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만경평야와 심포항 끝간 데 없이 펼쳐진 가을 들녘, 그 끝의 바다
2004-10-25  |   7,995 읽음
끝이 하늘과 맞닿아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소설가 조정래가 <아리랑>에 묘사하고 있는 그 들녘.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로 호남평야의 중심을 이루는 김제 만경벌이 무르익었다. 아직 푸르름이 남아 있는 9월의 벼밭은, 10월 초순 ‘지평선축제’가 열릴 무렵이면 온통 노란 물결로 출렁일 것이다.
서해안고속도로를 곧잘 타고 다니면서도 여행의 종착지로는 쉽게 떠올려보지 못한 전북 김제. ‘순 논바닥만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달려도 달려도 그대로인 벌판이 증명해주는 듯했지만, 마침내 그 끝에 다다랐을 때 그리 참한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이 가을, 북적이는 단풍여행지를 피해 한가롭게 서성일 곳이 그립다면 여기로 가보자. 허리춤까지 자란 곡식들 사이를 풍요로운 마음으로 거닐다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절 돌마루에 해질 녘까지 앉아 있어 보노라면, 어느새 우울한 상념은 걷히고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아진다.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 IC에서 빠져 진봉면, 광활면 방향으로 차 머리를 돌리면 확 트인 들녘이 시작된다. 논과 논을 이어 들판을 만들고, 점차 거대해지는 평야를 에두르고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이어지는 29번 국도, 702번과 711번 지방도에는 키 작은 코스모스가 흐드러져 여행객을 반긴다. 김제시가 지평선축제를 위해 조성한 이 꽃길은 장장 36km에 이르는데, 요즘은 계절도 없이 피어나는 코스모스지만 그 하늘거리는 줄기며 연한 꽃잎은 여전히 바람 좋은 가을날에 봐야 제멋이 난다.
김제는 외곽의 몇몇 산지를 빼고는 시 전체가 높이 50m 미만의 구릉지와 동진강, 만경강 주변의 광대한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답게 수평으로 펼쳐진 들녘이 어찌나 시원하고 드넓은지, 멀리서 보면 중간 중간에 서 있는 전봇대들이 마치 노란 시루떡판에 마구잡이로 꽂아놓은 이쑤시개들 같다.
만경(萬頃)평야. 김제시에 있어 흔히 ‘김제평야’라고도 부르는 이 평야는 ‘일만 이랑’이라는 뜻. 모두 7천만 평의 논에서 한 해 170여 가마가 나와 국내 쌀 생산량의 2.5%를 책임진다. ‘전국에 수해가 나도 이 곳만은 비켜간다’고 할 정도로 안전하고 비옥한 천혜의 토지.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벼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었다. 삼한시대의 농경용 저수지로 첫손 꼽히는 벽골제가 그 증거. 지금은 부량면 원평천 하류에 두 개의 수문과 3km 남짓한 제방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축조 당시에는 둑이 3.3km, 둘레가 44km에 이르러 이 저수지가 마르면 나라에 흉년이 든다고 했다.

한반도의 거대한 식량창고인 만경벌은 또한, 일제 식민시대에는 참혹한 착취의 땅이었다. 1904~1945년, 일본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 김제가 주무대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 벽골제 건너편에 세워진 ‘아리랑문학관’에 가면 취재부터 무려 10년 8개월에 걸친 작가의 <아리랑> 집필기를 세심한 자료로 돌아봄과 함께, 김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까지 겸할 수 있다. 모두 12권 분량의 <아리랑> 집필에 쓰인 세라믹펜 심 586개, 소설 속 무대들을 펜 그림으로 정확하게 묘사해놓은 스케치북 등 작가의 전시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눈앞에 있어도 그리운 바다
김제는 지평선의 고장인 동시에, 아름다운 수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702번 지방도를 따라 서쪽 끝까지 빠져들 듯 들어가면 예쁜 서해바다를 마주한 심포항이 나온다. 멀리 고군산반도가 가물거리고, 사막의 모래언덕처럼 군데군데 부드러운 능선을 그리며 검은 맨살을 드러낸 갯벌이 농염하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밀고 내려온 토사로 이루어진 이 옥토에선 1년 내내 맛좋은 백합이 나오는데, 작지만 정겨운 바닷가 식당에서 까먹는 백합구이와 다양한 해산물 반찬들은 ‘지평선 쌀’만큼이나 입에 착 달라붙는다.
심포바다의 낙조를 좀더 고즈넉이 즐기고 싶다면 항구 뒤편의 전봉산 절벽에 자리잡은 망해사로 가보자. 백제 의자왕 때(642년) 부설거사가 처음 사찰을 지어 수도했던 이 곳은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규모가 무척 초라하다. 초기의 절터는 무너져 바다에 잠기고 지금 있는 낙서전과 보광전, 칠성각은 조선시대 이후에 다시 세운 것. 바다를 향해, 그리 높지도 않은 곳에 차분히 내려앉은 이 절 마당에는 눈앞의 바다를 한 폭 그림으로 담아내는 전망 좋은 돌의자가 있다. 바다를 제 품에 꽉 껴안고도 이름이 망해사(望海寺)라니…….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던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바다는 그렇게 아스라이 멀어질 듯 눈앞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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