. 가까이 있는 방태산자연휴양림과 방동약수도 1박2일 여정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명소다.

산행 출발지 설피밭과 억새 우거진 쇠나드리
오죽 눈이 많이 오면 ‘설피밭’일까. 해발 700m 고지대인 진동리는 겨울이면 설피(눈이 깊은 곳을 다닐 때 신의 바닥에 대는, 칡이나 노 따위로 넓적하게 만든 물건)없이 다닐 수 없을 정도라고 하여 설피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새 길이 놓이긴 했지만 장을 보려면 30분쯤 차를 타고 현리로 나가야 할 만큼 산 속이다. 도로 위로는 다람쥐며 청솔모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속도를 줄여 조심하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일쑤다.
사방 높은 산 아래, 10월에도 냉랭한 바람이 마중 나오는 설피밭 한뫼마루 펜션에 짐을 풀고 먼저 조침령으로 향한다. 조침령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리 사이의 고개. 오프로더들이 즐겨 찾는 비포장길이 10여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정상에 서면 울퉁불퉁한 백두대간의 산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너무나 손쉽게 얻은 눈맛에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조금만 더 가면 동해바다까지 손에 잡히지만 승용차로 올랐다면 욕심을 접고 정상에서 차를 돌려야 한다. 양양까지 이어진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보다 훨씬 험하고 가팔라 4WD가 아니면 차 바닥이 다 상한다. 이 길은 내년 완공을 목표로 확포장공사중이다. 동해로 가는 또 하나의 포장도로가 탄생하는 것이다. 길이 편해지면 자연은 그만큼 잘려나간다. 백두대간을 넋 놓고 바라보고 서서 아쉬움인지 기대인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조침령에서 차를 돌려 내려와 현리쪽으로 향하면 바로 쇠나드리다. ‘쇠나드리’는 황소를 날려버릴 만큼 거센 바람이 분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바람부리’라고도 부른다. 3만 평 규모의 이 분지에는 10∼11월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도로 양옆으로 드넓게 펼쳐진 억새밭은 해를 마주보고 서서 바라볼 때 가장 눈부시다. 억새의 군무는 부드러우면서 힘있고, 어딘가 스산하지만 우아하다. 어른 키 높이만큼 자란 억새는 세찬 바람에 휘둘리면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산중에 뿌리를 내리고 폭설과 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이곳 사람들처럼.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점봉산 곰배령 등산로로 접어든다. 해발 1천424m의 점봉산은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보고 있는 남설악의 중심 산이다. 곰배령은 점봉산의 8부 능선으로 드넓은 초원지대를 품고 있다. 봄과 여름철에는 수많은 자생식물이 꽃을 피워 희귀 야생화의 보고로도 이름나있다.

왕복 8km의 곰배령 등산은 경사가 완만해 가벼운 트레킹에 가깝고, 가을에도 숲이 하늘을 가릴 만큼 깊다. 계곡을 두어 번 건너며 좁게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단풍이 화사하다 못해 투명하다. 물밑이 훤히 보이는 계곡에는 누군가 휙 보석을 뿌려 놓았다. 세례 혹은 성은 같은 가을볕의 힘. 때로 느려지는 발걸음에는 서늘한 공기가 보약이다.
내내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곰배령을 300여m 앞두고 길이 가팔라진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르고 수년간 게으르게 살아온 근육이 백기를 준비할 무렵, 하늘을 가린 나무가 일순간 걷히고 드넓은 초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풍성한 가을볕과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안는 시간. 야생화의 자취도 제대로 옷을 갈아입은 단풍도 눈에 띄지 않지만 하늘을 이고 선 산중 초원은 탁 트인 시야 하나만으로도 짜릿한 기쁨과 보람을 안긴다. 11월이면 온통 노랗게 변한 초원에 서서 점봉산의 화려한 단풍축제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취재 협조: 한불모터스(푸조 307SW) ☎(02)545-0606

한뫼마루 펜션과 송어양식장
오지마을에서도 따뜻하고 안락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지난 8월에 문을 연 한뫼마루 펜션이 그곳. 김상구(45) 대표가 ‘가장 조용하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터’를 찾아 헤맨 끝에 이곳을 발견하고 지난 8월 완공해 문을 열었다. 길이 20km에 이르는 진동계곡의 청정수가 펜션 바로 앞을 흐르고, 전교생 11명의 기린초등학교 진동분교가 바로 옆에 있어 산책이나 놀이를 하기에도 좋다. 곰배령 등산로 입구도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객실은 10평짜리 일반실 5개, 12평짜리 특실 2개가 마련되어 있다. TV, 냉장고, 주방, 샤워실, 침대, 바비큐 그릴 등 부족함 없는 시설을 갖추었고 이용료는 일반실 비수기 6만 원, 성수기 7만 원이다(5인 이상이면 1인당 1만 원 추가). ☎(033)463-1110, 018-396-0177. 홈페이지 www.hanmemaru.com
주변에 가게가 없으므로 바비큐용 고기나 음식재료는 현리에서 미리 사가야 한다. 진동계곡 가는 길 두무대 산속에 자리잡은 두무대 송어양식장에 들러 송어회와 매운탕 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점봉산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차가운 물로 양식한 송어는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해 회든 매운탕이든 성찬거리로 손색없다. 값은 1kg에 2만 원(3∼4인분)이고 매운탕거리와 채소의 값은 따로 받지 않는다. 11년째 같은 자리에서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고, 주변은 물론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집이다. ☎(033)463-1020

드라이브 메모
서울에서 출발했다면 양평을 지나 44번 국도로 갈아타고 홍천으로 간다. 홍천읍내에서 19km쯤 가면 철정리다. 철정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451번 지방도를 따라 30km쯤 달리면 31번 국도와 만난다. 31번 국도로 접어들어 14km쯤 가면 기린면 현리에 이른다. 현리 읍내로 들어서기 전 방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삼거리에서 방태산자연휴양림 푯말을 따라 우회전, 418번 지방도를 타고 7∼8km 달리면 오른쪽으로 방태산 자연휴양림 가는 길이 갈라진다. 계속해서 11km 직진하면 억새밭이 펼쳐지는 쇠나드리이고 쇠나드리교를 지나 1.5km 가면 점봉산과 조침령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점봉산 쪽으로 3.5km 들어가면 점봉산과 상부댐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고, 조금 더 직진하면 오른쪽에 기린초등학교 진동분교, 한뫼마루 펜션이 차례로 보이는 설피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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