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속에서 인생을 배우다 김지연<방송작가>
2004-05-11  |   5,886 읽음
학창시절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엄마가 내게 항상 하시는 말이 있었다. 운전을 하면 인생을 배운다고……. 어렸을 땐 엄마의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운전면허를 따고 매일 운전을 하게 되면서 나는 그 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생사를 어찌 운전과 비교할 수 있겠냐마는 운전을 하는 속에서 여러 가지 삶의 이치를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처음 자동차를 운전한 것은 대학시절. 도로연수도 받지 않고 혼자서 대담하게 서울시내를 돌았다. 가슴은 두근두근 뛰고 천천히 가면 뒤에서 빵빵거리지나 않을까, 이 교차로에서는 어떤 신호등을 봐야하는 걸까, 내가 지금 중앙선을 밟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핸들을 잡은 손은 떨리고 수시로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때 내 옆을 바짝 쫓아오던 버스가 있었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나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초보였던 나는 영문도 모르고 계속 달리기만 했다. 사실 나에게 욕을 하는 것 같아 그 아저씨를 외면하고 싶었다.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시내 한복판에서 당장 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왔는데 그 버스기사 아저씨는 계속 내 차 옆에 붙어서 나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참 끈질기기도 하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뀌고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난 그 기사 아저씨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아가씨 큰 일 나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내게 아저씨는 신호가 끝나 뒤차가 계속 빵빵거리며 재촉을 하는데도 “차의 보네트가 열려있으니 내려서 닫고 가라, 쌩쌩 달리다 보면 보네트가 갑자기 올라와서 큰일난다”며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 전에 기름을 넣을 때 어떤 것이 주유구인지 몰라 이것저것 누르다 보네트가 열렸던 모양이다. 차를 옆으로 세우고 조금 들떠 있는 보네트를 닫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그 버스기사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내게 좋은 의도로 다가오는 사람에게도 먼저 경계심을 갖고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이야기인지 정작 들어보지는 않고 표면적인 행동만을 보고 고개 돌리진 않는지, 나는 그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 버스기사 아저씨는 그 순간 내가 안전하게 운전하도록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오늘도 나는 밀리는 차선에서 인생을 배운다. 조금 더 빨리 가보겠다고 갓길에 끼어 들다가 딱지를 떼이는 많은 차를 보며 조금 먼저 가는 것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조금 먼저 가기 위해 다른 차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일이야말로 갖은 방법으로 남을 누르고 자신이 먼저 성공하겠다는 우리네 인생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두 번 끼어 드는 일은 어찌 보면 요령일 수 있고 운전을 잘 한다는 자랑일 수도 있지만 항상 그렇게 가다보면 언젠가는 꼭 딱지를 떼이게 되어 있다. 과속이든 끼어들기든 어떤 이유로든 말이다.
핸들을 잡는 순간, 나는 도로 위의 지도가 아니라 또 다른 인생의 지도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도착하느냐도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이다.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