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安東) 배롱나무 꽃 필 무렵
2004-09-15  |   4,883 읽음
배롱나무 꽃필 무렵 가야지 했던 안동행이다. 여름 꽃나무 배롱나무는 100일 동안 붉어 백일홍이라 불리기도 하고 중국에서 건너온 까닭에 자미화(紫微花)라는 이름도 있다. ‘홀로 앉아있는 해질 무렵, 누가 곁에 있는가/ 자미화가 자미랑(紫薇郞)을 마주하는구나’라고 노래했던 당나라 시인 백거이, ‘지난 저녁 꽃 한송이 지고,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좋이 한 잔 하리라’고 한 조선조의 성삼문 등 수많은 선비들이 사랑했던 꽃나무. 그래서인지 소쇄원 등 정자가 많은 담양 일대와 진도 운림산방 등 이름난 정자나 서원 주변에는 어김없이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병산서원 배롱나무를 본 이후 상사병처럼 마음을 빼앗겼다. 어쩌면 병산서원 만대루 마루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이며 강, 산을 바라보고 싶었던 때문인지 모른다. 그 푸른 풍경에 붉은 색채라니…….

부용대에 올라 물돌이동을 보고, 병산에 가다
요사이 다녀보면 전국 곳곳으로 정말 새 길이 많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서 안동 가는 길도 원주에서 새로 도로가 나 훨씬 편리해졌다. 예전에 4시간이 넘던 거리가 3시간 정도로 한 시간 이상 단축되었다. 한참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도로도 곧고 넓어졌다. 중앙선 기차로 가면 여전히 4시간이 넘기에 고속버스를 타는 게 더 편리하고 빠르다.
터미널 건너편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려 먼저 하회마을로 간다. 하루에 편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간대를 잘 맞추어야 한다. 하회는 시 외곽에 있어 꽤 거리가 있는데 50분 가량 나가야 한다.
하회마을 초입부터 차들이 줄지어 섰다. 여기도 방학, 휴가 시즌에는 몸살을 앓는 모양이다. 입장료(어른 1천500원)를 내고 들어서는 길 입구에는 안동간고등어, 안동찜닭 등의 먹거리나 민박 등의 간판을 내건 옛집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번잡하다. 예전에 왔을 때와는 너무 많이 달라진 모습.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골목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진다. 어느 대문 처마 밑에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는데 텅 빈 골목을 보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고개를 돌려 대문을 보니 서애 유성룡 선생의 후손이 여기에 살고 있다는 안내문이 써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 다른 민속촌과 다른 것은 바로 이렇듯 명문가의 후손이나 일반사람들이 살고 있는 여염집이란 점이다.
강가로 나와 둑길을 걸어 나루터로 향한다. 나루터에 빈배만 있고 사공이 없다. 강 건너 높다란 언덕 같은 것이 부용대인데,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한참을 기다려 사공이 왔는데 이번에는 손님이 더 와야 배를 띄운다고 한다. 잠시후 구세주처럼 한 가족이 온다. 강 건너까지 거리는 멀지 않지만 물살이 제법 세고, 노 하나로 바닥을 밀며 배를 조타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한번 배를 띄울 때 좀더 많은 사람을 태워야 하는 이유다. 나룻배는 15인승.
말하자면 옛 별장일 것이다. 유성용이 세웠다는 옥연정사를 지나 64m 높이의 부용대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데 숨이 턱까지 찬다. 하지만 금새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맛본다. 발아래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이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것이 보여 왜 물돌이동, 하회(河回)라고 하는지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운 법이다.
사람들은 하회에 와서 대부분 마을만 휘 둘러보고 가는 모양이다. 부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부용대에 오르기를, 그래서 화회마을을 본다면 남다른 기억을 안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시간대가 맞아 병산서원 가는 버스를 타고 간다. 오후 3시 30분 무렵인데 막차이므로 돌아나올 때는 차편이 없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아무튼 좁은 비포장길을 터덜터덜 달려 병산서원에 들어간다.
옛친구를 만나듯 병산서원은 그렇게 늘 그 자리에서 반겨준다. 여름에만 와서 그런가 붉은 꽃밭을 이루는 배롱나무들도 늘 그렇게 꽃을 피우고 있는 것만 같다. 우선 만대루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마치 꼭 그래야 할 것처럼 병풍처럼 펼쳐진 앞 병산과 그 아래 흐르는 강을 바라본다.
서원은 아담한 규모다. 입교당 뒤로 돌아가 보면 수백 년은 됨직한 오래되고 커다란 배롱나무가 잎을 떨구고 있는데 바닥에 붉게 물든 꽃잎들이 너무 선연해 가슴이 아릴 정도다. 담장 기와 위에 떨어진 꽃잎들은 아무도 그려내지 못할 그림을 만든다. 무더운 여름의 한복판에서 마치 늦가을 애수를 맛보는 순간이다.
…내 생전에, 아마 한 生을 다 지불해도
입교당 뒤편 키 큰 배롱나무가 될 수 없겠지만
나는 마냥 가슴이 저리고
한번은, 단 한순간만은 세상도 버리고 싶어졌다
황규관 시 - ‘병산서원 배롱나무’ 중에서

만휴정, 어느 숲속 헤매다 선경에 들어선 듯 만나다
돌아나오는 길, 큰길까지 2km 남짓 되는 거리를 택시를 부를까 하다 그냥 걷기로 한다. 얼마쯤 걸었을까 지나는 승용차 한 대가 태워주겠다 한다. 운이 좋았는지 차주인은 문화유산해설가다. 안동시내로 가는 길에 봉정사까지 안내해주겠다 한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봉정사를 보러 올라간다.
천등산에 자리한 봉정사는 종이 봉황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해서 머무를 정자를 따 봉정이라 이름 붙였다. 봉정사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심포 양식의 목조건물인 극락전으로 이름나 있는데 보수공사를 해 다소 밋밋한 모습이다. 그 아쉬움은 고풍스런 대웅전 단청을 보고 충분히 달랠 만 하다. 법당 안에는 커다란 종이 봉황이 걸려 있다.

바쁜 마음에 호젓한 숲길을 뛰다시피 걷고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했다는 부속암자 영산암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또 다시 오라는 여운으로 알고 발걸음을 뒤로한다. 젊은 스님의 청아한 저녁예불소리가 아득히 멀어져간다.
다음 날 지인을 만나 만휴정이란 곳을 찾아간다. 어떤 곳이냐고 묻자 그냥 알려 하지 말고 가서 보란다. 영천 가는 35번 국도를 타고 길안을 지나 만휴정 가는 길, 산과 들의 평화로운 풍경 위로 그림 같은 구름이 흘러간다. 안동땅이 꽤 넓다는 느낌인데, 인구 18만 명에 면적은 자그마치 서울의 2.5배에 달한다고 한다. 안동지역의 90% 정도가 산이며 들, 강 따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지만 한 사람이 차지하는 자연의 면적도 그만큼 넓다는 얘기.
국도를 따라 흐르는 길안천에서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 어른들의 모습이 마치 70~80년대의 풍경 같다. 특히 그늘이 지는 다리 아래는 자리경쟁이 치열하다. 그만큼 길안천 물이 맑고 깨끗해 여름철 인기 있는 피서지로 주변 일대에서 이름나 있다.
묵계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만휴정, 왼쪽으로 묵계서원을 알리는 작은 푯말이 보인다. 근래에 포장된 조그만 숲길을 따라 얼마간 걸어 오르자 오른쪽 숲속에서 낙숫물 소리가 들려온다. 나뭇가지를 헤집고 보니 시원한 폭포가 보이고 그 정자 하나가 걸려 있으니 바로 만휴정이다. 어느 숲속을 헤매다 선경에 들어선 기분이 이럴까.
돌 위에 흙담을 덮은 담쟁이 넝쿨이 무성하다. 길다란 다리는 근래에 놓은 듯한데 통나무를 이용해 그리 나쁘지 않다. 다리 아래쪽 위로 조그만 소가 있고 물뱀 하나가 첨벙 스며든다. 그만큼 사람 발길이 드문 곳이다. 사실 정자 자체의 건물보다 어떻게 이런 곳에 정자를 세웠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공간배치가 절묘하다.
길 건너편 묵계서원은 만휴정을 세운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1431∼1517) 선생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덕분에 한적하고 뒤편 소나무 숲과 어울려 정취가 좋다.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 안동시내로 향한다. 안동댐 안쪽의 민속촌이며 임청각과 신세동 7층석탑 등지를 스치듯 지나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1박 2일의 짧은 여정을 접어야 할 시간. 안동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 일주일은 잡아야 한다고 말한 지인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려진 곳보다 알려지지 않은 곳이 더 많은 땅이 동쪽(東)의 편안(安)한 고장 안동이라는 것을 재발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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