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드라이버 고성훈 차의 특성을 속속들이 짚어내는 조율사
2005-03-18  |   6,824 읽음
1. 소속과 직책, 걸어온 길
현재 르노삼성 실차 테스트팀 선임연구원으로 파워트레인 부문 구동계 테스트를 맡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무작정 자동차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1985년 자동차과를 졸업하고 기아자동차 검사·품질팀에 들어갔다. 당시 국내 기술은 외국과 기술제휴를 맺어 조립생산을 하는 수준. 수입차를 마음껏 타볼 수 있고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살다시피 하는 연구·실험팀으로 옮기고 싶어 무던히 애썼다. 다행히 직원이 건의사항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제도를 통해 적성과 재능을 인정받아 실험 파트로 옮겨 테스트 드라이버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차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겪어보고 싶어 십여 년 동안 몸담았던 기아를 그만두고 삼성화재 손해사정인으로 2년 동안 일했다. 폭넓은 경험을 했던 시기였지만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마침 삼성자동차가 출범하면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연구소 테스트 드라이버로 다시 뛰어들었다. 당시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현직 메이커의 인력을 빼내올 수 없었던 제약을 갖고 있어서 찾아온 기회다. 한 분야만 열심히 파고드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업무를 겪어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 잠시 외도기간이 있었지만 테스트 드라이버는 내 천직이라고 느낀다.

2. 참여했던 개발차종과 기억에 남는 차
예전 기아차는 거의 내 손을 거쳤다. 대우 티코가 나오기 전, 기아에서도 경차 개발이 진행된 적이 있다. 시장성이 없어 중간에 접었지만 아쉬운 프로젝트였다. 프라이드와 캐피탈, 콩코드와 포텐샤, 스포티지 등 수많은 차종 개발을 진행했고 5톤 트럭 개발에도 참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차는 기아 프라이드와 르노삼성 SM5다. 내구성과 순발력, 연비 등 뭐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당찬 프라이드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다. 내구성과 디자인, 경제성에서 뛰어난 가치를 보이는 SM5도 마찬가지. 특히 한국적 특성이 배어 원작보다 더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는 SM5는 가장 좋아하는 차다.

3. 자동차메이커 실차 테스트 부서는 어떤 곳인가
차 한 대가 나오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땀이 배어 있다. 실차 테스트 팀도 예외는 아니어서 성능이나 상품성, 내구성을 평가하는 부서로 각각 나뉜다. 핵심은 파워트레인 담당 부서로 엔진과 변속기, 드라이브 샤프트와 서스펜션의 작동과 소음, 진동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
실차 테스트는 다양한 온도와 고도, 지형과 기후에서 이루어진다. 혹한지와 혹서지 테스트를 위해 한두 달 해외에 머무르는 건 예사다. SM5를 처음 내놓던 때는 평가 인원이 많지 않았던 데다 국산화에 따른 부품 테스트도 진행해야 했다. 1년의 2/3를 일본과 유럽, 국내 출장으로 보냈던 시절이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차와 뗄 수 없는 관계다. 테스트 도중 잠깐 쉬거나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평균 4∼5시간을 차에서 보낸다. 노동 강도가 생각보다 세다고 볼 수 있다. 새차 특성상 디자인 보안을 지키는 일도 어렵다. 부산 공장을 짓고 있던 시절에는 회사 부지에 있는 공장도로에서 테스트를 자주 했는데, 보안 때문에 밤에 주로 했다. 해 떨어지기를 기다려 진행하고 동이 틀 무렵 들어오는 올빼미 생활을 3주 동안 했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파일럿 카를 만들면서 투입된다. 각 항목별로 미리 정해진 목표 성능을 만족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끝없는 테스트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면 차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끝난다. 이 과정에서 테스트 팀의 입김은 다른 어느 부서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카를 비교 차종으로 삼을 때가 많다. 냉철한 평가자의 입장에서 테스트하고 실측 데이터를 첨부해 보고서를 꾸민다. 개발 컨셉트에 맞게 만들어졌는지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다.

4. 테스트 드라이버에 맞는 성격은?
테스트 드라이버란 한마디로 차와 하나가 되는 사람을 말한다. 차를 평가할 때 테스트 드라이버가 힘들면 나중에 고객도 어김없이 힘들기 마련이다. 남들에 앞서 차를 평가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해내는 책임감도 투철해야 한다. 운동 선수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이 뒷받침되어야 하겠다.
세월이 흘러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원래 성격이 급한 편이다. 경험상 이 직업에 꼭 맞는 특별한 성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물을 판단하는 감각이 뛰어나야 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무난한 성격이 좋다. 예민한 감각은 테스트 드라이버가 꼭 갖춰야 할 자질이고 전체적 느낌을 조율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어쩌면 느긋한 성격보다는 약간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더 어울린다.
차의 개발과정에는 마스터플랜부터 연간계획, 월간계획과 주간계획 등 끊임없이 업무가 있다. 평소 일상생활을 계획적으로 꾸려 가는 꼼꼼함도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5. 드라이버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삼성차 시절에는 영국 로터스팀을 비롯한 외부 업체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현재는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어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부산공장과 기흥연구소 프루빙 그라운드에서 테스트를 한다. 가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일원으로 일본 닛산에서 테스트를 할 때도 있다.
드라이버 교육은 테스트 프로그램을 위한 기술과 공통 운전 기술로 나누어 실시된다. 각각의 테스트에 따라 운전 방법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기술도 있기 때문이다. 선임연구원의 책임 아래 서스펜션 평가팀은 스티어링 휠의 감각적인 조작법과 차체 움직임을 몸으로 느끼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가속성능과 정속주행, 최고속 테스트를 주로 진행하는 파워트레인 평가팀은 발끝의 감각과 계측장비 다루는 방법 등을 주로 익히게 된다.
안전운전을 위한 매너교육도 수시로 실시된다. 서킷이나 프루빙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철저하게 안전 위주로 운영된다.

6. 테스트 드라이버의 하루
집에서 나오자마자 연구원의 하루가 시작된다. 한겨울에는 밤새도록 세워놓은 차의 시동 능력을 평가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다. 퇴근길 일반 도로 주행은 상품성 측정에 무척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8시 출근과 오후6시 퇴근이 원칙이다. 내근 업무를 맡을 때도 있지만 테스트나 출장으로 회사를 떠날 때가 많기 때문에 변동이 잦은 편이다. 부품 테스트를 하게 되면 밤을 새더라도 끝내야 한다. 따라서 테스트 업무를 무리 없이 해내려면 강인한 체력은 필수 조건이다. 체력 관리를 위해 식사는 꼬박 챙겨먹고 연구소 안에서 농구나 축구, 수영 등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
보수는 위험한 업무라고 특별히 더 받는 것은 아니다. 남들만큼 받는다. 하지만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데에 뿌듯함을 느낀다. 사실 테스트 드라이버 직종은 보험회사에서 가입을 꺼릴 만큼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물론 시험차는 완성차보다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사전점검과 훈련으로 충분히 위험 요소를 없앨 수 있다.

7. 테스트 드라이버가 되려는 이들에게
테스트 드라이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급하게 해내려는 욕심이 앞서면 뒷심이 모자라 흐지부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폭주를 즐기기보다 먼저 차를 꼼꼼히 공부해서 지식을 넓혀야 한다. 해외 드라이빙 스쿨은 테스트 드라이버 자격을 얻는 관문이 아니다. 스포츠 드라이빙 라이선스는 받을 수 있지만 테스트 드라이버 자격은 어디에도 없다. 현실적으로 프로 레이서를 꿈꾸지 않는다면 메이커에 입사해 개발업무를 맡아 실력을 키우는 것이 테스트 드라이버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나는 지치고 힘들어도 차만 타면 피곤이 풀린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번다는 사실이 즐겁고 고마울 따름이다.
공부를 할 때는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자만하거나 독선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결코 발전이 없다. 열린 마음은 팀으로 운영되는 테스트 드라이버의 세계에서 환영받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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