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연 문성해<시인>
2004-03-08  |   5,604 읽음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다. 골목에 세워둔 아버지의 차는 골목을 나설 때나 들어설 때마다 눈에 들어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재색의 엘란트라는 아버지가 평생 타시던 차였다. 10년도 더 된 그 차를 아버지는 늘 반짝거리도록 닦으며 아끼셨는데 중환자실에 계시는 주인을 알고 있는 듯 그 차도 골목 귀퉁이에 초라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차를 타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길들이 그립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께 신세만 졌던 나였다. 노처녀였던 나는 그때 왜 그렇게나 부모님을 따라 다니려고 기를 썼던지, 아마도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우리는 그 차를 타고 팔공산과 가창댐, 운문사, 은해사 그리고 기분 좋으면 동생들 사는 포항까지 내처 달렸었다.
중간 중간 경치 좋은 휴게소에서 커피와 어묵을 사먹으며 나는 어리광을 부리기까지 했으니 결혼 후에는 못 누릴 호사를 그때 다 누리고 싶었나 보다. 창가에서 습작을 하다가 듣던 아버지의 차소리, 곧이어 계단을 올라오시는 아버지의 발소리, 그 발소리까지 닮은 나는 아버지의 판박이였다. 유독 맏이인 나를 아끼시던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나는 너무 오래 그 창가를 떠나지 못하고 살았다.
아버지가 쓰러지시던 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의 차였다.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자리가 된 담벼락 밑에 그 차는 아버지가 세워 놓은 그대로 서 있었다. 아버지의 차는 여름 뙤약볕 한가운데에 누워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은 우리를 지치도록 집과 병실로 끌고 다녔다.
중환자실에서 회복실로 몇 달이 훌쩍 지나고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뇌수술 후 부쩍 기력이 쇠하신 아버지가 서서히 기억을 되찾으시면서 제일 먼저 찾은 것도 아버지의 차였다고 한다. 아직 숟가락도 제대로 못 잡으시는 아버지가 당신 손으로 다시 운전하시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못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사위와 손주들을 태우고 거뜬히 다니셨던 아버지였다.
그 차는 젊은 날의 아버지의 상징이었다.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노인으로 변해버렸듯이 아버지의 차 역시도 서서히 주인의 손길을 잃어버리고 급속히 늙어갈 것이다. 그런 차가 마음에 짠하셨던지 사위들만 오면 키를 내주시며 운전해보라고 권하시는 아버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 차도 세월의 뒤안으로 사라져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훗날 내가 친정을 찾았을 때 그 자리에 항상 서 있었던 아버지의 차가 없다면 많이 섭섭할 것이다. 허름한 집 앞에 그보다 더 허름하게 서 있는 차이지만, 언제나 참 보기 좋았다.
아직도 아버지의 차는 골목 귀퉁이에 세워져 있다. 아침이거나 밤이거나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게 골목으로 나가 그 차를 어루만지시며 마음속의 말씀을 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 차도 아버지에게 기계 소리를 윙윙거리며 무슨 말인가로 답할 것이다. 예순 넘으신 나이에 면허를 따서 평생 이 한 차만을 타신 아버지였다. 이 차 역시도 아버지만을 알고 따랐으니 쓸쓸하지만 퍽 아름다운 사람과 기계의 인연이지 않은가. 이제는 내 차로 아버지를 뒷자리에 태우고 남은 여생을 편안히 모시고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옛날 내가 아버지의 뒷자리에서 마냥 호사를 누렸듯이 아버지 역시도 내 차 뒤에서 남은 여생을 아름답게 즐기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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