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자연과 온천의 천국 - 일본 호쿠리쿠
2008-12-22  |   8,461 읽음
금융대란이 지구촌을 강타하더니 후폭풍으로 실물경제의 조락이 저물어 가는 한해를 한숨으로 뒤덮는다. 가장 앞장서서 쪼그라드는 것이 자동차업계다. 미국 자동차 3사는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섰다. 그 잘나가던 토요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력구조조정에 감산체제로 들어갔다. 허나, 이 불황의 늪 속에서 튀는 차도 있다. 토요타 비츠(VITZ). 하역장에 자동차가 가을 들판의 볏단처럼 늘어서 있는 판에 비츠는 주문하고 서너 달을 기다려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황이 이 차를 불티나게 만들었다. 배기량 1.3L와 1.5L의 비츠는 소형차 범주에 들어가지만 내부 공간이 중형차 못지않게 넓고 주행성능이 뛰어나다. 또한 세련된 디자인에 공식 연비 15km/L의 뛰어난 경제성을 자랑한다.

비츠를 타고 일본 만추의 호쿠리쿠(北陸) 지역을 돌아다닐 기회를 잡았다. 일본 혼슈(本州)의 가운데 북쪽, 우리 동해에 면한 후쿠이, 이시카와, 토야마 이렇게 세 현을 호쿠리쿠 지방이라 한다. 오사카와 동경이 삼각형의 밑변이라면 호쿠리쿠(北陸)는 꼭짓점이 된다. 호쿠리쿠는 혼슈의 가운데, 오사카와 동경에서도 가까운데 일본에서는 조용히 숨어 있는 은둔의 고장으로 여긴다.

드높은 햐쿠산(白山) 줄기가 이 지역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호쿠리쿠 지방이 질 좋은 쌀로 유명해진 것도 아무리 가뭄이 와도 햐쿠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논을 마르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햐쿠산은 우리의 백두산에 불과 42m 낮은 일본의 국립공원으로 일본의 3대 명산 중 하나다. 6월까지 정수리에 흰 눈을 덮어쓰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어 호쿠리쿠 지방 사람들은 햐쿠산을 성산(聖山)으로 여긴다.

33km의 장엄한 길 ‘스파린도’
햐쿠산 드라이브의 백미는 북사면을 타고 ‘햐쿠산 스파린도’(白山 SPA林道)를 넘는 것이다. 10월 하순, 평지에서는 겨우 단풍이 들 기미가 보일락 말락 하는데 한 줄기 아스팔트가 꼬불꼬불 이어진 햐쿠산 스파린도는 불꽃같은 단풍 속을 뚫고 간다. ‘린도’ 앞에 ‘스파’를 붙인 이유는 이 도로 양쪽 모두가 온천지역이기 때문이다. 1967년에 착공해 완공까지 10년이 걸린 총 길이 33.3km의 이 도로는 서쪽 이시카와(石川) 현에서 동쪽 효고(兵庫) 현까지 2차선으로 이어졌다. 33.3km의 도로를 닦는 데 장장 10년이란 세월이 소요되었다는 것은 도로건설 입지가 얼마나 험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계곡의 허공을 건너는 다리, 천 길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이어진 도로, 바위를 관통하는 터널……. 햐쿠산 스파린도를 타고 오르면 오금이 저려온다. 스파린도는 매년 6월 5일에 통행을 개시하고 11월 10일이면 도로를 폐쇄한다. 일 년에 다섯 달 밖에 통행할 수 없는 셈이다. 통행요금표를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일반 승용차는 편도 4만5,000원, 버스는 편도 요금이 무려 30만 원이다.

10월 하순의 휴일, 햐쿠산의 불타는 단풍을 보려는 자동차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서고 가기를 반복한다. 올라갈수록 활엽수보다는 침엽수가 많아진다. 해발 1,500m를 넘어서면 ‘살아 천년 죽어 만년’ 이라는 나무의 왕, 주목(朱木)이 수려한 자태를 뽐내며 바위 위에 고고히 앉아 있다. 스파린도의 최고 지점은 이시카와 현 경계를 넘자마자 효고 현이 되는 1,736m의 삼방암악(三方岩岳) 전망대다.

기온이 떨어져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버너의 불꽃을 올리고 맥주를 마시며 아득히 펼쳐진 햐쿠산의 스카이라인을 내려다본다. 효고 현 조그만 마을 백천향(白川鄕)까지 내려왔을 땐 오후 3시가 가까워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렸다. 일본 친구 미노야 상이 앞장서 들어간, 상이 네 개뿐인 조그만 식당 아라이에서 주문한 곤들매기 소금구이는 입맛에 적중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뼈 하나 발라내지 않고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우자 미노야 상이 점심이 늦어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린다.

햐쿠산 서쪽은 후쿠이 현이 된다. 후쿠이 현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은 천년고찰 에이헤이지(永平寺)다. 심산유곡에 파묻힌 조동종 대본산(曹洞宗大本山), 에이헤이지 경내에 발을 들여놓으면 먼저 수령 600년이 넘는 아름드리 삼나무가 쭉쭉 뻗어 올라 하늘을 가려, 바닥엔 흙이고 바위고 연초록 벨벳을 덮어놓은 듯 이끼로 덮여 있다.

750년 전 도겐선사에 의해 개창된 출가참선 도장인 에이헤이지 절간 속으로 따라 들어가면 가도 가도 끝없는 엄청난 규모에 놀라고 법당, 불전, 승당, 산문, 고원 등 발길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아름다움에 또다시 놀란다. 에이헤이지에서 나와 364번 지방도로를 타고 산 따라 물 따라 내려가면 이치조다니(一乘谷朝倉氏) 유적이 나온다.

해발 473m의 일승성산 정상부근,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명당자리에 후쿠이의 호족, 이치조다니 일가가 성(城)을 지키며 큰 세력을 떨치다 1573년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패한 영화의 성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덩그러니 문만 남아 있고 성터엔 주춧돌만 뒹군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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