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배워가며 타는 즐거움 곽풍영<사진작가>
2004-05-11  |   7,450 읽음
앗! 기다리던 로버 미니 부품이 멀리 영국에서 도착했다. 주문한 지 1주일만에 도착한 이번 부품은 반짝거리는 실내외 크롬 파트다. 이제 미니의 모습을 확 바꿔줄 차례다.
“이 차 몇 년형이에요?” “얼마짜리예요?” “몇 cc짜리죠?” “밟으면 몇 킬로까지 나가요?”
아파트 주차장에서 튜닝 파트를 이리 저리 대보며 궁리를 하고 있다보면, 물어보는 사람들의 질문은 다 똑같다. 하나하나 답을 하다보면 언제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대목이 있다.
“에어컨 있어요?” “에어컨 없는데요.”
바로 이말 한마디에 모두들 휙 뒤돌아서 가버린다. 가면서 내뱉는 말.
“아니, 에어컨 없이 어떻게 여름을 난다는 거야. 기가 막히는군.”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내가 탐닉한 클래식한 앤틱 자동차들은 모두 하나같이 에어컨이 없지 않았던가. 여름에 더우면 아예 밖에 나가지 않았고, 비가 올 듯 하늘이 꾸물거리면 하던 일 멈추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달려오기 바쁘지 않았던가…….
내가 클래식한 차에 푹 빠져든 것은 호주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다. 호주에서 1억 원이 넘는 ‘부포리’라는 수제차를 렌트해 여행 내내 차만 몰고 다녔다. 부포리는 호주에서도 흔치 않은 희귀차로, 여행 중에 만난 호주인들조차 자신의 나라에서 이런 차가 생산되느냐고 되물었다. 신혼여행 기간 내내 폭스바겐 비틀이나 로버 미니, 시트로앵 2CV, 포르쉐 911 등이 세워져 있으면 차를 세우고 그 옆에 서서 기념촬영하기에 바빴다.
호주에서 앤틱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호주에서 보았던 앤틱카 한 대를 산 다음 고치면서 타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IMF 때 아끼던 73년형 폭스바겐 비틀을 반값에 팔 수밖에 없었던 기억은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값을 받지 못하고 팔거나 차값보다 많은 비용을 들여 마련했던 부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오래된 차를 정비하면서 그 많은 시간을 차 밑에서 보낸 기억이 너무나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앤틱카에 관한 꿈은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갖게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올드 포르쉐는 폭스바겐 비틀과 메커니즘이 비슷해 안타깝게 보낸 비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고, 그때 익힌 정비실력으로 올드 포르쉐를 관리하는 일도 쉬웠다. 사실 550 스파이더는 매력 넘치는 스타일을 지녔지만, 차고가 낮아 엉성한 도로를 달릴 때는 불안하고 톱이 없어 먼지와 매연을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 차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주차장에서 닦고 조이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재미있게 탄 올드카는 1984년형 K-111 군용 지프였다. 원초적인 메커니즘과 뛰어난 개방감, 그리고 탁월한 오프로드 성능으로 인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어디를 다니더라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리지널 군용 지프인 K-111은 이미 오래 전에 단종 되었지만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으로 인해 전방에서는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고 한다. 군용차라 부품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서울 종로에 나가면 원하는 부품은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더군다나 정비도 간단해 K-111은 내가 몰았던 가장 경제적인 올드카인 동시에 지금도 가슴속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차다.
지금 타는 차는 96년식 로버 미니다. 미니 역시 해외에 부품을 주문하고 정비책자를 보면서 메커니즘을 익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차를 타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즐거움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 같다. 아니 자동차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에어컨을 기본으로 달고 나오는 새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로버 미니를 단지 에어컨이 없는 낡은 차로만 보는 이들이 올드카를 닦고 조이며 관리할 때 느끼는 행복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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