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 양성민 “원칙을 무시하는 정비습관은 버려야”
2005-04-15  |   6,113 읽음
1. 소속과 직책, 걸어온 길
일본에서 정비사로 일하다가 귀국, 최근 경기도 부천에 ‘프롬 재팬‘이라는 정비소를 열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더 넓은 곳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 95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방송국 PD를 목표로 한 유학이었지만 일본어를 전혀 몰라 1년 동안 어학원을 다녔다. 다음해 대학원 시험에서 논문은 합격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져 비자 연장을 위해 동경 테크니컬 컬리지에 들어갔다. 단지 대학원 재수를 위한 곳이었지만 엄격한 학업관리로 수업에는 꼬박꼬박 출석해야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자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차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고 내 안에 숨어 있는 재능을 찾은 느낌마저 들었다. 일본 자동차자격시험을 대비하며 미친 듯이 차에 빠져들었다. 당시 유학생은 취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졸업을 앞둔 3월, 기술학교 졸업자는 취업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고 나를 잘 본 취업담당자의 배려로 동경에 있는 야마자키 모터스(닛산 계열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2. 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30살에 일본에 건너가 33살에 취업했다. 일본은 어딜 가나 도제(徒弟) 시스템이라 처음 들어가면 바닥청소와 허드렛일부터 하게 된다. 거의 모두 이십대 초반인 선배들 밑에서 기술은 배우지도 못했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이를 악물고 일했다. 12시부터 1시까지가 점심시간인데 밥을 10분만에 먹어치우고 차를 만질 만큼 노력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공장장이던 메라 씨가 나를 부르더니 “정말로 정비를 배워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정종 잔 8개에 각종 오일을 담더니 맛으로 구별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엄격한 통과의례를 거친 뒤에야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그 뒤 성실함을 인정받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3년만에 정비주임이 되었고 3년이 지나자 정비사의 작업을 점검하는 검사주임이 되었다. 아무 것도 없이 실력만으로 이룬 성과다. 마지막 단계는 공장장으로, 실력과 경력이 있어야만 오를 수 있는 자리다. 나는 4년 동안 검사주임을 맡다가 귀국했다.

3. 어렵게 일군 자리를 포기하고 귀국한 이유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큰애가 일본을 응원하는 게 아닌가. 당시 초등학생인 아이가 일본말로 “나는 일본이 더 좋다”고 하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귀국을 결심했다. 당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있는 스카이라인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터라 국내에 일본차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점도 결심을 재촉한 이유였다. 친구, 친지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도 변화가 필요했고 일본차 정비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넘치던 때라 8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4. 한국과 일본의 정비시스템은 어떻게 다른가?
일본은 기본적인 규정을 철저하게 지킨다. 정비 매뉴얼은 항상 옆에 두고 있고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관광서비스업 못지 않다. 우리나라 정비습관은 원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엄연히 규정치가 있는데 전동 렌치로 볼트를 조이는 일 같은 원칙 없는 작업을 너무 쉽게 한다.
우리의 형식적인 정기검사와 달리 일본의 정기검사는 철저하게 이뤄진다. 검사장으로 차가 들어오면 바퀴를 다 떼어내고 하체를 점검한다. 엔진을 스캐너로 진단하고 각종 센서의 이상을 발견하며 제동계통을 철저하게 검사한다. 검사비용도 만만찮지만 안전을 위한 예방조치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5. 일본 정비소의 하루를 묘사한다면?
8시 30분까지 출근해 조회를 하고 예절 교육을 받는다. 업무는 9시부터 시작되는데 자동차검사 업무를 주로 한다. 일본의 정비는 무조건 예약제로 이뤄지고 담당자가 고객의 집을 찾아 차를 받아온다.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고 5시 30분에 하루 일과가 끝난다. 오후 3시부터 10분 동안 잠깐 쉬는데, 그밖에는 일이 없더라도 맡은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잔업 수당은 1시간에 1만2천 원쯤이고 보통 잔업은 저녁 7시까지 한다.

6. 정비사로서 일본차를 평가한다면?
도요타는 환경 문제에 앞장서는 브랜드로 적자가 나더라도 하이브리드카나 친환경 정비체제를 운영하는 결단력이 돋보인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가 도요타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닛산은 스포츠 세단에 강점을 보인다. 스카이라인 계보로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냈고 내세울 점이 많은 브랜드다. 미쓰비시는 리콜 파동을 거쳐 이미지가 크게 추락했다. 메이커 고집이 크게 느껴지는 곳은 혼다. 엔진 회전이 다른 메이커와 반대로 돌아가고 전용 공구를 써야하는 등 정비하기가 벅차지만 혼다만의 독특한 기술이 인상적인 메이커다. 기술자 입장에서는 도요타 차가 정비하기 쉽다.

7. 국내에서도 튜닝이 종종 이뤄지는데, 튜닝숍을 열 생각은?
튜닝은 안 한다. 차가 가진 고유한 성능을 최대한 유지하는 정비가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다. 주위에서 흔히 튜닝이라 말하는 방식은 단지 ‘부품 교환’일 뿐이다. 진정한 튜닝은 ECU 매핑(엔진특성 조절)을 통해 그 차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단순히 에어로파츠를 덧대거나 각종 부품을 얹은 방식은 튜닝이 아니다. ECU 매핑은 일본에서도 경력 5년이 넘어야만 다룰 수 있는 분야다.

8. 자동차 정비에 뜻을 둔 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정비사는 급한 성격이 어울리지 않는다. 빨리, 그리고 편하게 처리하려는 마음은 고객의 생명을 책임지는 정비사로서는 가장 큰 결격사유다. 타이밍벨트 하나를 바꾸더라도 관련 부품을 모두 체크하는 등 효율적인 정비를 해낼 수 있는 꼼꼼한 성격이 가장 어울린다.
수입차 정비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생산지에서 익히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본다. 특히 일본에서는 다른 나라 정비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본어 학교(1년)를 다니고 테크니컬 컬리지(2년)를 거치면 기본은 이룬 셈이다. 그 이후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보통 3∼5년이 지나면 말 그대로 ‘눈을 뜨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차와 싸우면 금세 실력이 는다.
선진국일수록 기술이 대접받는다. 나는 기름 때로 얼룩진 내 손이 자랑스럽다. 자동차 정비사가 대접받는 일본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아직 불만스러운 점이 많다. 하지만 차가 좋아 인생을 걸어볼 마음이 있다면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웬만하면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이 배우라고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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