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기 수집가 김동일 “구식 영사기는 숨쉬는 예술품입니다”
2004-12-23  |   9,076 읽음
서울 연희동의 주택가. 조그마한 간판에 ‘PLUS’라는 글자가 있고 그 안쪽으로 허름한 작업장이 보인다. 건물 구석 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꽤 오래됨직한 구식 영사기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하얀 담배연기 피어오르고 그 밑에 ‘도리구찌’를 삐딱하게 쓴 김동일(49세) 씨가 앉아 있다.

모으다, 고치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김동일 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한 번도 다른 일은 한 적이 없다. 하지만 한 번도 일에만 만족한 적도 없다. 그러는 과정에서 영사기, 그것도 오래된 구식 영사기를 만났고, 지금은 그 매력에 푹 빠져 매니아가 되었다.
김동일 씨의 컬렉션을 보자. 구식 영사기가 250여 점, 영화필름이 200여 편, 영화포스터도 200∼300여 장 된다. 그렇다고 여기저기서 고풍스런 인테리어 소품을 수집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영사기들 중 90%가 작동된다. 고장난 영사기는 직접 고쳤고, 부품이 없으면 똑같은 영사기를 사서 두 대, 때로는 세 대로 한 대를 만들었다.
구식 영사기가 김동일 씨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85년 무렵. 한 카페의 인테리어 공사를 맡으면서 영사기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들여놓았다. 그 고풍스런 느낌이 좋아 두어 대를 사서 두었다. 그러다가 ‘괜찮은데 한번 모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모으기 시작했다.
수집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집벽 자체는 새삼스럽지 않았다. 우표, 옛날 돈, 카메라, 수석도 거쳤다. 수석은 몇 년을 모으다가 아는 사람 다 줘버렸다. ‘죽어 있는 돌’은 아무리 예뻐도 별 의미가 없다고 느끼던 때였다.
하지만 영사기는 달랐다. 고치고 필름만 걸면 그 골동품의 생명력이 빛나기 때문이다. 영사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모든 시간의 퇴적지인 황학동에서 시작해 전국일주는 물론 해외경매까지, 영사기를 구할 수 있다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3년 정도 지나자 영사기들이 꽤 모였다. 어느 날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든 생각. ‘이 영사기로 다시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그러려면 영사기를 고쳐야 하고, 필름을 구해야 했다.
영사기는 직접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기를 했나, 영사기를 만져 보기를 했나.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기름범벅으로 보낸 지 5년 만에 영사기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부품 이름은 모르지만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무슨 기능을 하는지는 훤해졌다.
무성영화를 본 적 있는가. 김동일 씨가 무성영사기를 돌리자 ‘끄르르릉’거리며 돌아간다. 처음 영사기로 필름을 돌렸을 때, 김동일 씨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희열은 대단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살아 있는 예술품이구나.’
“다 내 새끼들인데,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많은 영사기들은 각자 나름의 사연을 지니고 있을 터, 가장 아끼는 영사기를 묻자 김동일 씨는 손을 내저었다. 그런 까닭에 아침에 출근하면 한번 주욱 둘러보고, 퇴근할 때면 다시 한번 훑어본다.
영화포스터 넘겨보는 것도 재미나다. 깊은 눈동자가 매력적인 젊은 시절의 숀 코네리가 그려진 ‘멀고먼 다리’와 이제는 고인이 된 이주일 주연의 ‘평양맨발,’ 반항아적 기질이 넘치는 젊은 시절의 말론 브란도가 나오는 ‘워터프론트.’ 모두 사람이 직접 그린 그림인지라 느낌이 색다르다.

오대산에 영사기 박물관 짓는 것이 꿈
오대산 인근의 영사기 박물관. 오대산 부근이 고향인 김동일 씨가 지닌 꿈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박물관’은 아니다. 그에게 영사기는 생명이 없는 ‘박물 영사기’가 아니라 시간의 흔적을 안고 한 시대의 영상을 보여주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가 직접 영사기를 돌려 아빠 어렸을 적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 김동일 씨의 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 ‘박물관’이라는 명패를 붙이려면 영사기도 500여 대는 있어야 하고, 그 중에는 요새 쓰이는 32mm 영사기도 있어야 한다. 필름도 정리하고 더 확보해야 되고, 포스터도 더 많이 모아야 한다. 현재 가장 큰 숙제는 개별 영사기의 이름과 특징을 알아내는 것. 그래서 틈만 나면 부족한 자료나마 보고 또 보면서 공부를 한다.
“연희동에서는 전두환, 노태우 다음이 김동일이라오(웃음).”
썩 내키진 않았지만 신문과 방송에 몇 차례 나간 다음부터 제법 유명해졌다며 농담을 던진다. 그가 인터뷰를 하고 방송에 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행여 영사기에 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영사기를 만나면 ‘총각, 처녀를 만나듯’ 가슴이 뛰고, 영사기를 사러 가는 길도 두근두근거린다는 김동일 씨. 구식 영사기에는 시간의 흔적뿐만 아니라 그의 땀과 정성도 함께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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