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의 긴 여로를 함께 한 ‘자린조르가’ 노영대<문화재전문위원, 한국자연정보연구원장>
2004-06-08  |   3,446 읽음
나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오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국내의 오지도 대상이지만, 나는 지난 6년 동안 주로 몽골의 오지에서 작업을 해왔다.
몽골과의 인연은 독수리가 맺어줬다. 7년 전, 우리나라를 찾아 겨울나기를 하던 독수리 30여 마리가 얼어붙은 임진강 위에서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문화재전문위원(천연기념물분과)인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천연기념물 제243호인 독수리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석굴암이나 난중일기와 같은 지위를 가진 법정보호종이기 때문이다. 다음해 봄, 나는 이들의 번식지를 찾아 번식생태와 이동경로를 밝히기로 하고 모든 과정을 2년 정도의 일정으로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했다.
제작에 앞서 가장 먼저 차를 물색했다. 보통 차가 아닌 특수한 차를 찾아야 했다.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8배쯤 되는 몽골의 광활한 영토를 누벼야 하기 때문이다. 오가는 길이 멀기도 하려니와 험하기 짝이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을 며칠씩 지속적으로 달려야 하고 백두산 높이와 맞먹는 험한 산들을 넘어야 한다. 포장길은 수도 주변의 일정구간뿐이다. 대부분의 길은 울퉁불퉁, 안전모를 쓰고 달려야 할 정도. 늪지대와 사막, 그리고 바위투성이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맨머리로 있으면 머리가 볶아질 정도의 혹서와 디젤이 얼어붙는 영하 40도의 혹한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6명 정도가 숙식을 할 수 있고 2톤 이상의 장비를 적재할 수 있는 덩치가 필요하다. 단, 차 구입비는 2천만 원 범위에서. 우선 국내에서 물색하려 했으나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만한 ‘물건’은 없었다. 결국 현지에서 구하기로 했다.
탐문 끝에 옛 소련군 병력수송용 트럭인 자린조르가가 바로 우리가 찾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았다. 러시아까지 가서 이 차를 구해왔다. 듬직했다. 정비가 비교적 쉬운 완전기계식의 6륜구동차로, 바퀴에 바람이 빠지면 공기를 자동으로 주입해 주는 에어 컴프레서가 달려 있다. 먹성도 대단하다. 휘발유 1X 로 0.8km(험준한 길은 0.3km)를 달린다. 다행히 몽골은 휘발유 값이 한국의 디젤 값보다 쌌다.
박스형 적재함이 견고한 이 녀석의 외부와 내부를 성형(?)했다. 165X 짜리 연료탱크 2개가 달려 있는데 같은 크기의 탱크 2개를 더 달았다. 바닥에 10개의 칸막이를 만들어 그 위에 마루를 깔았다. 마루 밑 칸막이는 식량, 카메라 장비, 의약품, 의류 등 각종 물품의 창고로 이용했다. 전기난로와 장작난로, 모니터, 80X 들이 식수탱크도 달았다. 옥상에는 7∼8인용 보트를 얹을 수 있도록 캐리어를 만들어 달았다. 자린조르가는 우리의 편리한 발과 안전한 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는 이 자린조르가 덕분에 지난 6년 동안 2편의 자연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올해도 재두루미의 이동경로를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이동 중 이곳저곳에 조난을 당한 몽골 차들을 구조하는 역할도 덤으로 해낼 것이 분명하다. “고맙다. 자린조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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