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를 차에 싣다 유종인<시인>
2004-02-09  |   7,067 읽음
소위 공기산업이라는 게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환경오염이 드디어 우리가 편안하게 숨쉬던 공기마저 새롭게 걸러 정화해서 팔아야 할 상품쯤으로 전락시키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공기정화기가 달린 에어컨이 지난 여름 본격적으로 냉방용품시장에 출시되기 시작했다. 소량의 산소가 든 일회용 제품 등도 여러 형태로 시장에 나와 있다. 이런 대기오염의 현실에 발맞춰서 대형건물이나 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이 금지되는 시행령이 발효되었다. 건강과 상관없이 애연가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저만의 공간을 찾아야 하는 궁색함을 면치 못하게 됐다.
차도 밀폐된 이동공간임에 틀림없다. 시골길이나 한적한 교외의 도로를 지날 때면 자연스럽게 차창을 내리게 된다. 맑은 공기를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환기가 된 차 안은 일시적으로 쾌적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내 공기는 마치 눅진 과자나 빵처럼 본래의 맛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본래 닫힌 공간의 공기는 물로 따지면 고인 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동차의 환기시스템이 크게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내 공기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향기’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자연스런 향기는 공기라는 음식에 치는 조미료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요즘엔 향기를 적극적으로 의학치료에 적용하는 예가 있고 그보다 미약하지만 기분전환이나 정서적 자극에 도움을 주는 아로마 테라피요법이 상품화되고 있다. 자연식물인 허브나 꽃 같은 것들에서 추출한 재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연 성분을 가공해 만든 다양한 방향제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차내에 각종 액세서리를 치장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인공방향제인데 그 향기의 강렬함이나 독특함으로 차내의 잡스런 냄새를 제거하는 데 일조를 하는 게 사실이다. 담배 냄새를 비롯한 갖가지 냄새들이 공기 중에서 결합해 만든 정체불명의 냄새들이 차 안 구석구석에 진드기처럼 붙어있다. 갖가지 모양의 방향제는 그런 차 안의 냄새를 희석시키고 중화하는 역할을 해준다. 그런데 이런 방향제들은 오래 사용하다 보면 또 다른 잡냄새로 전락하곤 한다. 기존의 잡냄새를 어느 정도 희석시키고 정화하다가 어느 기간이 지나면 그 자신의 냄새가 스스로 다른 냄새에 찌들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기의 순환이 적절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방향제만으로는 역부족인 경우다. 사람이 만든 인공의 향기가 가진 한계가 아닌가 싶은 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길거리를 지나다가 바닥에 뭔가를 놓고 파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건 크고 노랗게 잘 익은 모과였다. 겉만 봐서는 얼른 한 입 베어먹고 싶은 열매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주인의 허락도 없이 얼른 모과 하날 주워들고 향기를 맡았다. 잠시지만 모과의 향기는 은은하고 상쾌했다. 차 안에 매복해 있는 끈질긴 잡냄새와의 전쟁에서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으로 끝내 자연향(自然香)의 승리를 가져다 줄 복병인양 모과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과야, 타라!
깊이가 있는 향기는 공기의 맛을 부러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그 공기의 전체적인 맛을 신선하게 조리해낸다 여겨졌다. 길거리의 토종 모과는 향기의 동행을 이끌 편안한 안내자로 보였다.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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