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瑞山) 그 미소 아니었다면 울어버렸을
2004-06-10  |   4,397 읽음
오월의 햇살을품은 신록은 정말 눈부셨다. 봄바다에 부서지는 은비늘이 마치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뜨거운 눈부심이라면 숲의 나뭇잎 등위로 반짝반짝 소곤대는 햇살은 아련한 눈부심이다. 숲은 여름이 되면 더 짙어지지만 신록의 그 신선한 빛깔은 잃어버리니 참으로 자연이란 한순간도 쉬이 놓칠 수 없는 법. 어디서나 해가 뜨고 지듯 신록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서산 마애삼존불을 만나고 내려가는 숲길의 그 반짝이는 신록은 오직 하나뿐인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보원사터를 거닐며 상념에 젖다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린 이후 서울에서 충남 서산은 정말 가까운 거리가 되었다. 70년대 포장이 되지 않았을 때는 여섯 시간, 80년대 이후 포장이 되었을 때는 3시간 남짓 걸리던 것이 이제는 그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서초구 남부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버스가 들어선 마을 풍경 속으로 이곳이 운산면임을 알려주는 상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류장에 차가 멈춰 서는 순간 여기다 하는 생각에 서둘러 내린다. 판단은 옳았다. 서산버스공용터미널까지 갔다가는 예까지 도로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조그만 가게에 들어가 마애삼존불이며 개심사 등지로 가는 교통편을 물었다. 대략의 행선지를 말하자 주인장께서 “오늘 하루에 다 돌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레 겁을 준다. 아무튼 버스는 금방 와 차에 오른다. 서산이라는 이름에 상서로울 ‘서’자를 써서인가 시작부터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다. 버스는 타고 내리는 이 없어도 코스를 거르지 않고 급할 것 없이 달린다. 꽤 큰 저수지가 나타나고 돌고 돌아 좁다란 비포장길에 들어선다. 그런데 버스가 가는 방향을 보니 마애삼존불을 지나 보원사터까지 갈 모양이다. 운전기사에게 물으니 탑 같은 게 서 있는 그곳 같다며 주변을 살피더니 내릴 곳을 일러준다.
제법 걸을 것을 각오하고 왔는데 코앞에서 내리게 되었으니 횡재가 따로 없다. 바로 보원사터에 온 것이다. 버스는 곧장 되돌아 가버리고 순간 깊은 숲속의 정적에 휩싸이는데, 어디선가 새소리만 서로 다른 울음으로 메아리친다. 한때 번성했던 수많은 건물들과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런저런 상념에 발걸음을 옮긴다. 오래된 고찰도 좋지만 빈 절터는 상상력의 공간으로 매력이 있다.
초록 무성한 드넓은 터에 당간지주가 눈에 들어오고 맑은 시냇물 징검다리를 건너면 오층석탑이 반긴다. 비록 지금은 허물어져버린 빈 절터지만 그 중심에서 위엄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단아하고 품위 있는 자태, 석탑 위 녹슨 철제 찰주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원형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 기단을 보면 아수라상 등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는데 그 조각이 무척 사실적이다. 그 아래 기단을 보면 칸마다 하나씩 모두 12마리의 사자상이 새겨져 탑을 받치고 있다.
그 뒤로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탑이 서 있다. 보원사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오층석탑의 양식이나 고려 초기의 국사였던 법인국사 부도를 통해 고려시대의 큰절로 짐작하고 있음이다. 그런데 부도탑은 보수해체수리 공사중이란 안내판과 함께 철제구조물이 흉물스럽게 감싸고 있고 주변에 공사자재가 어지러이 널려져 있어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 보수공사를 하더라도 잘 정돈해서 할 수는 없는지 모를 일이다. 그 한쪽 옆으로 흙담 갈라진 폐가 하나가 빈 절터의 쓸쓸함을 더해주는 듯하다.

전각에 갇힌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
보원사터에서 걸어 내려와 마애삼존불을 만난다. 초입에서 돌계단을 가쁘게 올라가면 조그만 평지 암자가 나오는데 마애삼존불 보존관리소이다. 산길로 난 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돌부처 하나 보이는데 비로자나불이다. 앉아서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순박하고 친근하다. 옆에는 연꽃모양의 석등 받침대가 있다. 무심코 그냥 지나치기 쉽겠다.
다시 돌계단을 조금 더 올라가니 기와단청 암자가 나온다. 무얼까 하는 생각에 들여다보니 마애삼존불이 그 안에 계신다. 뭔가에 한방 맞은 듯 그야말로 말문이 막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삼존불이 웃는 듯 우시는 듯 그 표정을 종잡을 수 없다. 이런 황망함이라니…….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어디에도 전각에 갇혀 있는 모습은 없었기에 예상치 못한 충격이 더 컸다. 아무래도 그냥 가기 아쉬워 관리사무실에 도움을 청하자 구자도 씨가 따라와 설명을 해준다. 그에 따르면 전각에 보존하는 문제에 대해 학계의 논란이 있었지만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물론 자연광으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훼손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지요. 요즘에는 아이들이 만지는 것을 어른들이 나무라지를 않아요. 얼마전에 한 여대생이 전각 안으로 신발 신고 들어가길래 뭐라 했더니 ‘왜 써놓지 않았냐’고 되레 큰소리 치더군요.”
참 여러 가지로 할 말을 잊게 만드는데 구자도 씨가 긴 장대에 갓을 씌운 전구를 켜 불상을 비쳐준다. 불빛을 비추자 놀랍게도 생생한 표정이 살아난다. 마치 “다 괜찮다”는 듯 그 미소가 마음을 녹인다. 비추는 각도에 따라 신비로운 표정이 달라지는데 전각이 없는 상태라면 해가 떠올라 기울기까지 그 표정변화를 자연스레 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부처는 법화경에 따라 가운데 본존이 석가여래로 현재를 나타내고, 왼쪽이 관음으로 과거, 오른쪽이 미륵으로 미래를 나타낸다고 한다. 가장 풍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래의 미소는 벙긋벙긋 절로 따라서 미소짓게 하고, 반가사유의 상을 하고 있는 미륵은 옆에서 보아야 그 미소가 돋보이는데 귀엽게 살짝 웃는 모습이다.
구자도 씨는 친절하게도 태양이 떠오를 때부터 지기까지 해의 움직임을 따라 등잔을 비쳐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백제의 미소’를 제대로 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섰을 것이다. 큰길가로 향하는 조붓한 들길에서 돌무더기 위에 선 미륵불 하나가 길손을 배웅한다.

아름다운 정원 개심사에서 붉은 꽃잎을 밟고
개심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힘들게 가야 보람도 있는 법. 마침내 눈앞에 나타난 전경이 반갑기 그지없는데 붉은 꽃잎이 발에 밟힌다. 왕벚꽃나무들이 떨군 꽃잎들이다. 이제 정녕 봄이 가는군. 그런데 이렇게 예쁜 절집을 본 적이 있던가. 옆으로 에돌면서 명부전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서니 하! 짧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안양루 마루에 앉으면 정면으로 500년도 더 오래 전에 지은 대웅전이고, 왼쪽으로 심검당, 오른쪽에 무량수전이 에워싼 작은 마당에는 오직 작은 탑 하나뿐인데 세상 가장 아름다운 정원처럼 느껴진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 보니 마당에 지주 모양의 가느다란 구조물이 보인다. 바로 괘불화(야외에 거는 큰 부처 그림)를 걸기 위한 것으로 조선 영조 때 만든 괘불화가 이곳에 전해진다고 한다. 부처님오신날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날 그것을 내건다 한다. 한편 심검당 부엌문의 휘어진 나무가 눈길을 끈다. 크게 휘어진 나무 그대로를 사용해 건물을 지은 대담함과 천연덕스러움이 요즘의 의식으로 감히 따라갈 바 아니라는 생각이다.
마침 리포트 하러 나온 학생들의 낡은 세피아를 얻어 타고 해미읍성까지 단숨에 나갔다. 예전에 이곳을 지날 때 망루에 사람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기억인데 이번에 직접 올라가 보기로 한다. 남문인 진남루를 비롯한 성벽은 오랜 풍상에도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고 수원 화성의 규모에는 못 미쳐도 성곽을 따라 한바퀴 산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너무 넓어 휑한 느낌을 주는 성안 한쪽에는 마을 노인잔치를 위한 준비로 부산하다. 망루에서 보는 마을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성안으로 유모차를 밀고 나온 새댁이며 산책 나온 가족들, 성벽 아래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저녁 노을에 살며시 묻혀져 간다.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