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봉평 초가을에 듣는 옛이야기
2004-10-20  |   6,370 읽음
마침봉평 장날(2일, 7일 등 5일장)이었다. 좁다란 골목 양옆으로 나란히 좌판이 늘어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풍경은 한껏 가라앉아 있다. 입구에서 한 할머니가 조그만 목욕의자를 깔고 앉아 참기름, 들기름을 판다. 1병에 1만 원. 뚜껑을 여니 고소한 냄새가 진군한다. 참기름 용기는 참이슬 소주병에 비타500 뚜껑이지만 아찔한 냄새 한 방에 묵묵히 지갑을 연다. “할머니, 서비스 없어요?” “서비스는 비닐봉투여.”
봉평 사람들뿐 아니라 전국을 돌아다니는 장꾼들이 모여서인지, 봉평 장터에서 오가는 우스개는 소음처럼 기침소리처럼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다. 봉평도 강원도인데, 찐 옥수수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이거 진짜 찰옥수수예요?”하고 물었던 것은 실수였다. “메옥수수는 약에 쓸라고 해도 없어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다.
봉평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메밀이다. 메밀은 가루로도 팔고 음식으로도 판다. 솥뚜껑에 기름을 바르고 메밀반죽을 얼굴 팩만큼 얇게 편 다음 김치 등속을 얹고 돌돌 말아 썰어 내놓는 메밀 전병이며 메밀전, 감자전이 단돈 1천 원. 봉평장에 가면 누구나 조자룡 헌 칼 쓰듯 지폐를 뽑아드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다양한 메밀음식 맛볼 수 있는 봉평 5일장
메밀꽃이 피는 이맘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은 외지인들로 북적댄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며 작가 가산 이효석이 나고 자란 곳이 바로 봉평이다. 장터를 벗어나 조금만 걸으면 메밀밭이 지천으로 펼쳐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꽃밭 속으로 스며들어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메밀은 7∼8년 전만 해도 찾는 이가 적어 농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지만 고혈압, 다이어트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지고 봉평면이 이효석과 메밀꽃밭의 가치에 뒤늦게 주목하면서 봉평의 최고 관광상품으로 떠올랐다.
메밀꽃이 피는 시기는 8월말부터 9월초지만 이곳의 메밀은 시차를 두고 파종해서 10월초까지 꽃을 볼 수 있다. 해마다 9월에는 효석문화제도 열리는데, 올해는 9월 10∼19일 축제를 치렀다. 메밀꽃이 활짝 피는 늦여름, 초가을이 아니더라도 봉평에는 이효석문학관과 생가 터, 평창무이예술관, 흥정계곡, 허브나라농원 등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이효석문학관은 가산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학전시실과 문학교실, 메밀자료 전시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1907년 봉평에서 태어난 이효석은 1928년 단편 <도시와 유령>으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이 나온 해는 1936년이고 1942년 그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뇌막염으로 생을 마친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앉아 있는 사진 속의 이효석은 당시 지식인의 증표 같은 동그란 뿔테 안경에 양복차림이다. 문학관에서 자료들을 둘러보다 보면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고 가정적으로는 불우했으며 이상은 높았던 이효석의 여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관 주변은 문학정원, 메밀꽃길, 오솔길 등으로 오붓하게 꾸며놓았다. ☎(033)330-2700
문학관을 나와 조금만 더 큰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이효석 생가 터가 나온다. 옛집이 하나 서 있지만 이효석이 살던 집은 아니다. 원래 있던 집을 헐고 다시 지어 옛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찾는 사람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이효석 생가인 줄 알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메밀꽃밭 속에서 유영하듯 시간을 보내다 차 머리를 돌리면 보광피닉스파크 가는 길에 평창무이예술관이, 흥정계곡쪽으로 허브나라농원이 이어진다. 숲 사이 반짝 떨어진 햇빛처럼,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볼 차례.

2001년 세워진 평창무이예술관은 폐교를 활용한 창작 스튜디오다. 작가 4명의 작업실과 전시실, 체험공간이 있고 폐교 바로 옆은 어김없이 넓은 메밀밭이다. 야외조각공원은 조각가 오상욱의 작품 150점으로 꾸며져 있고 실내로 들어가면 30여 년간 메밀꽃을 그려온 정연서 화백, 서예가 이천섭, 도예가 권순범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미리 연락하고 가면 도예, 서예, 판화 체험도 가능하다. 2층에 오르면 음료수를 마실 수 있고 베란다에서 조각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033)335-6700
허브나라농원은 숲 그늘 깊고 물 맑은 흥정계곡에 자리하고 있어 두 곳만 들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문을 연 허브농원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굳혔다. 아기자기한 테마 공원에 들어서면 눈과 코가 즐겁고, 허브로 만든 차와 요리를 맛보거나 다양한 허브 상품을 살 수 있는 식당, 가게 등이 옆으로 이어진다. 농원 안에 펜션과 자작나무집 등 숙박시설도 갖추었다.
허브나라를 다녀간 이들의 평은 ‘너무 좋다’와 ‘상업적이어서 싫다’로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허브에 관한 모든 것을 둘러 볼 수 있는, 제대로 가꾸어 놓은 테마공원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033)335-2902
취재 협조: 한불모터스(푸조 206CC) ☎(02)545-0606

전망 좋은 프랑스풍 테마펜션 봉평프로방스
펜션 봉평프로방스는 문을 연 지 얼마 안되어 시설이 깨끗하다. 대표 이기노 씨가 직접 설계하고 2년여에 걸쳐 꼼꼼하게 지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예술 혼을 불살랐던 화가들(고흐, 르누아르, 세잔느, 마네, 피카소, 마티스, 밀레)의 소개와 작품 사진, 설명이 객실마다 걸려 있고 외부에는 항상 음악이 잔잔하게 흐른다. 커플에서부터 대가족까지 묵을 수 있는 여러 동의 숙박시설을 갖추었고 하루 이용료는 7만∼18만 원선. 여느 펜션과 달리 숯불구이 시설을 무료로 준비해준다.
봉평프로방스는 깔끔한 외관과 시설도 인상적이지만 우거진 숲을 등지고 산 언덕 위에 서 있어 전망이 좋다. 발 아래로 봉평의 산과 들판, 메밀밭, 덕거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기노 씨는 “해질 무렵에는 밀레의 만종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평온하며 어딘지 모르게 경건한 들녘의 해넘이가 하루 여행의 마무리 시간으로 썩 잘 어울린다.
봉평프로방스는 봉평면소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음식재료나 먹을거리를 사러 나가기에도 편하다. 메밀꽃밭이나 장터, 주변 여행지도 가깝다. 홈페이지 www.pensionprovence.com 문의 ☎(033)335-1778

드라이브 메모
영동고속도로 장평IC를 빠져 나와 봉평 방향 6번 국도를 따라 6km쯤 가면 봉평면소재지다. 왼쪽 농협과 축협 사잇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바로 봉평 옛장터 골목이 보이고,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이효석문학관, 생가 터까지 둘러볼 수 있다. 가는 길 어디서나 메밀꽃을 볼 수 있지만 다리를 건너 바로 우회전해야 가장 넓은 메밀꽃밭 사잇길로 들어설 수 있다. 장터나 꽃밭을 구경할 때는 다리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이 사실 더 편하다.
봉평면소재지로 돌아나와 조금만 올라가면 오일뱅크 주유소를 지나 덕거리 입구 간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 100m쯤 가서 펜션 간판들이 늘어선 길로 좌회전, 봉평모텔 앞을 지나면 오른쪽 야산 위에 펜션 봉평프로방스가 있다. 덕거리 입구 간판 앞에서 계속 직진해 보광 피닉스파크쪽으로 달리면 오른쪽으로 흥정계곡, 허브나라 들어가는 길이 갈라지고, 삼거리에서 조금 더 직진하면 왼쪽에 평창무이예술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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