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철도공원과 태안사 섬진강 다라 무더위를 잊는 여정
2004-07-14  |   5,880 읽음
전남 곡성은이웃 남원과 구례의 유명세에 가린 조용한 마을이다. 섬진강이 흐르고 지리산이 가까이 있지만 타지 손님을 맞는 것은 대개 구례의 몫이었다. 그런데 요즘 곡성에 여행객이 넘쳐난다. 주말마다 수천 명의 손님이 이 작은 마을을 찾는다.
‘곡성의 재발견’은 매스미디어의 힘이 컸다. 옛 곡성역사를 이용해 꾸민 철도공원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이 이루어졌다. 철도공원의 레일 위를 달리는 자전거와 섬진강변을 느긋하게 오가는 한 량짜리 기차도 신문 방송을 많이 탔다.
초록빛 풍성한 여름인데, 곡성의 매력은 이것뿐일까. 한여름 섬진강 풍경에 기대를 남겨두고 곡성으로 떠난다.

‘태극기 휘날리며’ 속 한 장면, 철도공원
전남의 산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막아서고 비켜선다. 산이 흐르다 고인 듯한 곳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있다. 곡성의 이미지도 그렇게 오붓하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면 사방 깊은 산이 두른 가운데 의외로 넓은 길이 뻗어 있고, 처음 눈에 들어오는 관광표지판이 도림사다.
동악산 자락에 들어선 도림사는 신라시대 때 세워진 고찰이다. 보광전이며 응진당, 지장전 등 건물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고 걸어 올라가는 길이 아름답다. 주변 숲이 깊어 음습하면서 찬 공기도 인상적이다.
진입로 옆 계곡은 일대에서 소문난 피서지. 바위를 통째로 깔고 조각칼로 툭툭 다듬어 쳐낸 것 같은 하얀 암반의 연속이다. 바위에는 선조들이 들렀다가 새겨 놓은 글씨들이 남아 있다. 무슨 정성으로 새긴 낙서인지 알 길이 없는 후손은 그저 무심하게 드러누워 찬 계곡에 발을 담근다.
읍내를 살짝 지나면 회색으로 예스럽게 단장해 놓은 구 곡성역이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았던 풍경 그대로 철도공원을 꾸몄다. 역사 안쪽에는 강변을 따라 길게 철로가 뻗어 있고 미니기차 한 량이 조촐하게 서 있다. 다른 철로에는 여럿이 탈 수 있는 자전거가 레일 위에 바퀴를 걸치고 쉬고 있다. 늘씬늘씬 키 큰 나무들이 벽을 둘러 풍경이 시원하다.
미니기차는 곡성역 철도공원을 출발해 침곡소공원, 송정 심청테마마을 입구, 가정간이역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9km 구간 왕복에 시속 30km 이하로 움직여 1시간 10분쯤 걸린다. 거북이 등에 올라 유람하듯 색다른 체험의 시간이다. 기사 조순옥(59) 씨는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 아침 9시부터 선착순으로 탑승권을 나눠주는데, 금새 하루분이 동이 난다”고 말한다. 기차는 10월까지 토, 일요일에만 하루 4회 운행한다. 탑승은 무료다. 내년 봄에는 미니기차대신 진짜 증기기관차(150인승)가 이 철로 위를 달릴 예정이다.
레일 자전거도 보기보다 재미있다. 앞으로, 혹은 뒤로 갈 수 있고 사방이 트여 있어 시원하다. 페달을 밟으며 빠르게 지나는 발 밑의 레일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묘하다.
철도공원 바로 옆으로 17번 국도가 나란히 지난다. 17번 국도는 섬진강과도 함께 달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지만, 매화며 벚꽃 날릴 때의 섬진강변은 곳곳에 부비트랩이 깔린 전선 같다. 차들로 꽉 막혀 즐거움보다 피로를 안기 십상이다. 지독하게 운이 나쁠 때의 얘기이긴 하지만, 눈은 화사해도 콧속으로는 독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 든다.
유명세가 지나쳐 시름이 되는 봄날보다 여름 풍경은 한결 여유 있다. 텅 빈 길을 달리다보면 근시안으로 바라본 세상처럼 강물과 나무와 모래밭의 경계가 순하게 풀어지고 마음은 한여름 초록빛으로 눅눅해진다. 강의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들은 이름도 멋스럽다.
두가세월교 옆에 차를 세우고 약간은 마른 듯한 섬진강을 바라본다. 섬진강이 부르는 노래와 강변 옆 원두막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간간이 박자를 맞춘다. 세월 가는 게 참 좋다.

태안사, 깊은 산속에 들어앉은 선경
섬진강은 약간 거친 모래와 자갈이 너른 터를 이룬 곳이 많다. 특히 압록은 보성강과 섬진강이 몸을 섞는 지점이어서 강변의 규모만 3만 평에 이른다. 이곳에서 섬진강은 구례쪽으로 달려가고, 돌아선 보성강을 따라 가다보면 동리산 기슭에 태안사가 있다.
태안사는 차로도 한참 올라가야 할 만큼 깊은 산 속에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화엄사의 말사로 신라 경덕왕 1년(742)에 창건되어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쳤다. 6·25 때 대웅전 등 15채의 건물이 불탔지만 능파각, 일주문 등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계곡 위에 천연덕스럽게 올라앉아 다리와 정자 역할을 하는 능파각이 눈길을 끈다.

능파각을 건너 오솔길을 잠시 오르면 갑자기 연못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다. 연못 주위는 꽃과 잔디로 꾸며져 있고 연못 한 가운데 삼층석탑이 서 있다. 20여 년 전 연못을 꾸미면서 광자대사 부도 옆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석탑 앞으로는 작은 다리가 놓여 있어 연못 한 가운데로 갈 수 있다. 물밑에는 커다란 잉어들이 어슬렁거리고, 계절을 의심할 만큼 화사하게 핀 꽃들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깊은 산속에서 이렇게 잘 손질해 놓은 연못을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명찰에 경승’이라고, 진입로며 가람의 배치도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답다. 1925년 태안사를 찾은 육당 최남선은 “고초(古初)의 신역(神域)과 같다”고 극찬했다. 태안사에는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 바라(보물 제956호) 등 귀한 문화재도 많다.
곡성의 다른 풍경을 만날 때마다 좀 전의 감흥이 조금씩 바랜다. 도림사에서 섬진강과 보성강을 거쳐 태안사에 이르는 여정은 갈수록 시원하다. 무더위를 잊게 만드는 지혜와 너그러움이 그 길에 있다.
취재 협조: 한불모터스(푸조 206CC) ☎(02)545-0606, www.epeugeot.co.kr

숙박·먹을거리
곡성에서 구례쪽으로 나가면 잠자리를 구하기가 쉽다. 화엄사 입구에 숙박시설이 많고 구례 읍내에서 잠자리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워낙 관광객이 많이 찾아드는 곳이어서 값싸고 깨끗한 모텔들이 몰려 있다. 주인과 흥정을 잘 하면 인터넷 시설이 되어 있는 방도 3만5천∼4만5천 원에 잡을 수 있다.
화엄사 입구의 ‘지리산 대통밥’은 전라남도가 ‘남도음식명가’로 추천한 집이다. 죽염으로 간을 하고 잣, 참기름, 들기름 등 자연 조미료로 맛을 낸 20여 가지 반찬과 대나무에 넣어 지은 대통밥 특식(1만5천 원)이 인기다. 후식으로 따끈한 대나무차가 준비된다. ☎(061)783-0998.

드라이브 메모
호남고속도로 곡성 나들목에서 빠져 순천방면 27번 국도로 잠시 접어들었다가 곡성, 남원 방면 60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5km쯤 가면 왼쪽으로 도림사 오르는 길이 나오고 1.8km 올라가면 도림사다. 계속해서 60번 지방도를 달리다 읍내리 큰 사거리에서 구례쪽으로 우회전하면 곡성역 바로 옆으로 옛 곡성역, 철도공원이 나온다. 이곳에서 구례까지 이어지는 17번 국도는 내내 섬진강과 붙어 달린다. 곡성읍내에서 14km쯤 달리면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압록 유원지이고, 압록역을 지나자마자 우회전하면 보성강과 나란한 18번 국도다. 5km쯤 달리다 840번 지방도로 좌회전해 표지판을 따라가면 태안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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