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교수 인간성의 회복을 동양고전의 관계론에서 찾다
2005-02-18  |   4,310 읽음
“동양고전을 ‘관계론’으로 본 책이 바로 <강의>입니다. 내가 20여 년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독방에서 4~5년을 지냈어요. 주로 명상을 많이 했는데, 말하자면 면벽이지요. 주요한 내용이 뭐냐하면 어렸을 적부터의 기억을 찾아내는 거예요. 신기하게도 네 살 때의 기억이 나더군요. 그 이후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추 체험하는 내용으로 명상을 하는 거지요. 이상한 것은 오래 같이 지냈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잠깐 스쳐 지났지만 심층에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나는 무엇인가’를 묻게 되고, 관계론이라는 화두가 생겨난 것이지요.”
오랜 수형 기간 동안 휴지조각과 엽서에 적은 편지글들을 모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만인 88년에서야 석방되기에 이른다. 김지하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의 오랜 단절은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되는 모양이다. 그 오랜 사유의 결과로써 생명이라는 또는 고전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성찰을 주문하는 것일 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애정이 가장 큰 가치
89년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중인 신영복 교수는 그동안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 <신영복의 엽서> 등의 저서를 펴냈는데, 이번에 내놓은 <강의>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금, 여기서 왜 다시 고전인가?
“내가 59학번인데 그 세대의 정신적 영역은 매우 불행한 것이었어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허락되지 않는 불행한 문화였지요. 분단과 군사독재에 저항하면서 열정을 쏟았던 학생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식민지 의식을 비롯한 근대성에 대한 반성과 시간관념에 대한 반성으로 고전을 읽기 시작하게 되었어요. 동양고전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미래의 사상이기 때문이었지요.”
<강의>에서는 시경, 서경, 주역을 비롯해 공자(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등의 사상가를 다루고 있다. 물론 ‘관계론’이라는 관점에서다. 중요한 것은 고전의 근본주의가 아니라 주체로서 나의 관점일텐데, 우리 시대의 실천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知), 앎이란 무엇일까요. 참된 지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보화사회에서 진정한 앎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근본적이지요. 우리 사회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관계론을 조금 쉽게 설명하면, 내가 전공이 감옥이므로(웃음), 감옥에 있을 때는 춥고 배고픈 게 힘든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아파할 가족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기쁘고 슬프다는 게 모두 다른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거지요.”
따라서 신영복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인간관계의 황폐화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의 사회의 본질인데, 지속성이 없는 만남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세우기 어렵다. 익명성을 이용한 인터넷상의 폭력도 그 때문이다.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지요. 단속에 걸린 사람이 교통경찰에게 다른 사람들도 다 위반하는데 왜 나만 잡느냐고 항의했어요. 그러자 교통경찰은 ‘어부가 바다 고기를 다 잡을 수 있냐’고 대꾸했다지요. 문제는 법규를 위반해서 걸린 사람의 의식구조지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가르침은 큰 데 있지 않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훨씬 좋아질 것이다. 나아가 한 나라가 부끄러움을 안다면 다른 나라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는 못할 것이다. 관계망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면 물질과 익명성의 시대에, 이러한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시대의 문제는 속도와 효율, 물질가치가 인간적 가치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감각적인 문화토양에서 근본적인 것을 모색해나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비디오문화에서 오디오문화로 다시 독서문화로 되돌아가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애정이 가장 큰 가치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에 희망을 걸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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