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 아내 구하기 김희재<시나리오 작가, 추계예술대학교 교수>
2004-03-08  |   6,037 읽음
“괜찮을까요?” “괜찮아.”
난 안 괜찮은데……. 남편이 두 살짜리 딸을 데리고 뒷자리에 앉았다. 어제 면허를 딴 내가 핸들을 잡았다. 출발지는 수서, 목적지는 상일동 시댁. 주일이라 도로가 한가하기는 하지만 만만한 도전은 아니다. 문득 어젯밤의 일이 떠오른다.
면허를 땄다는 말을 듣고는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 같이 나가자고 했다. 소위 말하는 운전연수를 시켜주겠다는 것. 운전 가르치다 싸운 부부 에피소드가 내가 아는 것만도 500개가 넘는데, 위험한 일이다 싶어 강사에게 연수하겠다고 했지만 남편이 잘 가르쳐 주겠다며 나를 끌고 나갔다. 소양인인 남편의 성격상 한두 번의 다툼은 각오를 해야겠다 싶었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한다고 했지만 후진기어를 넣은 줄 모르고 액셀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동네 입구의 다리 아래로 처박히기 직전, 그야말로 깻잎 한 장 차이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두 가지 이유로 심장이 뛰었다. 죽다 살아난 느낌과 남편의 호통을 기다리는 조마조마함. 하지만 남편은 심호흡을 하면서 놀란 가슴만 진정시키고는 조용히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더니 남편이 다시 나가자고 했다. 이번엔 골목을 벗어나 빵집까지 갔다 오자는 것. 그렇게 끌고 나가 기어이 후진주차까지 가르친 후에야 집에 돌아왔다.
그러더니 오늘은 교회에서 시댁 가는 길에 나보고 운전을 하라는 것이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뒤 유리창에 초보라고 쓴 종이를 붙여주며 웃는다. 그걸로 상황이 나아질까 싶기는 했지만 일단 시동을 걸었다.
10년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사건이다. 남편의 전적인 신뢰와 격려로 익힌 운전이기 때문인지 나는 지금까지 무사고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 ‘초보 아내에게 핸들 맡기기’ 사건은 이후 우리의 삶에 하나의 방향이 되었다. 서로를 믿고 맡길 것, 맡긴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믿을 것.
직장을 옮기는 일이나 이사를 하는 일, 아이를 키우면서 무수히 맞닥뜨린 선택의 순간……. 그 때마다 우리 부부는 상대의 신뢰를 근거로 용감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신뢰는 그야말로 ‘성질’ 눌러가며 초보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친 남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각자 차를 갖고 나간 날, 도로에서 우연히 남편의 차를 발견하고 신호를 보내면 남편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그 편안한 미소를 보면서 생각한다. 두 살 된 딸을 데리고 앉아 덜덜 떠는 아내의 뒤 꼭지를 바라보는 심정이 오죽했을까, 위험천만의 순간에 비명을 참느라 입술 꽤나 깨물었을 텐데,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릴 때 다리 휘청이던 것을 내가 눈치 채지 못했다고 알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웃음이 난다. 그리고 이 푸근한 웃음은 살면서 큰 힘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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