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계룡산도자예술촌 아름다운 공동체
2004-09-16  |   5,455 읽음
깊은산 속에 집 한 채 짓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욕망. 직장이며 사람들 관계며 어렵게 장만한 도시의 아파트며, 한때 최선을 다해 일궈온 환경을 온전하게 버리고서야 이룰 수 있는 꿈을 위해 제 인생을 ‘올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시때때로 떠날 뿐인지도 모른다. 여름휴가로, 단풍 여행으로, 눈 덮인 겨울 산사를 찾아서…….
사계절 멋진 경치를 뽐내는 충남지역의 명산, 계룡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계룡산도자예술촌은 도심의 빌딩 숲에 갇혀 소통의 부재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해갈과 대안적 공동체의 삶을 보여주는, 썩 괜찮은 여행지다. 단풍이 멋지기로 소문난 ‘가을 갑사’와 엮어 한번쯤 다녀오면 좋을 코스.

우리 독창의 도자기 산실에 집을 짓다
21세기 한국의 새 행정도시 예정지로 떠오른 백제의 고도(古都) 공주, 그 중심에 버티고 선 계룡산이 우리 도자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터라는 것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강진의 청자, 이천의 백자와 더불어 한국 도자기 역사를 지탱해온 공주 분청사기는 15세기 후반~16세기 초 계룡산 기슭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주로 동학사 입구의 반포면 학봉리에 밀집했던 가마터는 깨진 유물들만 남긴 채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뿌리를 찾은 젊은 도예인들이 가까운 상신리에 촌락을 이루고 살면서 전통의 기법을 되살리고 있다.

계룡산 분청사기는 다른 지역의 분청들과 다르게 철화(鐵畵) 기법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분청사기는 청자토에다 걸쭉한 백자흙물을 바르고 그 위에 문양을 넣는 방식인데, 7가지의 채색방법 중 계룡산 밑에서만 유독 자연 철을 곱게 갈아 그림을 그리는 ‘철화분청사기’가 싹텄다. 다 구웠을 때 회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명쾌한 대비를 이루는 철화분청사기는 호방하고 질박한 무늬로 특유의 지방색을 뽐내며 자유분방하고 장난기 넘치는 분청의 매력을 한껏 펼쳐 보였다.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에 생겨난 분청사기가 그 맥을 올곧게 이어오지 못한 데는 임진왜란의 탓이 컸다. 우리나라에 대한 일제의 문화침탈은 익히 알려진 사실. 도자기 기술이 미천해 그 때까지도 자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도기를 구워 쓰는 수준이던 일본은 전쟁중 전국의 수많은 가마를 파괴하고 뛰어난 도공들을 일본으로 끌고 갔다. 이 때 계룡산 지역에서 잡혀간 이삼평(李參平) 옹은 아직도 그가 활동했던 규슈 현 아리파 지역에서 자기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분청사기는 청자 백자와 다르게 서민들이 즐겨 쓰던 용기입니다. 전란에 전성기를 채 누리지도 못하고 발전의 기회까지 빼앗겼지요.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그 피해가 컸습니다. 학봉리와 온천리 일대에서 깨진 철화분청 조각이 많이 나와 나중에야 이곳에서 독창적인 철화분청 문화가 싹텄음이 알려졌는데, 지금이라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정통성을 되찾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11년째 계룡산도자예술촌을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김용운 촌장의 말이다.

작품 이상의 것을 가르치는 열린 작업실
계룡산도자예술촌이 자리한 곳은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대전에서 20분 거리에 있어 공주 갈 때 흔히 타는 천안-논산고속도로보다 호남고속도로 유성 IC를 통하는 것이 빠르다. 유성에서 32번 국도를 타고 동학사 앞 삼거리(박정자삼거리)를 지나 2.6km 가서 상하신리 방향으로 좌회전. 정겨운 시골길을 4km 달리면 오른쪽에 ‘계룡산도예촌’ 표지가 나온다. 계속되는 표지를 따라 좁은 마을길을 휘젓다 보면 문득 나타나는 공터, 그 왼편으로 ‘00공방’이라는 간판을 저마다 걸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12채 규모의 도예촌이 있다. 부부작가들을 포함해 모두 18인의 도예인이 모여 이룬 작은 공동체.
마을은 꼭 옛날 씨족들이 부락을 이루고 살던 ‘집성촌’처럼 유대가 두텁고, 서로에게 열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93년 같은 뜻을 품고 허허벌판에 마을을 일궈 입촌한 이후 두 집 주인이 바뀌었을 뿐, 더 이상의 이웃을 들이지 않고 11년을 한 가족처럼 살아왔다. 담 대신 마당에 나무 빗장 하나만 걸쳐놓은 집이 있는가 하면, 각자 개성을 지니되 고만고만하게 높고 넓은 집 구조와 크기를 다투지 않는 간판들의 어울림에서 ‘더불어 사는 것’의 참의미가 나눔과 믿음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 김용운 촌장은 이곳의 사람들이 처음 마을을 세울 때 ‘개성의 충돌’을 적잖이 염려했으나 서로에 대한 배려로 많은 갈등들을 극복해왔다고 털어놓는다. 예술가들의 고집이 드세다고는 하나 흙 만지는 사람들은 특별히 남 배려가 많은 편이라는 설명과 함께.
예술촌이라고 해봐야 보통은 대형 전시장 등 공동의 상권만 눈에 띄는 다른 지역과 달리, 계룡산도자예술촌은 그 자체로 예술인 가족들이 모여 사는 생생한 생활터전이라는 점에서 관광객들이 갖게 되는 감회가 남다르다. 애초에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아니어서 전시장 귀퉁이의 작은 카페 외에는 잠시 다리 쉴 곳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 그러나 불현듯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낯선 이방인에게도 흙먼지 쌓인 작업장이며 세간을 부끄럼 없이 보여주고 더러는 말벗까지 되어주는 도예인들이 있어, 원한다면 작품 이상의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담아올 수 있다. 12채의 공방이 대부분 넓은 작업장을 갖추고 있어 미리 예약하고 가면 언제든 1일 도예체험을 할 수 있고,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디카 매니아들은 여러 작업실을 노크해 생생한 기록사진도 많이 담아올 수 있을 듯. 단, 매주 월요일은 공동 전시장이 문 닫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도예인들이 휴일로 삼고 있으므로 피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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