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녀와의 추억처럼 우인재<DVD 칼럼니스트>
2004-03-08  |   5,342 읽음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좋아하는 자동차잡지를 사기 위해 꼬박 하루를 동네 어귀 작은 서점에서 보내던 나였다. 기아 아벨라의 사진에 흥분하던 시절, 현대의 컨셉트카 HCD-Ⅰ의 디자인에 감탄사를 날리던 그때, 난 웬만한 차들의 엔진 배기량과 마력을 줄줄이 꿰며 자랑처럼 읊어댔다. 물론 그 또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 이목을 끌었던 건 최고시속이었다. ‘튜닝한 현대 스쿠프가 최고시속 220km를 기록했다’라든가, ‘TV 광고에서 현대 엘란트라가 포르쉐를 앞지른 게 진짜였다’ 따위의 소모적인 논쟁들이긴 했지만 그조차도 지금은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난 여전히 차가 좋다. 게다가 내 회사가 위치한 압구정동에는 전세계에서 몰려온 자동차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운 좋은 날엔 영화 ‘나쁜 녀석들 2’의 윌 스미스와 마틴 로렌스 듀오가 몰고 다니던 페라리 575M 마라넬로와 허머도 볼 수 있다.
지난 1월 ‘사상 최고의 자동차 추격신’이라는 특집기사를 쓸 때 난 신바람이 나서 원고를 써내려 갔다. DVD 속에서 멋진 자동차 추격 장면을 발굴하려고 수십 개의 DVD 타이틀을 후보에 올려놓고 저울질했다. 덕분에 화면 속에서나마 갖가지 명차들을 다 만나볼 수 있었다.
친구들은 “그렇게 차를 좋아하면서 운전면허는 왜 안 따냐?”고 놀림 반, 핀잔 반을 섞어 한소리씩 했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작은 접촉사고만 봐도 놀라는 내 소심한 성격 탓이다. 물론 게으름도 한몫 했다. 시간이 많은 방학 때는 실컷 놀다가 개강하면 그때부터 ‘왜 안 땄을까’ 후회하는 식이었으니까.
결국 지난해 여름 난 늦깎이 면허를 땄다. 대학 때부터 미루어오던 터였으니 남들보다 족히 4~5년은 늦은 셈이다. 운전학원에 수강료를 지불하고 연습용 자동차에 처음 올랐을 때의 그 떨림이란……. 키를 돌리자 경쾌한 스타터 모터 소리와 함께 차가 부르르 떨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랬겠지만 클러치만으로 차를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차를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몇 차례나 시동을 꺼먹은 뒤였다. 처음 며칠은 뻑뻑한 클러치를 밟아대느라 발목이 시큰거렸다. 그러다 곧 혼자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근 두 달을 그렇게 운전연습에 푹 빠져 지냈다.
살면서 그토록 즐거웠던 시간이 얼마나 될까? 네 발 달린 덩치를 내 손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비가 약하게 흩뿌리는 날은 사람이 없어서 더 좋았다. 라디오를 켜고 리듬감 있게 왔다갔다하는 와이퍼 소리를 듣고 있자니 차와 연애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도로주행시험에 합격하던 날 핀잔주던 친구들을 만나 실컷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깟 운전면허 하나 딴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 난 우쭐해 있었다. 대학입시에 합격했을 때보다 기뻤을 정도니까. 난 가끔 아버지가 타시는 10년 넘은 고물차를 몰아본다. 처음 운전대를 잡던 날을 떠올리며……. 지난해 여름, 나는 아마도 연애를 했던 모양이다. 첫사랑 그녀와의 추억처럼 나의 자동차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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