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의 자유 권경아<문학평론가>
2004-04-07  |   5,146 읽음
기다림은 초조함이다. 약속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온 신경은 그 사람에게 향해있다. 그 사람이 올 방향을 바라보며 나타나는 모든 사람들을 살피다보면 신경은 곤두서고 눈은 곧 피로해져 잠시 멍하니 한 곳을 보며 진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기다림보다 더 초조하고 불안한 것은 약속시간에 늦는 것이다. 시간에 늦었을 때 허둥대다보면 무엇을 잊고 나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가는 도중에도 계속 불안한 마음이라 좌불안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늦는 것보다는 기다림의 초조함을 선택한다. 이것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오로지 나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약속 장소에 20~30분 정도 미리 도착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다. 시간 가늠이 가능한 전철로 인해 항상 일정하게 20~30분 정도 일찍 나가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이다. 10분전에 도착해도 되겠지만 그것도 불안한 일이다. 혹 전철이 연착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조금 늦어버리는 것이다.
30분이란 시간은 무엇을 시작하기에 조금 모자란 시간이다. 책을 펴들고 읽다가 이제 좀 집중이 되려하면 약속시간이 가까워져 그 사람이 올 방향을 힐끔거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은 차가 생기면서 조금 바뀌게 되었다.
한 2년 전쯤 동생이 차를 가져와 1년만 맡아달라고 했을 때 나는 면허를 따게 된 지 6개월도 되지 않았고 그 후로 차를 몰지도 않았던 왕초보였다. 그래도 성격이 겁이 좀 없는 편이라 바로 차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시간 가늠이 되지 않아 도무지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약속 시간을 맞춰주는 전철과 달리 도로의 사정은 일정치 않아 막히게 되면 이건 대책이 없다. 또 주차의 문제가 있었다. 일찍 도착하더라도 주차 공간을 찾는 시간도 상당한 것이다. 그래서 차를 가지고 나갈 때는 평소보다 더 일찍 나가게 되었다. 한 시간의 여유는 이렇게 해서 생기게 되었다.
한 시간의 여유는 30분의 여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자유였다. 길에 서서 언제 나타날지 모를 사람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던 초조함은 차안에서 약속시간 5분전까지 편안하고 느긋하게 책을 보기도 하고 다이어리를 꺼내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조용히 공상을 하기도 하는 여유가 된 것이다.
한 시간의 자유는 달콤한 것이었다. 일단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심리적 안정을 주었고, 그 안정감으로 인해 차안의 조그마한 공간 속에서 여유롭게 이러저러한 공상을 할 수 있었다. 사실 그 시간에는 무엇인가를 한다기보다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머리 속의 생각들을 정리하며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았다. 정신없이 지나가던 하루가 잠시 동안 멈춰버린 것 같은 그 시간은 무엇인가를 하는 시간이라기보다 무엇인가를 잊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자유에 익숙해질 무렵 갑자기 자유가 사라져버렸다. 맡겼던 차를 동생이 다시 찾아가 버린 것이다. 뚜벅이 생활로 돌아온 지금은 다시 예전처럼 분주하게 지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가끔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한 시간의 자유가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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