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C 코오롱 모터스 전인선 이사 아시아인 최초의 독일 마이스터
2005-01-19  |   8,553 읽음
1972년 어느 날, 작은 체구의 한국 청년이 낯선 독일 땅을 밟았다. 청년의 이름은 전인선, 그로부터 만 9년 동안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폭스바겐, 아우디 등의 메이커에서 정비 기술을 익힌 그는 1981년, ‘독일 마이스터’ 자격을 얻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인 최초의 일. 마이스터에 대한 독일인들의 존경과 믿음은 상상 이상이다. 마이스터는 특정 기술 분야에 대한 국제 공인 자격일 뿐 아니라 그 분야의 사업을 할 수 있는 공식허가증이기도 하다.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자동차 정비에 관한 한 독일 최고임을 공인 받은 그는 지난 1996년 BMW 코리아 설립 소식을 듣자 만 24년만에 모국을 찾았다. 말 그대로 금의환향이었다.

이국 땅에서 맨주먹으로 일궈낸 ‘마이스터’
HBC 코오롱 전인선 이사(60세)의 경력과 노력은 ‘아시아인 최초의 독일 마이스터’라는 한마디에 모두 스며있다. 모두의 삶이 빠듯하던 70년대 초, 일찌감치 자동차 쪽으로 눈길을 돌린 그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자동차라고 해봐야 거리에서 간혹 시발택시다 도요타 크라운이 눈에 띄곤 하던 때였어요. 역설적으로 자동차가 아직 드물던 때인지라, ‘머지 않아 자동차의 시대가 올 것’ 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 기계과를 다니면서 어지간한 국내 자격증은 모조리 섭렵한 전 이사는 선진 기술에 대한 욕심으로 외국행을 결심한다. 물망에 오른 목적지는 미국과 독일, 일본. 모두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들이었던지라, 당시 현지에 진출한 광부와 간호사 덕분에 한국인에 대한 인지도가 높던 독일은 왠지 그의 마음을 끌었다. 결과론이지만, 그가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로 떠났더라면 아시아인 최초의 마이스터는 다른 나라 엔지니어의 차지가 되었을 지도 몰랐을 일.
"독일은 외국의 자격증을 인정하지 않아요. 하지만 도합 10년이 넘는 정비 경력을 인정받아 마이스터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마이스터 시험은 단지 기술만 측정하는 게 아니라 그 기술로 사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은행업부, 상법 등 법률분야, 심지어 후배양성을 위한 교육학까지 테스트하기 때문에 고시공부 하듯 책을 모조리 외웠어요."
14명의 최종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도, 아시아인 최초의 마이스터라는 축하를 받고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을 만큼 그의 심신은 시험공부에 지쳐있었다. 합격 한 달 뒤 그는 베를린에서 정비사업을 시작했다.
"마이스터의 사업체에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릅니다. 가난한 이방인이던 제게 마이스터 자격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지요. 단골손님이던 베를린 자유대학 의대교수는 정년퇴임하면서 아끼던 자신의 BMW를 선물로 주었답니다. 토요일 오후, 이미 영업이 끝난 시간에 고장난 새신랑의 차를 힘들게 수리해줬더니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부와 함께 인사를 하러 일부러 찾아오기도 했어요."
마이스터로서 첫발을 내디뎠던 베를린에서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떠오르는 듯 그의 눈빛이 따뜻해진다. 그에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통독 이후 독일 정부가 새로운 수도인 베를린 시내의 공장들을 구 동독지역으로 옮기는 계획을 추진했기 때문. 하지만 구 동독지역의 불안한 치안과 열악한 제반시설은, 이미 베를린에서 기반을 닦은 그를 망설이게 했다. 결국 독일에서의 정비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심.
"당시 빠른 속도로 차가 늘어나던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이주해 정비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BMW 코리아의 설립 소식을 우연히 들었지요. 95년이었습니다. BMW 본사에 이력서와 편지를 보냈고, 기술고문으로 모국을 찾게 되었어요."
독일 마이스터인 그가 꼽는 BMW 차의 강점은 순발력과 제동력. 특히 제동력은 최상으로 자신한다. BMW 차의 성능에 대해 딱 부러지게 말하던 전 이사는, 다른 나라 차들보다 앞선 독일차만의 장점을 묻자 뜻밖의 대답을 했다.
"물론 독일차의 완성도는 전반적으로 아주 높지만, 사용자들의 습관이 독일차를 더 좋게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독일인들은 의도적이든 교통체증 때문이든 공회전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옴쌀달싹 할 수 없을 만큼 꽉 막힌 도로에서는 어김없이 엔진을 꺼요. 심지어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주말 국경 부근에서는 아예 시동을 끈 채 차를 밀면서 가는 운전자들도 많아요. 겨울 아침에는 더운물이나 스크레이퍼로 얼어붙은 눈을 치운 뒤에야 시동을 겁니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어둔 채 차를 오랫동안 세워놓으면 어김없이 주민들의 항의나 신고로 이어지게 마련이에요. 추운 겨울이면 실내가 후끈해질 때까지 시동을 미리 걸어두곤 하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시동을 걸고 5~10초면 엔진오일이 골고루 분사되는지라 공회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 엔진 내구성을 해치는 필요 없는 공회전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정작 엔진온도가 정상 수준에 오르기도 전에 곧장 급가속부터 하는 운전습관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70년대만 해도 자동차는 그저 기계였을 뿐이지만, 지금은 전자와 컴퓨터, 인테리어 등 모든 사업분야의 총집합체입니다. 차와 더불어 살고 싶다면 기계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분야의 지식을 매일매일 쌓고 다듬어야지요. 무조건 공부해야 합니다. 더구나 요즘은 거리마다 자동차의 홍수인데다 대학에도 자동차공학과 등이 많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 환경입니까."
머나먼 이국 땅에서, 온갖 편견과 난관을 뛰어넘어 경지에 다다른 노(老) 마이스터의 충고는 오직 ‘공부’ 뿐. 그 자신 누구보다 치열한 20대를 견뎌냈던 주인공이기에, 대가(大家)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이 땅의 청년들이라면 그의 한마디 한미드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