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장’의 애마 박경희<방송작가>
2004-04-07  |   5,877 읽음
친지분들이 즐겨 부르는 어머니의 별칭은 ‘미스 장’이다. 삶에 있어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열정과 의욕을 갖고 계신다는 뜻에서 붙은 별칭이다. 칠순이 가까운 지금도 새벽이면 가이드 자격증 시험을 보신다고 일본어 테이프를 틀어 놓고 회화를 익히시고, 언제부턴가는 칠순이 다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치매 예방에 좋다시며 컴퓨터 게임 매니아가 되셨다. 그리고 일주일에 몇 번은 한평생 교단에 계시면서 국어과목과 아이들의 상담교사를 하셨던 것을 활용해 도서관으로, 지역상담소로 자원봉사를 하신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뱃살과의 전쟁’이라며 수영도 열심히 다니신다. 어머니의 하루는 젊은 내가 봐도 숨이 가쁘다. 이렇게 바쁜 어머니의 가장 든든한 친구는 자동차다.
더 늙기 전에 따신다며 정년을 몇 해 앞두고 면허를 따시더니 월급을 모아 예쁜 소형차까지 사셨다. 퇴직 후 남은 시간을 여행으로 보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신 것이다. 주변에서는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면허시험에 붙은 것도 대단한데 운전까지 직접 하냐며 “역시 미스장이야”를 연발했고 어머니는 그들의 말에 으쓱해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운전하고 다니시는 당신의 모습을 꽤나 즐기셨다.
그렇지만 자식들 맘은 어머니의 친지분들과는 영 다르다. 초보시절, 어머니가 차를 몰고 나가는 순간부터 식구들은 전화기 앞에 대기 상태였다. 하루에도 몇 건씩 날아드는 교통범칙금 스티커는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우체부조차 친한 이웃으로 만들어줄 정도였고 긴장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니시는 통에 저녁이면 늘 “아이구……” 하며 견비통을 호소해 사들인 파스가 또한 얼마인지 모른다. 더구나 주행 중 주변 자동차 흐름을 살필 여유를 채 갖추지 못한 초보인지라 여기서 쿵 저기서 쿵, 가만히 서있는 차에다가도 박치기를 하시는 통에 이제 어머니 보험료는 웬만한 젊은이의 한달 아르바이트 비용을 훨씬 능가한다. 그러니 그런 저런 모든 호소와 사건처리로 분주한 것은 자식들이다.
그렇게 보낸 3~4년. 이제 어머니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셨지만 초보시절 쿵쿵 내려앉던 딸들의 가슴인지라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신경이 곤두서고 나도 모르게 해대는 조수석 잔소리에 모녀지간이 앉은 차 안은 매번 썰렁해진다. 자식들은 “왜 돈주고 사서 고생이시냐”며 운전대 놓기를 강요하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끄떡 않으신다. 당신 차가 자식보다 낫다는 말씀으로 자식들의 기를 죽이신다. 어디든 당신이 가자는 곳이면 군말 없이 가주는 차가 효자라는 것이다. 삶이 바빠 늙은 어머니를 챙기지 못하는 딸들을 돌려서 나무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붙여진 어머니 차의 별칭은 ‘미스 장의 애마’다. 엄마가 사랑하는 물건이어서 애마고, 자식들의 애간장을 태워서 또한 애마다. 다행히 겁 많고 꼼꼼한 성격 탓에 지금껏 어머니는 큰 사고 없이 초보 딱지를 떼셨고 이젠 자식들도 바쁘게 사시는 어머니 옆에 차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자식들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이젠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제 나나 친구들이나 마흔을 넘다보니 부모님들의 연세가 대부분 칠순을 넘나든다. 그 중 우리 어머니처럼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은 부모님들이 병원을 가실 때나 어디 외출을 하실 땐 자식된 도리로 하던 일을 접고 잠시 짬을 내서 모셔오고 모셔 가는 번거로움을 겪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건강하고 아직도 독립적인 나의 어머니가 부럽다고 한다. 나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또 하나의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도한다. “우리 엄마, 미스 장! 오늘 이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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