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 섬세한 감성, 인간에 대한 이해로 공간을 그린다
2004-11-19  |   8,893 읽음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48). 서울 도산공원과 마주앉은 카페 ‘느리게 걷기’에서 그를 기다렸다. 지금 발을 올려둔 플로어도, 등 뒤로 서있는 바도, 머리 위에 펼쳐진 시원한 천장도 그가 손수 디자인하고 짜 맞춘 것들이다. 몸 전체가 차분하고 아늑하게 보호받는 느낌. ‘아마도 그윽하고 심도 깊은 눈을 하고 목소리 또한 낮고 그윽하리라’ 상상했던 그 공간의 창조자는, 하지만 첫 등장부터 떠들썩하다. 웃음소리는 유쾌하고 그 표정 또한 개구지다. 얼굴에 ‘나, 활달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고, 머리는 까치집이 되어 있다.

동양적 정서 접목한 인간을 위한 디자인
“오늘 새벽 6시까지 작업했어요. 잠시 실례. 여기~! 스파게티 줘. 응? 빨갛고 제일 맛있는 거 있자나. 응, 그래 그거. 아직까지 밥도 못 먹었거든요.” 모 백화점에서 기획한 전시회의 인테리어를 작업중이라는 마영범 씨. 자연과 동양적인 정서, 개인적인 감수성을 접목한 그의 디자인은 국내 인테리어 업계에서 단연 주목받는 ‘마영범 스타일’로 구분된다. 경희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자신의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실(So Gallery)을 세운 지 어언 14년이 됐건만 그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던 경험을 바탕 삼아 AB형의 방식으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낸다.
“건축 디자인은 30~40년, 더 멀리는 100년 이상까지도 바라보는 기능적이고 공학적인 설계 방식이에요. 반면에 인테리어는 생명이 그리 길지 않고 경직되어 있지도 않아요. 사람과 구조물, 사람과 사람이 피부를 맞대고 체온을 나누는 매우 친밀하고 감성적인 공간이지요. 건축처럼 꼭 기능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인테리어 디자인의 우선 순위는 인간에 대한 풍부하고 섬세한 이해입니다. 디자인은 개인적인 창작물인 동시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거든요.”
디자인이 사회를 변화시킨다? 디자인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그의 지론은 ‘책임 있는 디자인 운동’의 창시자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디자이너 빅터 파파넥(1926~1998)으로부터 기인한다.
“디자인의 사회성과 환경성을 부르짖었던 분이에요. 알래스카에 사는 에스키모를 예로 들어볼까요? 그들은 개 썰매가 유일한 운송수단이었지요. 하지만 스노모빌이 알래스카에 소개되면서 에스키모의 행동반경은 무한대로 넓어졌고 혈연관계로 맺어진 그들의 민족사회는 붕괴를 맞이했습니다. 인간편의를 위해 디자인된 제품이 역으로 인간사회를 와해시킨 셈이지요.”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출발한 대화는 어느새 디자인의 사회적 효용성과 프로덕트 디자인을 거쳐 인터뷰어가 몸담고 있는 분야, 자동차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누가 디자인으로 먹고사는 사람 아니랄까봐 마영범 씨는 칫솔 하나라도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야 골라 쓴단다. 하물며 고가의 자동차라면 디자이너로서의 ‘미적 기준’은 더욱 엄격해질 수밖에 없을 터. 덧붙여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에게 ‘디자인은 곧 라이프스타일’이다.
“서른 즈음에야 처음 차를 갖게 됐는데, 그게 혼다 비트였어요. 지난 5년여 동안은 아우디 TT를 타고 있습니다. 컨셉트카를 그대로 양산화한 TT의 디자인은, 프로덕트 디자인계에 있어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지요. 하지만 TT를 사고나서는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기능과 미 둘 중에서 디자인의 우선 순위를 꼽으라면 언제나 미를 우선하던 제가 깨끗하고 예뻐서 이 차를 모시고 있더라고요. 그때 디자인의 효용성에 대한 참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되었지요.”
언제나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인간을 위한 디자인, 그리고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동양적인 정서에 주목하고 차가운 하이테크 대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로테크(low-tech)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디자인의 근간이 되어온 ‘디자인의 사회적 효용성’을 떠올린다면 자동차 인테리어나 산업디자인계의 거장 필립 스탁을 능가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마영범을 그려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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