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자동차 편력이 남긴 추억 최용남<치과의사>
2004-04-07  |   6,541 읽음
지금은 20대의 청년이 되어버린 우리 큰 아들이 옹알이를 할 무렵인 1982년 10월. 당시 18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던 3년 된 중고 포니는 그 후 20년 넘게 이어진 나의 자동차 편력기의 첫줄을 장식한 차가 되었다. 워낙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포니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내 여행의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의욕만 앞설 뿐, 운전과 차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던 나 때문에 우리 가족과 포니는 고생만 잔뜩 하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휴가를 얻어 온 가족이 지리산을 향해 출발했던 여행길이 그랬다. 하필 휴가기간이 장마철과 겹쳤던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지리산을 오르는 길은 포장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는데, 쏟아지는 비에 좁은 산길은 진흙탕으로 변해버렸다. 어쨌든 떠난 길이니 노고단은 올라야 할 것 아니냐는 생각에 오기로 차를 몰았지만, 천길 낭떠러지를 바로 옆구리에 끼고 몇번씩 휘청거리다 보니 갓난 아들내미와 아내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노고단 정복을 포기하고 중간에 차를 돌려 내려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행을 즐기는 성격은 그 이후의 자동차 생활과 차 고르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포니와 포니2를 거쳐 프라이드를 구입했을 때의 일이다. 영월 부근의 산으로 여행을 갔다오는 길에 차 바닥이 긁히는 데도 아랑곳 않고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험한 길을 빠져나와 속도를 붙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의 앞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했는데 소리는 점점 심해지고 연기까지 풀풀 나는 것이었다. 걱정은 됐지만 일단 집에는 가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몰아 집 부근의 카센터에 도착했다. 차를 둘러본 정비사는 “어떻게 차를 이렇게 몰았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오일은 바닥나 있었고 엔진은 뜨거워져 늘어붙기 직전이었다. 차 바닥이 돌에 긁히며 엔진 오일 마개가 빠져버렸고, 길 위에 엔진 오일을 쏟아내며 그 먼 거리를 달려온 것이었다. 그 이후로 몇 대의 세단을 구입했지만 나의 방랑벽을 오래 버텨내는 차는 드물었고, 결국은 SUV나 RV가 내 체질에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구입한 첫 SUV는 록스타 소프트톱 모델이었다. “여행의 낭만을 즐기려면 역시 천막차지!”라며 큰 맘 먹고 구입했지만, 벗기기는 쉬워도 씌우기는 어려운 소프트톱은 낭만보다는 괴로운 추억을 많이 안겨줬다. 네바퀴굴림차라고는 해도 차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속도도 붙지 않아 답답함도 느꼈다.
영동고속도로가 2차선이던 시절, 형님과 함께 새말에서 소사로 향하는 고갯길을 오를 때였다. 겨울이라 길이 미끄러워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대편에서 오던 차가 미끄러지며 중앙선을 넘어와 록스타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놀란 것도 잠시, 내 차를 들이받은 그 차가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황당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던 나는 불법 유턴을 해 도망가는 차를 뒤쫓았다. 그런데 내리막이라 가속이 붙을 만도 한데, 소프트톱이 찢어져라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아도 도무지 간격이 좁아지질 않았다. 결국 도망간 그 차는 잡지 못했고, 우리 형제는 미끄러운 그 언덕길을 다시 처음부터 올라야 했다.
그렇게 아픈 기억도 있었지만, 그 뒤로 구입한 SUV와 RV들은 나의 여행에 많은 즐거움을 더해줬다. 거친 운전에 빠른 속도를 즐기기는 해도 별다른 사고없이 즐거운 여행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좋은 차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SUV를 타고 있지 않지만, 몇 년 안에는 그동안 꿈꿔오던 세계여행을 온 가족과 함께 SUV를 타고 떠나고 싶다. Z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