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경험, 단 열매 전상귀<변호사>
2004-02-09  |   4,398 읽음
글쓴이는 얼마 전 동료들과 설악산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차를 몰고 시원스레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상쾌했다. 더하여 동료들로부터 조심스럽게 운전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다.
나의 조심운전에는 사연이 있다. 9년 전 나는 어느 자동차 제조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입만 열면 자동차 이야기를 하지만 그때는 별 관심이 없어 운전을 배우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한 살배기 아들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려 했으나 한 시간이 넘도록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비탈길 응달에서 아이를 안고 발을 동동거리며 택시를 기다리는 아내를 보고 결심했다. ‘그래, 운전면허를 따자. 운전을 하는 거야. 나도 책임 있는 아빠가 아닌가.’
덜렁 그 날로 운전면허원서를 내고 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하필이면 그때 회사일이 너무나 바빴다. 운전면허학원에 가기는커녕 말도 붙일 분위기가 아니었다. 필기시험일은 다가오고 야근은 많고……. 필기시험장 가는 길에 요약부분만 겨우 읽고 시험을 보았는데 덜렁 붙어 버렸다. 필기시험은 합격했으나 더 큰 문제는 시동밖에 걸 줄 모르는 실기시험. 겨우 상사에게 이야기를 하고 시험장까지는 갔으나 시동만 세 번 켜보고 바삐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회사에 와서 선배들에게 귀동냥을 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다음 무모하게 연습 한 번 없이 또 코스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찌 어찌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이어서 바로 주행시험을 보았는데 역시 시동만 켜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냐고 동료들에게 생맥주를 한 잔씩 돌렸다. 그러면서 주행시험요령에 관해 귀동냥으로 설명을 듣고 이리저리 궁리를 했다. 어느덧 주행시험일은 다가오고 연습할 시간은 없고…….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다시 본 주행시험에서 덜렁 합격을 해버린 것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문제는 커졌다. 변속도 제대로 못하면서 면허를 따고 말았으니. 더구나 신기하게 생각한(?) 선배로부터 수동변속기가 달린 중고차까지 얻어 버렸으니.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우리 아기의 첫 걸음마도 이렇게 두렵지는 않았으리라.
궁리 끝에 야밤에 다니기로 했다. 새벽 5시 반에 출발하고 저녁 10시 반에 퇴근하기로 마음먹고 차를 끌고 집을 나섰다. 비상깜박이와 실내등을 켠 채 목동에서 여의도까지 1단으로 달리는 흰색 프라이드. 차들은 알아서 비켜갔다. 무슨 사고가 난 차겠거니 하듯이.
어찌어찌 회사까지는 왔으나 저녁때 퇴근할 일이 꿈만 같았다. 그 날 저녁 남의 일까지 도와주면서 10시 반이 되기를 기다렸다.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좌절했다. 비상깜박이를 끄지 않아 방전이 된 것이다. 지금처럼 보험사의 서비스가 좋지 못하던 시절, 퇴근한 선배들에게 구원을 요청해 배터리를 충전한 다음 다시금 모험이 시작되었다. 학원에서 해야 하는 일을 실제 도로에서 하고 있었던 셈이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신통하기만 했다. 땀이 범벅이 된 나는 주차에 30분 이상 허비하고 만 다음에야 지친 채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잠이 들면 차가 마음대로 조작되지 않는 꿈을 꾸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서 오르막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요령도, 엔진 브레이크도 하나씩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아무런 사고 없이 주행한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나는 과속을 하지 않는다. 몰고 다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니까. 남들은 그것도 모르고 나를 ‘오소독스’라고 부른다.
요즈음은 운전면허제도가 엄격해졌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자동차만큼 위험한 물건이 몇이나 있을까. 우리나라는 자동차로 숨지는 사람의 수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거의 매일 교통사고 뉴스를 접하면서 고행하던 나의 초보시절을 떠올린다. 쓴 경험은 단 열매를 주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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